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경계를 넘어선 울림 : 불가리아 독자를 사로잡다

-불가리아어역 강영숙 장편소설 『리나』

  • 번역서리뷰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경계를 넘어선 울림 : 불가리아 독자를 사로잡다

-불가리아어역 강영숙 장편소설 『리나』

 

2024년 초 불가리아어로 발간된 강영숙 작가의 소설 『리나』가 불가리아 도서 시장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목받고 있다. 『리나』는 아시아 작가들의 문학을 꾸준히 소개해 온 불가리아의 유명 출판사 ‘이즈토크-자파드(Iztok-Zapad)’에서 출간되었다. 한국문학 번역에 풍부한 경험을 지닌 번역가 김소영과 야니짜 이바노바가 원작의 감정적 깊이와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불가리아어로 탁월하게 재현해 냈다.

소설 『리나』는 주인공인 소녀 리나가 억압적인 체제에서 탈출하고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난민들과 함께 험난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난민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난국과 시련을 묘사하며 이주를 통해 생존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탐구한다.

강영숙 작가의 빼어난 서술 스타일은 독자들을 사로잡아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불가리아어 번역본의 편집을 맡은 문학 비평가 스토일 로쉬케프는 “강영숙의 문체는 에밀리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세계적인 여성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불가리아어 번역본은 강영숙 작가의 특유의 시적이면서도 어두운 문체를 잘 살려 이야기의 기반을 이루는 강렬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리나』의 이야기는 불가리아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소설은 오늘날 유럽에서 핵심 이슈인 이주민 문제를 다루고 있어 유럽 국가인 불가리아의 사회적 담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한류의 인기로 불가리아 도서 시장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가운데, 과거 사회주의를 경험했던 불가리아는 전체주의 체제와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리나』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소설에서 특정 국가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소설을 한반도의 상황, 특히 탈북자들의 이야기와 연결을 짓는다. 불가리아는 한국 전쟁 이후 수백 명의 북한 고아들을 받아들여 불가리아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으로 양육한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1960년대에는 최초로 북한 체제에서 탈출한 북한인을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불가리아가 사회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감수하면서까지 탈출한 북한 대학생들을 보호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불가리아 독자들 사이에서 강영숙의 소설이 호응을 얻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리나』는 단순한 이주에 대한 서사를 넘어 인간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자유를 향한 보편적 갈망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스토일 로쉬케프가 지적했듯이, “이 소설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강렬한 서사와 뛰어난 번역으로 『리나』는 불가리아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깊은 경험을 선사하며 국경을 초월하는 울림으로 불가리아와 한국 간에 소중한 문화적 소통을 이룬다.

 

※ 불가리아어역 『리나』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김소영·야니짜 이바노바의 번역으로 2024년 불가리아 이즈토크-자파드 출판사(Iztok-Zapad)에서 출간되었다.

 

류드밀라 아타나소바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학과 교수, 1973년생
저서 『나의 첫 불가리아어』, 역서 『만다라』 『한국의 고시조』 『한국의 선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