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청년을 찾는 지역, 지역을 찾는 청년

  • 글밭단상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청년을 찾는 지역, 지역을 찾는 청년

광역지자체마다 매년 1만 명 이상 청년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파르게 인구가 유출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가 지방의 청년 유출을 염려하기 훨씬 더 전부터 한국의 인구이동을 설명하던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이촌향도’였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는 것이다. 1990년대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는 지방에서 먹고 살 것이 없어 상경한 청년들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다루기도 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가능하면 서울로 이주했던 것은 한국 현대사 속 한국인들의 성공 공식이었다.

왜 2010년대가 되어 한국 사회는 ‘지방 소멸’을 걱정하게 된 것일까? 하나는 지방이 청년들을 ‘거부하는’ 기제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고, 두 번째는 지방이 청년들을 ‘흡수했던’ 기제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서일 것이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 19세에 도달하는 청년 중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고학력 사회가 됐다. 고학력 사회가 진행된다는 것은 전문직이나 사무직과 공학 엔지니어를 통한 고용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같거나 더 많은 숫자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가 됐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일자리에서의 지위를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방은 사무직 일자리가 부족하고,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수도권보다 훨씬 힘들다. 지방에서 많은 여성은 집에서 가족을 돌보거나 돌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사무직 일자리가 부족하여 청년이 지역을 떠나고, 여성들은 더욱 답답해하며 지역을 떠났다. 지역의 일자리 구조와 사회적 인프라가 청년들을 ‘거부했던’ 거다.

이런 문제들은 지역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였을 텐데, 왜 지금 도드라지게 된 것일까? 서울로 향하지 않아도 되게끔 지방이 청년들을 ‘흡수했던’ 기제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방의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이래 제조 대기업들과 그들에게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 울산·창원·거제 등 지방 산업도시에 자리 잡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생산직과 엔지니어 일자리를 제공했다. 남편 혼자 벌어 4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소득을 올렸고 그게 자신감이 되었던 것이 적어도 1970년대 이후 40년간 벌어졌던 일이다. 노동운동이 폭발하면서 제조 대기업의 소득 수준은 더욱 괜찮아졌다. 그런데 2010년대를 경유하면서 제조업체들은 사내 하청을 쓰거나, 사람 손을 덜 타게끔 생산과정을 자동화했다. 엔지니어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기성세대의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를 얻지 못하니 청년들이 떠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최근에는 반작용이 꿈틀대고 있다. 지자체들은 “청년을 찾는다”고 외치며, 대졸 일자리, 여성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다. 대기업 유치가 산업화 시대 지역의 살길이었다면, 이제는 스타트업과 규모와 경쟁력을 키운 지역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역의 살길에 가까워졌다. 서비스산업의 고도화야말로 지역에서 공공부문이 실행할 미션이 됐다.

핵심은 1970년대처럼 지역을 찾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와 다른 대안을 통해 기회를 조직해 주는 일, 그리고 지역 청년들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높여주는 데 있다. 기회의 조직은 국가적 계획을 통해 집약적으로, 지역살이의 질 높이기는 현장의 목소리에 맞춰서. 넘치고 넘치는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들을 실과 바늘로 꿸 때가 아닐까 싶다.

양승훈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982년생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추월의 시대』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