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
단편집 한 권을 내기 위해 필요한 건 책으로 묶을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그것들을 쓸 만큼의 시간도 필요하다. 얼마 전 대산창작기금의 지원을 받아 두 번째 소설집을 냈는데, 기금을 받은 지 4년 세월이 흐르고서야 선을 보일 수 있게 됐다. 지각생을 묵묵히 기다려준 재단에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린다.
창작기금에 지원할 때까지는 내 이름을 단독으로 건 저서가 없었다. 그해 9월이 돼서야 첫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를 냈고, 이듬해 4월 첫 단편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책들로 그다지 많은 사람을 찾아가진 못했지만, 작가라고 나를 소개할 때 내 책이 있어 면구스러울 일이 없어졌다. 다음 해인 2022년 두 번째 장편소설 『엉엉』을 냈을 때는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고 있다는 사실에 좀 뿌듯해지기도 했다. 다음 해를 거르고 2024년에 두 권의 책을 냈다.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과 두 번째 단편집이자 대산창작기금의 수혜를 받은 『여기서 울지 마세요』가 그것이다. 5년 동안 다섯 권의 책이 나온 셈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참 많은 책을 열심히 낸다”고 하지만, 나는 나보다 더 많이 쓰고 잘 쓰는 작가들을 알고 있다.
책을 계속 내려면 책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낸다기보다 눈앞에 놓인 하나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써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한 움큼 흘러있고, 책이라고 부를 물성 있는 이야기의 덩어리가 형성돼있다. 요거트나 치즈 같은 것의 건더기가 엉겨 붙는 데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것처럼, 내가 할 일은 가끔 뚜껑을 열어보고 이미 세상에 내보낸 이야기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는지 한 번 휘휘 저어주는 것 정도다. 이미 시효가 지났거나 맛이 가버린 이야기라면 집착하며 매달리지 않고 과감하게 걷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치워버린 이야기가 절치부심해서 산야를 떠돌다가 몇 년이 지난 뒤에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 되면 점잖게 커피나 한잔 내려드리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얌전히 경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창작기금을 낼 때 표제작의 역할을 한 「z활불러버s」는 2019년에 쓴 글이다. 2024년에 책으로 묶을 때 세월의 영향을 혹 받지 않았는지 살펴봤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존재할 진정한 깨달음과 진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혹세무민하는 것과 국가권력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뻔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세상의 안 좋은 면이 갑자기 좋게 변하거나 나쁜 사람들이 개심하지 않았으므로 2024년의 책에 실어도 될 것 같았다. 종종 그런 상상을 한다. 세상이 경천동지하게 바뀌어버려서 이제까지 쓴 모든 것이 용도폐기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오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그럼 새로 써야지.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수고가 함께 함을 매번 느낀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함께하는 편집자부터 교정을 함께 봐주는 편집자들, 디자이너, 마케터, 인쇄소의 선생님들까지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내 책은 세상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대산문화재단 선생님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들, 인연이 되어 책과 만난 독자들까지 책을 둘러싼 사람들을 전부 헤아리면 족히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도 남을 것 같다. 그저 마을 어귀에서 햇빛 맞고 졸음 떨구는 노인네처럼 평화롭게 살고 싶다. 가을 되면 운동회도 하고, 겨울 되면 같이 군밤도 구워 먹는 그런 마을.
※ 필자의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대산문화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4년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