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꽃님 장편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
— 이꽃님 장편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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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가 밝히듯 어떤 사건도 바탕에 두지 않은 허구다. 책 1권은 2021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3년에 또, 한 소녀가 죽었다. 어쩐지 소녀의 살해와 그 동기는 소설과 많이 닮아 있었다. 베르테르 효과가 아니다. 지독하고 고질적인 겹겹의 폭력이라는 증상을 소설이 먼저 예감했을 뿐이다. 예언처럼 곧이어 도착한 현실은 불편한 기시감으로 넘실대는 것이었다. 이럴 때 소설은 이미 현실의 한 조각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감각하고 그 너머를 짐작함으로써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을 미리 보여주는 한편, 적극적으로 흩어놓는 중이었을 것이다. 염려되는 일들이 있다. 기어이 휘저어버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
좋은 가정환경을 가진 데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지주연이 박서은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다.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이라 가리키지만 어쩐 일이지 주연은 당시 상황이 기억나질 않는다. 둘도 없는 단짝의 죽음, 그 순간에 찾아온 주연의 블랙아웃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가리고 있을까? 소설 전편은 내내 진범을 좇는 진실게임의 서사로 흐르다가 유일한 목격자를 호출하며 반전으로 달음질친다. 소설은 이미 작가 손을 떠나며 나의 교우 관계, 내 아이의 학교생활 같은 현실을 여실히 넘나든다. 그래서일까? 2024년 2권의 발간을 환영한 것은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백미는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증언이라는 형식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넘쳐난다. 가독성의 추동력이기도 한 이 형식은,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당연하지만 쉬 망각하는 진실을 일깨우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중심인물과 주변 관계를 구축하는 상상의 주춧돌이 되어주며 숱한 발화 중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현실의 지독한 면들은 진범이 밝혀지고 난 뒤에도 그렇게 떠도는 말들로 한 인간을 유죄로 가해한다. 두 소녀 관계가 마치 주종을 연상케 했다는 증언들은 주연을 ‘괘씸죄’로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런 사정에 어머니와 둘이 힘겹게 가계를 버티어 내고 있었던 서은의 형편이나, 아버지의 무관심과 과도한 능력주의를 주입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배태되는 주연의 외로움은 사건이 학교 폭력이란 말로 일축될 수 없음을 가리킨다. 해서 이 어긋난 관계의 계보를 살피는 것이 또 하나의 묘미이다. ‘거지’나 ‘집착’과 같은 단어는 죽음이라는 결정적 사건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는데, 우리 사회는 종종 많은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축소하곤 해왔다. 그편이 해결에 있어서 가장 간단하기 때문인데, 그럴 때 시스템은 그대로 남아 똑같은 문제를 반복 생성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지목한 것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아이들 주변이다. 주연의 부모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주연을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세밀하게 짚는 동시에 아이들의 ‘사회생활’까지 살필 때, 문제는 주연과 서은이라는 개인 단위를 초과한다.
어쩌면 이런 일은 흔하다. 죽음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엇을 투사하는 중일까? 무슨 죄책감이 그들에게 또 누군가를 벌주게끔 몰아붙이는 것일까? 혹 그런 이들은 돌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마치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데, 그 타깃이 주연이 된 것만 같았다. 마녀라고 지목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듯, 죽이고 싶은 아이라고 낙인찍힌 주연을 끝끝내 끝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참척(慘慽), 자식을 먼저 보낸 참혹한 슬픔 와중인 서은의 어머니는 소설 말미에 이르러 죄책감과 슬픔, 단죄의 시선 때문에 밥 한 톨 삼키지 못한 채 서은의 환영을 보는 주연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것으로 공존의 서사를, 그 마음을 연다. 그렇게 한 사람을 온전히 공유하는 식탁에서 주연은 서은을 괴롭히던 악마가 아닌 소중한 친구를 잃고 남겨진 외로운 소녀가 된다.
“서은 엄마에게 주연은 딸과 친한 고마운 아이였다가, 딸을 죽인 원수였다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 서은 엄마에게 주연은 그저 한 아이일 뿐이었다. 살아야 하고, 살리고 싶은 아이.”
학교 폭력이란 단어에서 학교는 폭력이 행해진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시스템 오류와 부재를 암시한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은 적시할만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일로만 여겨지기 일쑤다. 학교 시스템과 교사, 학부모, 숱한 학생들이 어찌 연루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나.
우리는 언제든 너무 쉽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폭력에 동조할 수 있음을, 폭력을 방관할 수 있음을 일깨우며, 저 ‘학교 폭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무죄일 수 없음을 말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까이 있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도 죽어서는 안 되는 우리 학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