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역 정현종 시선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일역 정현종 시선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일본의 지인, 특히 현대시와 관련이 있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한국은 시의 나라”라는 것이다. 대형서점에 가면 서가에 시집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시 전문 잡지와 출판사가 많다는 사실을 몹시 부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일본은 전통 시가의 나라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주말이 되면 각종 신문 한 면 전체에 독자들이 투고한 와카(和歌), 하이쿠(俳句)가 실리고,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는 전통 운문 관련 프로그램이 있으며, 민간 방송에서도 부정기적이지만 연예인들의 하이쿠 콩쿠르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때문이다. 근거는 불명확하지만, 취미로 전통 시가를 짓는 사람이 하이쿠 100만 명, 와카 10만 명이고, 그에 비해 현대시는 1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상당수 일본인은 전통 시가 창작을 즐기고 있다.
우리 향가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와카는 대대로 국가 차원에서 발간하는 와카 선집인 칙찬(勅撰)집뿐만 아니라 개인 와카집이 수없이 발간됐고, 서양의 계관시인에 해당하는 전문 가인(歌人)도 존재했다. 하이쿠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에도시대에 등장한 운문 장르로 상인들을 중심으로 대중화됐다. 전자는 서정성을, 후자는 해학과 사실적 묘사를 중시한다. 그에 비해 일본 현대시는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Poem)를 수용해 탄생하였기에 처음에는 ‘신체시’라 불렸다. 운문은 함축과 상징이 중시되는 문학 장르이기에 2천 년 넘게 축적되어 온 와카의 서정성과 몇백 년 동안 이어져온 하이쿠의 표현 기법을 일본 현대시가 뛰어넘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전통 시가에 비해 좁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기에 시(집)를 둘러싼 출판시장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 일본의 현대시 전문 월간지는《현대시 수첩(現代詩手帖)》(시쵸샤, 思潮社)과《시와 사상(詩と思想)》(도요비쥬츠샤슛판한바이, 土曜美術社出版販売)뿐이고 양 출판사에서는 자비 시집 출판과 중견 시인의 시선집을 ‘현대시 문고’라는 시리즈로 출판하고 있다. 그리고 매달 일반인 투고를 받아 대략 10편 정도를 선정해 게재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신인 특집호를 발행해 아마추어 시인들에게 작품 발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K-POP과 한국 드라마·영화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K-Culture’ 붐으로 일본에서도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현대소설은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지만 한국 현대시는 일부 시인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시 전문 잡지에서 가끔 ‘한국 현대시’ 특집 형태로 소개되고 있지만 낮은 지명도, 자비 출판이라는 일본 시집 출판의 특수성, 소수의 독자층이라는 3중의 난관 때문에 한국 현대시의 번역 출판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1년에 오세영 시인 시선집 『천년의 잠』을 번역 출판했고, 이번에 정현종 시인 시선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를 번역하게 됐다. 두 번의 번역 작업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자어로, 양국어의 유사한 언어 구조와 어휘가 시 번역 작업에 있어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한자어는 근대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정착한 것과 근대 이후에 일본이 서양 단어를 한자로 만든 번역어(예를 들어 Economy→經濟)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어에 수용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글 전용이지만 국어사전에는 한자가 병기돼 있어서 일본어로 번역할 때, 그대로 사용하기 일쑤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일본 고유어와 표현법을 중시하는 전통 시가의 특징으로 인해 한자어가 시적 표현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거나 한자어 간 뉘앙스 차이로 인해서 A가 아닌 B라는 한자어가 더 어울린다는 출판사 편집자 지적을 종종 받았다. 거기에 원문 중심 직역이냐 이미지 전달을 중시하는 의역이냐 하는 시 번역의 근본적 문제가 겹쳐지면 번역자와 편집자 간 생각은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양쪽 생각을 이어주는 일본 시인의 ‘감수’라는 또 하나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현대시가 품고 있는 서정성과 근대성 그리고 현실 참여라는 중층적 측면을 조금이나마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