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수상작리뷰|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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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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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바이러스의 상상력과 팬데믹 희생양

김희선 장편소설 『247의 모든 것』

 

 

법학자이자 인문학자였던 제바스티안 브란트가 1494년 펴낸 『바보배』는 중세 시절 세상의 바보들을 한배에 태우고, 그들의 행태와 상황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조롱한 풍자시편들이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갔고 십자군 전쟁으로 피폐했던 상황에서 저자는 다채로운 바보의 풍경들을 연출한다. 탐욕을 가진 바보, 이간질하는 바보, 바른 조언을 안 듣는 바보, 예의를 모르는 바보, 경거망동하는 바보, 육욕에 빠진 바보, 계획을 세울 줄 모르는 바보, 부질없는 재물을 숭상하는 바보, 과식하고 식탐을 부리는 바보, 행운을 맹신하는 바보, 근심이 짓눌린 바보, 저 혼자 옳다는 바보, 미루기 좋아하는 바보, 뻔한 음모를 꾸미는 바보, 쾌락에 빠지는 바보, 돈을 보고 구혼하는 바보, 질투와 증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바보, 권력의 종말을 모르는 바보, 고마움을 모르는 바보, 어려운 때를 준비하지 않는 바보……

이런 바보 열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세에서 마감되지 않는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해서 수많은 변종 바보들이 명멸할 것이다. 김희선의 『247의 모든 것』(은행나무, 2024)은 팬데믹 시대의 집단적 바보들을 풍자한다.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희생양을 만들고, 그 희생양을 속절없이 타자화하면서, 희생양을 만든 자기들의 생각과 의식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존속에만 만족해하는 바보 군상이, 김희선이 형상화하여 ‘바보배’에 추가한 목록이다.

인간 김홍섭이 있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생명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 감각을 지녔던 그는 치명적인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인 변종 니파바이러스에 감염된 247번째 확진자이자 이 병의 자연 숙주로 의심받게 된다. 그로부터 그는 김홍섭이 아닌 247로 불리며 철저하게 격리되다가 마침내 지구에서 추방되기에 이른다. 우주 미아로 고독하게 존재하던 그는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공중보건과 방역을 위한 집단 통제는 과학적이기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247을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몰아 희생양을 만들며 불확실한 불안의 늪을 견디려 한다.

이 소설은 서술자가 일련의 경험과 정보를 중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서술자의 중개 정도가 영도(零度)에 수렴하는 ‘기록자’의 형식을 취한다. 즉 여러 사람이 말한 것을 들은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이 얼마나 편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가를 비판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의학적인 진단이나 과학적인 추론에 의한 정보라기보다 소문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부풀어 오르며 집단 환상을 넘어 집단 최면 상태로 치닫는다. 가령 바이러스에 걸리면 발열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면 해열제를 처방해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데, 집단 최면 상태에서는 그 상식마저 전복된다. 보통 해열제인 파라세타몰을 위험 약물로 지정하여 해열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비상식적인 조치에 집단은 광기처럼 이끌린다. 바이러스에 걸린 타인은 지옥보다 더한 끔찍한 지옥처럼 취급된다. 지옥을 천국에서 봉쇄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옥 같은 타인에게 해열제를 복용하지 못하게 하여 영원히 격리하려 한 그런 바보 같은 책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집단 광기가 247로 타자화된 김홍섭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김홍섭은 인류의 희생양이 되어 우주선에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팬데믹 시대의 신화가 된다. 그는 지구에서 살 때 아우성치는 땅속의 비명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인물이다. 지구 행성에서 인류의 잘못으로 인해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종 니파바이러스도 그런 인류의 잘못으로 인한 환경 재난의 일종인데,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생명 다양성에 대한 속 깊은 감각을 지녔던 그는 고통받는 지구의 신음을 듣는다. 바이러스와 대화한다. 그래서 지구에서 그의 삶은 너무 힘들었다. 이에 차라리 지구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구를 떠나라는 WCDC(세계질병통제센터) 수장의 제안을 그는 받아들인다. 우주선에서 고독하게 죽은 후 그는 모호한 모스부호를 통해 신화화된다. “당신들은 안전할 줄 알아? 꿈 깨라고. 영원한 격리는 있을 수 없으니까.”(p. 13)에서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세요. 오직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할 겁니다.”(p. 14)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스부호들이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이들에게 단속(斷續)적으로 전달된다. 그 다채로운 모스부호들이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반성의 지평을 형성한다.

바이러스는 편재한다. 모든 게 연결되고 어디에나 통한다. 이 소설이 여럿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병치하고 연결하려 한 것도, 그런 바이러스의 상상력 덕분이다. 이런 바이러스의 시대에도 여전히 영토화된 사고와 이데올로기에 갇힌 채 폭력적으로 희생양을 제조하는 바보들에 대한 비판적 경고가 어지간하다. 팬데믹 이전으로 단순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대전환’이 요긴하다는 것을, 김홍섭의 신화화는 상징적으로 환기한다. 김희선의 『247의 모든 것』은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를 성찰하고 회개하는 집단적 고해성사에 가깝다. 타인이라는 지옥을 넘어서, 타인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천국’에, 어떻게 더불어 같이 갈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뇌한 소설이다.

우찬제
평론가,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2년생
비평집 『애도의 심연』 『프로테우스의 탈주』 『고독한 공생』 『타자의 목소리』 『상처와 상징』 『욕망의 시학』 『나무의 수사학』 『불안의 수사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