- 허수경 시인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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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한 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가 뮌스터대학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 『박하』, 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을 펴냈고,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가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고집으로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오늘의 착각』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가 출간되었다. |
김복희(이하 김) 허수경 시인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김복희라고 합니다. 사실 허수경 시인님과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고, 실제로 뵌 적도 없는데 이런 지면을 차지해도 되는 걸까 망설였지만, 우리는 언어로, 책으로, 그리고 시로 연결이 되어 있으니 제가 시인님의 이름을 불러봄도, 그리하여 잠시간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인님의 시간을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이렇게 허수경 시인님, 하고 이름을 불러봅니다.
초혼 같기도 하네요. 왜 그렇게 느끼는가 하면, 이 지면은 세상에 계시지 않은 문인들과 현재 활동 중인 문인이 가상인터뷰를 하는 형식의 글을 싣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허수경 시인님을 사적으로 한 번이라도 뵌 적이 있었다면 넌지시, 마치 지금 시인님이 대답을 다 하실 것처럼 꾸며 쓸 수도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지만, 이상하게 시인님의 시와 산문을 읽을 때 느꼈던 말투를 제가 꾸며내려니 쉽지 않았어요. 아주 많은 시도와 실패를 연속하다가 왜 제가 시인님의 목소리를 만드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봤는데, 이것은 시인님의 문제라기보다 제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죽음 이후의 장소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여기 아닌 어딘가에 시인님이 있으리란 상상이 잘되지 않고, 그리하여 교통이 가능한 느낌을 갖지 못하니 이편에서 시인님을 부를 수만 있고, 어딘가 제 안에 시인님을 받아 적기란 어려운 일일 것 같네요. 핑계가 구구절절 늘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시인님이 생전에 인터뷰하셨던 것, 산문집에 쓰셨던 내용, 다른 문인들이 기억으로 구성해낸 회고의 글들을 참조해서 이 지면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해해주세요.
그리하여 다시 처음입니다. 처음의 말부터 막히네요. 허수경 시인님이라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시인의 인사에 어떤 식으로 답을 하실지… 전혀 감이 오지 않네요. 그러니까 시인님에게는 다른 이야기를 물어보며 시작해야겠습니다.
다시, 안녕하세요. 시인님. 앞의 반복이네요. 아마도 저는 시인님을 오래 읽어왔지만, 시인님은 저를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2015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했어요. 시인님의 시를 습작기부터 오래 따라 읽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이렇게도 어색한 인사인 줄 이제야 알아차리네요. 한국어에는 안부를 묻는 말들이 많지요. 그중에, 제일 무난한 것으로 골라보았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선생님의 안부를 묻기보다, 제가 시인님의 안부를 짐작하며 안심하고 있는 인사말 같습니다. 네, 2015년 등단이므로, 2014년에 우리가 다 같이 겪었던 세월호 이야기를 아니 할 수 없겠네요.
허수경(이하 허) 안녕하세요. 김복희 시인. 반갑습니다. 인사치레란 것이 그렇지요… 인사 또한 의식이고 가끔은 형식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그러한 의례가 있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세월호 참사 때 일기를 많이 썼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014년이었지요. 그때 저는 독일에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 가까이 더 참혹하게 그 참사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썼던 일기 중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아이들이 바다에서 생매장을 당하고 난 뒤 내 잠자는 방은 끔찍한 바닷속으로 변했다. 죄스러움과 도저한 공포, 무력의 조류가 방안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화어라고 착각했던 물고기 모빌들이 굶주린 거대 물고기가 되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물고기 모빌을 올려다보면서 잠을 청할 때, 고요한 사유의 시간은커녕 이대로 가다간 돌이킬 수 없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불안의 잔잔한 물결이 일어났다. 잔잔한 불안의 물결은 거친 해풍보다 영혼을 더 잠식할 거라는 예감이 들면서 나는 물고기 모빌을 치워버리리라 작정했다.”1)
제가 물고기 모빌을 선물 받아 달아두었다가,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후 그 모빌의 아름다움이 너무 괴롭게 느껴져 치울까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 물고기 모빌을 치우지 못했지요. 처음 내가 가졌던 시선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저는… 물가 태생이에요. 그것들, 물의 것들,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이 가져온 내 생애 전부가 물에서 비롯하고 있는데…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착각도 버릴 수 없는 것이었지요.
김 바다 곁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던 인간으로서, 저 역시 물가 출신의 한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로 공감했던 산문이었어요. 세월호 이후 더 이상 바다를 전처럼 인간적인 착각 속에서만은 바라볼 수 없게 된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한민국에는 또 다른 참사가 연이어 있었어요. 이를 말씀드리는 것이 맞을까 또 잠시 망설였지만, 허수경 시인님이라면 모른 체하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어 말씀드립니다. 하고 많은 죽음이라는 말로 적으려면 적을 수도 있는,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일이고요.
허 동시대 사건에 대해 의식적으로 알려고 한다기보다 알 수밖에 없음, 아프지 않을 수 없음, 다가가지 않을 수 없음에 더… 가깝지요.
김 고고학을 전공하셨기에 그래서 더더욱 그 역사의 연결과 맞닿음을 더 섬세하게 느끼실 것 같아요. 이런 질문 지겨우시겠지만, 그래서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대답해주세요. 고고학을 공부하며 느낀 점 이모저모에 대해서요.
허 2011년 겨울에 인터뷰했던 답이 있어요.
“시간이라는 건 고고학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거예요. 범박한 예를 들자면, 500년의 세월이 2미터로 축약되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거죠. 낭만적인 상상을 하는 건 어렵지만, 훨씬 후대의 사람이 그 시간의 흔적을 바라볼 때 갖게 되는 낯섦, 경이로움이 있어요. 제 시간은 지층 속에서 몇 센티, 몇 밀리미터로 남을까. 그 안에서의 나의 괴로움, 상처는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아무 흔적도 남지 않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연해지지는 않아요. “인간은 바둥바둥 살아가는 거예요. 순간에 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2)
김 긴 시간의 흐름을 압축해서 만나는 것이네요. 놀라워하면서요. 우리는 매 순간 버둥거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공감이 돼요. 그래서 커다란 흐름에 참여하는 작은 순간을 의식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이 시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네요.
허 아무래도 고고학 공부를 했으니까요.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사고하는 것도 분석적으로 되고 증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한없이 의심하고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죠. 시를 쓸 때 좋은 미덕은 아닌 것 같지만… 생물학·물리학·천문학 이런 것들이 시 속으로 들어와요. 고고학은 종합학문이거든요.”
김 시적인 미덕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시인님의 시에서 충분히 시간의 더께를 더 감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새로운 개성이 된 것 같아서, 그리고 아득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만 같아서 저는 좋아요. 딴 이야기인데요. 얼마 전 템플스테이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시인님의 모든 행적을 꼼꼼히 다 알지 못해서, 혹시 허수경 시인님께서 템플스테이를 다녀오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시인님의 49제가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려서인지, 시인님의 전공이 고고학이어서인지, 둥글고 부드러운 경주의 고분과 불국사의 넓은 경내를 둘러보며 허수경 시인님 생각을 많이 했더랬어요. 특히 공양하려고 묵언 상태로 절밥을 먹으면서 시인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님께서는 공양에만 집중하라고 하셨지만, 잘되지 않았어요. 시인님과 마주 앉아 이 밥을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상상을 잠시 잠깐 했네요. 허수경 시인님 시에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 알고 계시지요?
허 그런가요. 그렇지요. 꼭 시가 아니더라도 항상 쓰게 되네요. 이런 글도 있어요. 좀 어렸을 때의 이야기에요.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 먹었다. 더 뚱뚱해질까 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였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3)
김 저를 사로잡았던 글이었어요. 먹는다는 것을 많은 시인이, 특히 여성 시인들의 경우 극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허수경 시인님의 경우는 달랐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 좀 민망하지만, 저는 시인님의 시가 정말 좋았던 게, 곡진함이나 애잔함에도 있지만, 그것들이 종종 먹는 이야기와 결부되어 등장해서이기도 했어요. 제 시에도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허수경 시인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시인님의 시선집이 202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요. 구성이 재미있어요. 많은 동료 후배 시인들이 허수경 시인님의 시 중 좋아하는 시를 두 편씩 고르고, 그 시에 대해서 짧은 글을 실어 모은 시선집이거든요. 저도 참여했는데요. 제가 고른 시 중 한 편은 『혼자 가는 먼 집』에 실렸던 시 「먹고 싶다…」였어요. 그 시를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면서, 신경 곤두세우던 것에도 지쳤던 것 같다. 서울 와서 꼭 두 해, 이십대 중반의 나는 이 시를 종종 내가 쓴 시처럼 외고 다녔다. 당시 나는 서울에 사는 서울 토박이가 아닌 나를 무참히 발견해나가던 참이었다. 서울이 별건가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낯선 이에게서조차 다정을 바라고 모르는 음식을 마주하면 허기를 감추지 못했다. 어쩜 나는 이 시를 외며 코를 베어 가도 좋다는 마음가짐, 허기를 어쩌지 않을 거라는 오기 같은 것을 다졌던가. 그런 합리적 의심이 든다.”4)
시인님의 저 ‘우울했던 소녀’ 글도 그렇지만, 이상한 허기, 외로움이 허기를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먹는 행위, 생존에 대한 고단함과 연결되어 저를 사로잡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혼자서 멋대로 위로도 받고 의지도 했어요. 먹고 싶음에 대해 반성을 집어치우고… 기대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허 어디서나 혼자 있을 곳, 어디서나 허기를 감각하는 것이 시인으로서 제 일부인가 봐요. 먹는다는 것 굉장히 중요하지만, 굉장히 고독하지요. 생존과 폭력을 다 보여주니까요. 그래서일까 음식, 음식을 준비하는 행위 그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에서도 그랬지만 독일에서 지내면서도 자주 그랬어요. 독일에서 살던 중 벗에게 쓴 글 중 일부에 이런 말을 했네요.
“다시 저는 그날 우리들이 먹었던 저녁 밥상에 오른 두어 가지 반찬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싱싱한 굴이 있었지요. 그리고 잘 무친 나물이 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과한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지나 보내고 다시 둘러앉았습니다. 어느 한때 우리가 자주 얼굴을 보고 살던 시절, 그리고 자주 얼굴을 보지는 않더라도 지상에서 맺은 인연을 기억하면서 살 때, 우리를 맺어주던 작은 기억들, 그 기억을 우물거리는 술을 조금 마시고 일찍 잠을 깬 새벽녘, 그때 우리가 먹었던 굴이 우리의 미뢰를 치면서 울컥, 한 시절을 건드릴 때, 그 기억 속에는 이 지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가꾸어낸 평화 중에 가장 크고 그리고 가장 작은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려고 합니다….”5)
어쩌면 음식 그 자체보다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관계,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감각 그런 것이 제게 문학인가 봐요.
김 먹는다는 것, 당신이라는 말처럼… 참 좋지요. 부족한 인터뷰에 불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마음에 담기 시작한 때부터 오래 좋아하고 구절구절 외우고 다니던 시인님과 가상으로나마 인터뷰를 하게 되어 신비롭게 느껴져요. 무척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내내 절절맸지만요. 후회는 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시인님과 실제 뵈었던 다른 시인님들처럼 회고록을 쓸 수도 없고 목소리나 얼굴, 체온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허수경 시인님을 그리워할 수도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사람이 과거가 아니란 것을 알잖아요. 언어로 시로 마음으로 잇대어 연결되어 계속 간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번 제 꿈에 방문해 주시기를요. 제가 좋은 술을 대접할게요.
1) 허수경, 『오늘의 착각-허수경 유고 산문』, 난다, 2020, 23쪽.
2) 채널예스 인터뷰 「허수경 시인, 몇천년 후 우리 삶은 몇 센티의 흔적으로 남을까?」, https://ch.yes24.com/Article/View/18911, 김수영 기자, 2011-12-30
3) 허수경,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난다, 2018, 308~309쪽.
4) 허수경, 『허수경 시선집-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문학과지성사, 2023, 78쪽.
5) 허수경,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난다, 2018,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