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성취를 확인하는 대산문학상의 서른두 번째 수상작들이 모두 선정되었다. 이번 수상작 선정 과정은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진 한국문학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작업이었다.
수상작으로는 시 부문 강은교 作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 소설 부문 김희선 作 『247의의 모든 것』, 평론 부문 서영채 作 『우정의 정원』, 번역 부문 알바로 트리고 말도나도 스페인어역 『CONEJO MALDITO(저주토끼)』(정보라 作)가 선정되었다. 부문 별 5천만 원씩 총 2억 원의 상금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작품인 ‘소나무’가 상패로 수여된다. 시, 소설 부문 수상작은 재단의 번역지원 사업을 통해 여러 언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출판, 소개될 예정이다.
▲시 부문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 (강은교 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고달프고 쓸쓸한 현실에 숨을 불어넣으며,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도 아름답고 쓸쓸한 풍경을 자아낸 점 ▲소설 부문 『247의 모든 것』 (김희선 作)은 바이러스의 상상력과 관련한 생태적 탐문의 중요성을 숙고하게 하고, 이야기꾼이 내 이야기를 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다양한 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헤아리며 고뇌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한 점 ▲평론 부문 『우정의 정원』 (서영채 作)은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대결과 비판을 넘어 마음의 폭이 넓은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평론의 품격과 비평의 경륜과 삶의 깊이가 어우러진 ‘살아 있는 비평’의 길을 보여준 점 ▲번역 부문 스페인어역 『CONEJO MALDITO(저주토끼)』(알바로 트리고 말도나도(Álvaro Trigo Maldonado) 譯)는 정보라 작가의 원작이 가진 특색을 잘 살린 번역의 충실성과 높은 가독성, 해외 독자들의 반응 등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자들은 아래와 같이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번 대산의 결정은 저를 문학적으로 살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도 생각한 것이었지만, 특히 이번 시집에서 ‘내 시가 혹시 읽는 이가 있어 ‘긍정에서 오는 생의 따뜻함’과 ‘자각과 함께 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성공이다’, 라는 생각을 나의 세 평 꽃밭의 꽃들 앞에 던졌습니다.
이제 저는 시의 힘이란 바로 이것, ‘생의 긍정에서 오는 따뜻함과 자각에서 오는 공감, 행복감’을 주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저의 첫시집 『허무집』이 이제 이른 지점이죠. 그래서 현실에서, 역사에서, 시간에서, 집에서 ‘버려진-소외된 이’들을 나의 시식구로 만들어 한 마을에 살게 하고 싶습니다.” - 강은교
“막상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쳤을 때, 우리는 다 함께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갔습니다. (…) 우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악마로 몰아갔고 그의 사생활을 파헤쳤으며, ‘슈퍼전파자’라는 딱지를 붙여 삶을 파괴했습니다. 그 사람들, 코호트 격리되어 속수무책으로 죽음 앞에 내던져진 이들,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 이들. 그들은 모두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혹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요. 아니, 사실은 끝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 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귀를 막고 듣지 않았던 걸 수도 있고요.
소설가의 의무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써왔습니다. 온갖 소음과 이명으로 귓속이 언제나 시끄럽지만, 그럴수록 더 집중해서 그 목소리를 듣고 최대한 똑같게 받아적고 싶었지요.
오늘,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묘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지만, 그 묘비가 이제 아주 조금은 어렴풋하게라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부디 그러하길 바랍니다.” - 김희선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너무 뜻밖이었기 때문입니다. 백년 전의 저작들 속을 한참 헤매던 중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인 시간이 제법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습니다. 전화는 제가 받았지만 상을 받은 것은 제가 아니라는 사실, 수상자는 『우정의 정원』이라는 사실을요. 그러자 마음이 좀 편해져서, 책을 향해 축하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정의 정원』은 제 이름으로 낸 책이고 원고를 쓴 손가락의 임자 역시 저 자신이지만, 그 순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책의 대표 저자일 뿐, 제목이 그렇듯 『우정의 정원』은 명백하게 공동 저작의 산물이라는 것을요. 지면을 만들고 쓸 기회를 주신 편집자들, 글감이 된 글과 책을 쓰신 저자들, 이미 제 생각의 틀이 되어 있는 훌륭한 저자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제 머릿속에 상주하면서 실시간으로 읽고 있던 독자들, 그분들이 이 책의 공동 저자들입니다.” - 서영채
“저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외로운 것이라서 이런 상을 받는 것이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번역가가 작품의 마지막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풀어내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읽기 때문에 완벽한 독자라고요. 그 상당한 시간을 오롯이 혼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은 매우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번역들이 스페인에서도, 남미에 있는 멕시코나 아르헨티나에서도 출판되었고 그 덕분에 세계 독자들의 의견을 통해 제 번역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번역가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같은 지역에도, 지구 반대편에도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번역 작업은 외롭지만 사람들이 제가 번역한 이야기들을 사랑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응원을 받아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알바로 트리고 말도나도
제32회 대산문학상 심사 대상작은 2023년 8월부터 2024년 7월(평론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된 모든 문학작품이었다. 지난 한 해 한국문학의 작황을 확인해야 하는 대산문학상은 많은 작품 중에서 부문별로 단 1편만을 수상작으로 선정(공동수상이나 가작 없음)해야 하기에 심사위원들은 두 차례 이상 만나 장시간에 걸쳐 토론을 펼쳐야 했다. 심사위원들은 작가들의 취향과 개성이 다양하게 발휘되어 더욱 풍성해진 한국문학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며 대산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예심은 안현미 이수명 장철환(이상 시), 강동호 김미정 전성태 정한아(이상 소설) 등 소장 및 중견문인, 평론가 7명이 6월부터 약 두 달 동안 진행하였다.
본심은 고형렬 김행숙 이경수 장석남 정명교(이상 시), 우찬제 윤대녕 이승우 정지아 한기욱(이상 소설), 김수이 윤지관 전형준 조강석 황종연(이상 평론), 권미선 김현균 송상기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전기순(이상 스페인어 번역) 등 중진 및 원로문인, 평론가, 번역가들이 8월 말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를 진행하여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시상식은 11월 28일(목) 오후 6시 30분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모짤트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