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를 꺼내어 짐을 쌌다. 6월의 뮌헨은 일교차가 크다고 했다. 여름옷부터 가을옷까지. 그리고 숙소 주변을 구글 지도의 위성사진으로 살펴보았다. 내가 묵게 될 동네에는 걸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가게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었고, 무엇보다 숙소 맞은편에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공원이 있었다. 작년 베를린에 갔을 때 비 오는 묘지공원을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는데, 비를 맞은 채로 달리기를 하며 묘지의 모퉁이들을 돌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므로 운동복도 챙겨 캐리어에 넣었다. 숙소를 미리 점검해 준 뮌헨의 주최 측에서는 “모든 것이 다 준비돼 있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궁금했다. 설마 모든 것일 리는 없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모든 것’의 범주는 각자 다르니까, 전해준 이의 기준이 어떤 것일까가 조금 더 궁금했던 것이다.
작년 11월, 베를린의 ‘시인의 집(Haus für Poesie)’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나선 에이전시가 시범적으로 개최한 ‘번역대회’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한국 문학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공모전을 거친 후, 시상식과 낭독회와 좌담회를 겸하는 행사였다. 오은·유희경 시인과 함께 참여했다. 우리는 남는 시간을 슈프레강을 따라 산책하거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데에 썼다. 나선 에이전시의 김현우 대표는 우리의 행사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거의 모든 궁리를 다 해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언제나 내 귀를 헌납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김현우 대표는 자신이 꾸는 꿈을 들어주고 또 동행해줄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 반짝임을 산책길에서 얻고 즐거워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내게 다음번엔 뮌헨에 가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뮌헨에서 활동 중인 번역가 박술 교수가 주선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고 싶어 했다. 나는 기꺼이 응했다. 몇 달이 흐른 후 나는 뮌헨 공항에 마중 나온 박술 교수의 안내를 받으며, 아인슈타인 스트라세에 있는 나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낯선 방에 앉아 책상 위에 노트북을 놓고, 의자에 카디건을 걸쳐두었다. 챙겨간 책 몇 권을 한 편에 쌓아두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을 살펴보았다. 갖은 필기구가 꽂힌 연필통. 그 옆의 노트 한 권과 포스트잇. 실내화. 좋은 냄새를 품은 채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수건들. 칫솔과 치약. 갖은 양념과 소스들. 원두와 티백들. 높이와 경도가 각각 다른 베개 두 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해둔 것들에서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자, 이 방에 더 큰 애착이 갔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열심히 잘 지내보자고, 느슨했던 마음을 조금 조율하게 되었다. 밤 9시에 해가 지고, 새벽 3시부터 밝아지기 시작하는 밤을, 낯선 방의 낯선 침대에 누워 이불처럼 덮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빈 에코백을 챙겨 들고 마트에 가서 식재료들 몇 가지를 사 오는 것이었는데, 가는 길을 일부러 에둘러서 동네 구경을 해보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묘지공원. 이곳에 오기도 전에 나는 이곳에 대한 시를 썼다. 경주 봉황대 건너편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구글 지도에서 보았던 이 공원에 대해서. 봉황대는 나의 어린 시절에 동네 아이들의 미끄럼대가 되어주었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었던 안압지가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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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는 말했다고요. 줄곧 바다를 바라보고 자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요. 욘 포세의 바다는 하르당게르표르 동쪽에 위치한 해변이라고요.* 나도 그런 면이 있어요. 줄곧 무덤을 바라보고 자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무덤을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기보다 우연히 무덤을 발견하면 목적지를 찾은 기분을 느낍니다. 당신이 적어주신 저의 숙소를 지도에 입력했을 때 바로 옆에 아주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더군요. 나는 그 묘지공원을 얼마나 자주 찾아가게 될지 이미 알게 됩니다. 나는 누군가의 묘비 앞에 서 있겠지요. 만나본 적도 없고 만나게 될 가능성도 없는 한 사람의 이름을 읽고 생몰 연도를 살펴보겠지요. 생기 있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등진 채로 죽은 한 사람을 궁금해하겠지요. 그중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묘비도 있을 거고요. 지도앱의 리뷰를 살펴보면,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녹지 중 하나라고 지역 가이드가 소개하고 있군요. 아주 멋진 새 무덤과 오래된 무덤. 많은 나무가 있다고.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2019), 옮긴이의 말에서 참조.)
- 「무덤과 바다」 부분, 웹진 비유 68호.
나는 그 묘지공원을 가장 자주 찾아갔고, 그곳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었다. 잘 알던 새소리와 처음 들어본 새소리가 차례차례 지나갈 때 눈앞에 놓인 묘비들을 살펴보았다.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찾아와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 묘비를 둘러싼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화병에 꽃을 꽂고 기도를 하곤 했다. 지그재그로 한 바퀴를 돌며 달리기를 하다가 커피를 마시러 카페 쪽을 향해 간 적도 있고, 세탁물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서 이곳을 지나쳐 코인세탁소를 찾아간 적도 있고, 노트북을 들고 찾아가 원고를 쓴 적도 있고, 잠이 유독 오지 않는 한밤중에 찾아가서 나뭇잎이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불러본 적도 있고, 시 낭독을 연습하기 위해 찾아가서 시를 되풀이하며 읽어본 적도 있다. 막스 베버 플라츠를 지나서 이자르강 쪽으로 접어들면 아주아주 드넓은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이 펼쳐졌다. 잔디밭 그늘에서 피크닉을 하는 사람, 이어폰을 쓰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 급류가 흐르는 서핑 포인트에서 서핑하는 사람, 서핑하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 우람하고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가 맞닿아 만드는 그늘에 도착한 초여름 속을 자전거를 타고 자주 지나갔다. 어떤 날은 소낙비가 퍼부어서 비를 다 맞으며 지나갔다. 옷자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집에 돌아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오래토록 잊고 있던 종류의 미소를 혼자 지었다.
뮌헨에서 나는 두 가지 작업을 했다. 첫 작업은 뮤지션 아르디(Ardhi Engl)와의 협업이었다. 장소는 <래빗 홀(Rabbit Hole)>이라는 제목으로 사라(Sarah Neumann)와 한나(Hannah Mitterwallner)의 작업이 전시 중인 갤러리 더타이거룸이었다. 미니어처 같은 검은 나무들을 주된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었는데, 기괴함과 동화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의 사이를 공간으로 활용해서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 아르디의 공연을 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이 어땠는지를 물었을 때 탄식 섞인 감탄만을 전해줄 뿐, 상상이 가능할 언급은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공연을 보다가 찍은 동영상이 있다고 보여주려다가 멈칫하더니, 직접 들어보는 게 낫겠다며 그에 대해 조금의 정보를 갖고 싶어 하는 나의 호기심보다 그를 베일 속에 두는 예의를 선택했다. 그는 폐파이프와 폐스프링 등의 버려진 것들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현악기와 타악기로 제작하여 연주에 임했다. 별다른 리허설을 거치지 않아도, 그의 음악 사이사이에 내 시가 스며들거나 겹쳐 들다가 물러서거나 나서는 순간들을 충분히 갖출 수 있었는데, 그의 악기에 깃든 그의 정신에 내가 대번에 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무 이미지가 들어가 있거나 과거와 미래를 겹쳐놓고 썼던 시로 낭독을 했다. 아르디의 제안으로 시는 한국어로만 전달하기로 했다.
음악처럼 들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도 있지만, 시는 누군가가 의미를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저마다의 이해이자, 창작자의 의도와는 또 다른 층위에서 발생하는 이해이기 때문에 목소리만으로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낭독이 끝났을 때 박수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둘러보았다. 이해되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표정들이었다.
두 번째 작업은 재독 아티스트 이민재와의 협업이었다. 이민재 작가와는 뮌헨에 오기 이전부터 협업에 대한 소통을 하며 그의 작업 세계에 내 작업을 포개는 일을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씩 준비해 나갔다. 그가 전시 준비를 하는 과정을 자주 갤러리에 찾아가 구경했고, 그는 이 작업이 탄생하게 된 경위를 꼼꼼하게 들려주었다. 이민재 작가의 작품에는 아주 조용한 외침이 존재했다. 그는 자신의 숨결과 입김 같은 것이 외침이 되는 그 순간에 영혼을 등장시켜 관람자의 영혼을 포섭하고야 마는 능력이 있었다. 내가 함께한 작업은 아파트 데어 쿤스트(Apartment Der Kunst)에서 진행 중인 ‘Unmöbeliert(가구가 없는)’라는 제목의 퍼포먼스였다. 그는 갤러리 바닥에 19cm의 공간을 띄워서 마룻바닥을 제작했다. 미리 관처럼 짜놓은 자그마한 공간에 들어가 누워 발끝만을 바깥에 내놓았다. 갤러리에는 그의 발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청진기와 증폭기를 사용하여 그의 심장 소리만이 텅 빈 곳을 채웠다. 관람객은 대부분 벽에 기대어 마룻바닥에 앉아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갔다. 나는 박술 교수와 한-독 교차낭독으로 마룻바닥을 걸어 다니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드럼이 리드하는 음악처럼 심장 소리가 우리 둘의 낭독에 리듬을 부여해주었다. 낭독공연이 끝나고 아티스트 토크를 할 때 그는 자신의 작업과 나의 작업의 연결고리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두려움 없는 두려움’이라는 문장이었다.
만약 다행하게도 내가 시인이 아니라면
증명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하여 괴로워하다
시를 써야겠다
마음먹게 될 것이다.
진실의 부재를 발견하기 위하여. 부재를 부재로
내버려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구의 손쉬움을
거부하기 위하여. 오직 두려움을 위하여.
두려움이 없는 두려움을 두려워하며.
- 「내가 시인이라면」 부분,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143쪽.
내 시에서 “두려움이 없는 두려움을 두려워하며”라는 문장을 발견한 그는 자신의 지난 작업의 제목이 “Angst ohne Angst(두려움 없는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두려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이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여 나열하면, ‘두려움’의 서술어가 ‘없는’이 될 수도 있고, ‘두려움’의 수식어가 ‘없는’이 될 수도 있는 모순적이고도
이중적인 말의 묘미가 곧 ‘두려움’의 속성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가 작품으로 만든 티셔츠를 나에게 선물로 건넸다. 특정 빛에서만 반응해서 나타나는 “Angst ohne Angst”라는 문장이 반복되는 작품이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하미나 작가와 한국화 번역가와의 협업으로 베를린에서 시모임을 가졌고, 박소진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교포신문의 주선으로 낭독회를 가졌다. 시를 향유해오던 사람들이 모여서 시를 둘러싸는 이 경험들 속에서, 나는 매번 내가 쓴 시의 안팎으로 나의 언어가 포용되는 장면 속에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면서도 이름이 적혀 있고 생몰 연도가 적혀 있는 묘비 앞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막연하게 그려보았듯이, 나의 시도 그런 모양으로 누군가의 앞에 묘비처럼 낯설고도 낯익게,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듯싶다.
캐리어 속에 가득 담아온 온갖 선물들과 편지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리를 찾아 두었다. 텅 빈 캐리어를 다시 창고에 넣었다. 인천의 7월은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건조했던 날씨 속에서 건너와 습하디습한 날씨 속에서 나는 동네를 산책했다. 뮌헨에서 만난 사람들과 간간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했다. 내가 자주 갔던 묘지공원에 들렀다는 친구, 베를린에서 열린 포에지 페스티벌에 찾아갔다는 친구, 내가 소개해준 친구와 다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친구, 곧 한국에 온다는 친구… 그중에서 세 사람은 9월에 한국에 온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이 다 준비돼 있다”는 섬세하고도 자신만만한 환대의 말은 차마 할 능력은 안 되지만, 그들이 이곳에 오면 뮌헨에서의 나에게 그들이 해준 것처럼, 그들을 데려갈 만한 곳들을 하나하나 챙겨두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