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통증의 연대기

  • 단편소설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통증의 연대기

칼이 지나간 자리에 선이 남는다. 곧은 선과 꺾인 선, 그리고 동그라미. 선들이 모여 너의 이름을 이룬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름. 나를 버티게 한 이름. 네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수없이 불러온 이름. 그런데 왜 부를수록 아득하게 느껴질까. 영영 잊을 것만 같을까. 결단코 그럴 리 없을 텐데도.

선을 겹쳐 긋는다. 비바람이 지워내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겠지. 그러다 어느 날, 사라진 줄 알았던 네가 늘 자신들과 함께했다는 것을 깨닫고 제 무심함을 탓하기를.

칼을 쥔 손이 저려온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뭉친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네 이름을 충분히 부르지 못했다.

 

*

병원에서 나온 원은 길 건너 베이커리로 향했다. 아이 생일이라고 하자 이 쌤이 케이크 맛집으로 추천해 준 곳이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초코케이크를 고르고, 큰 초 하나와 작은 초 다섯 개를 부탁했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 큰 초 하나를 더 달라고 했다.

베이커리를 나서자 싸늘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을 때, 에코백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원은 발신자가 영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폰을 다시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상가 건물이 모여 있는 사거리를 벗어나면 주택들이 늘어선 오르막길이 나왔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늘 숨이 찼지만, 원은 올여름 이사 온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번잡스럽지 않았고, 새 직장이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라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원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원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옆집 노인을 제외하고는. 노인은 벌써 원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이었다.

“간호사님, 이제 퇴근해요?”

그는 원이 근무하는 병원 단골이었다. 한성자. 여. 74세. ‘어르신’이나 ‘환자분’이라는 호칭보다는 성자 씨나 한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성자 씨는 원이 이웃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척을 해 왔다.

“누구 생일이에요?”

“아… 네, 뭐.”

“그 집 케이크 맛있던데, 잘 샀네. 아! 잠시만.”
성자 씨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서 버터 쿠키 한 상자를 꺼내 원에게 내밀었다.
“자기 케이크를 자기가 사서 들어갈 거 같진 않고. 애 생일인 거 같은데, 선물.”
“아니요, 괜찮아요.”

“별거도 아닌데, 받아 둬요.”

원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고집에 쿠키를 받아서 들었다.
집에 들어온 원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 둔 뒤 따뜻한 물로 긴 샤워를 했다. 세탁물을 정리해 세탁기에 넣고, 내친김에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서야 다시 케이크를 꺼냈다. 고르게 발린 초콜릿 크림 위에 다크 초코볼과 하트 모양 화이트초콜릿 장식이 앙증맞았다. 긴 초 한 개와 짧은 초 다섯 개를 집었다가 짧은 초들을 내려놓고 긴 초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그때, 영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내일 계획에 대해 또 달갑지 않은 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것이리라.

6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지도 15년이 지났다. 함께한 날보다 더 많은 날을 남으로 지냈으나, 아이 때문에 완전히 남이 되지는 못했다. 아이가 사라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영재와 함께한 날들을 후회하던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니 그 후회마저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어떤 후회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갖고 싶어 하던 운동화를 사 줄 것을. 놀러 가자는 약속을 미루지 말 것을. 그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아이를 제 곁에 두었더라면, 그 시각, 그 장소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아이는 지금 제 곁에서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겠지. 예견된 인재. 반복되는 비극. 이런 말은 아이와 무관한 것이었을 텐데.

케이크 위로 떨어진 촛농이 어느새 굳어 버렸다. 원은 초를 불어 끄고 테이블 한쪽에 던져놓은 쿠키 상자를 노려보았다. 옆집 노인은 원의 아이가 이제 여기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술 취한 원이 현관 앞에 널브러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주절대는 광경을 목격했으니까. 원이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불쌍해 보였나. 그렇다 해도 굳이 이런 걸 챙겨줄 필요까진 없지 않나. 아이가 살아 있는 척할 때마다 제 거짓말에 한술 더 뜨는 그의 의뭉스러움이 징그러웠다. 어디까지 장단을 맞춰 주나 지켜볼 생각이다. 어쩌면 그는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원이 참여한 시위는 여러 차례 매체에 보도되었고, 작년에는 원이 직접 인터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닌 이상, 그 모습을 기억하고 알아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원 역시 당장 엊그제 뉴스에서 보았던 얼굴들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케이크에서 촛농을 떼어낸 뒤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았다. 진한 단맛에 조금 몸서리가 쳐졌다. 아이가 틀림없이 좋아할 맛이었다.

 

*

원과 영재는 경찰서 앞 손두부 집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두부찌개 2인분이 나오자, 원은 고춧가루를 푼 칼칼한 국물을 허겁지겁 떠먹었다. 뜨거운 두부에 입천장이 데어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허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늘 모인 이들은 작년보다 적었다. 놀랍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안부가 궁금할 뿐. 그들이 준비해 온 물감과 스프레이 따위를 꺼내 들자, 카메라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취재진 역시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역시 놀랍지는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일보다는 새 기삿거리를 쫓고 싶을 테니까. 그렇지만 서운하고 화가 났다. 원과 사람들은 침묵하는 이들을 향해 붉은색 물감을 뿌렸고, 차례로 연행되었다.

영재는 좀 전부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면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원이 먼저 침묵을 깼다.

“나 데리러 온 거 알면 와이프가 싫어하는 거 아냐?”

“말 안 했어.”

“왜?”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왜 그럴 필요가 없는데?”

“됐다. 그만하자.”

“뭘 그만해? 넌 한 것도 없으면서.”

영재는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원을 바라보았다. 어딜 가도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듣곤 하던 그는 이제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원은 저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꼭 너처럼 요란하게 쇼를 해야 뭘 한 거야? 그럴수록 역효과가 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 말은 우스워?”

“쇼? 그래, 그거라도 해야지. 그동안 얌전히 있어서 뭐 해결된 거라도 있어?”

그들이 격한 행동을 하면 비로소 카메라가 그들을 비췄다. 사람들이 다시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한데 모여 통곡했다. 그다음에는 제 몸에 붉은 물감을 들이부었고, 많은 이들이 반응했다. 그러나 다음에도 같은 일을 벌이자 사람들은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들 행위를 참신하지 않은 퍼포먼스라도 보듯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감을 뿌릴 대상을 바꾸었다. 모두를 위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그럼, 네가 한 일로 뭐 달라진 건 있고? 병원에서 잘리기나 했지.”

“자르라지. 그리고 내가 그만둔 거야. 그런 그지 같은 곳.”

지난해 한 중형 병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던 원은 4개월 만에 그곳을 나와야 했다. 누군가 뉴스에 나온 원을 알아보고 병원에 따져 물었다고 했다. 원장은 원에게 질문했다. “그거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 겁니까?” 원은 답했다. “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자 원장이 다시 물어왔다. “그냥 순수하게 슬퍼하면 안 됩니까?” 원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무결한 애도에 대해 고민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딴 건 쓸모가 없었다.

모두 원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원은 그들 방식을 존중했지만 어쩐지 영재 말만큼은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성적인 척 저를 타이르려는 게 꼴 보기 싫었다. 그럼에도 그날 이후로 자꾸 그를 찾게 되었다. 그가 원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겁쟁이. 비겁한 새끼. 평생 도움 안 되는 놈.”

원의 목소리가 커지자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흘끗거렸다. 원은 그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뭘 봐? 너희도 다 똑같아. 똑같이 재수 없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영재는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원은 유리창 너머로 담배를 꺼내 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더는 제 부름에 응하지 않는 날이 올까 두려웠다. 그렇게 하나씩 사라지고, 홀로 이 싸움을 계속하게 될까 봐.

원은 가게를 나와 영재 옆에 나란히 섰다. 영재는 원을 피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전화나 좀 받아. 넌 너 할 말 있을 땐 잘도 전화하면서 왜 내 전화는 자꾸 씹냐?”

“빤하잖아. 오늘 나오지 말라고 했겠지.”

“…”

“아이는 잘 커? 내년에 중학교 들어간다고 했던가?”

“시비 걸고 싶은 거 알겠는데, 거기까지만 해.”

원은 아이 안부가 정말로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 애는 제 아이가 아니었지만, 제 아이의 하나뿐인 동생이었으니까. 원은 진심으로 그 아이가 무사히 자라기를 바라고 있었다.

 

휴일을 보내고 출근한 원은 조금 긴장했다. 이번 싸움은 작년보다 더 많은 곳에서 보도되었다. 사람들이 그걸 보았을까. 거기 원이 있었다는 걸 알아봤을까. 그러나 병원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원을 대했다. 원장이 따로 원을 부르는 일도 없었고, 이 쌤은 아이와 어디 좋은 곳이라도 다녀왔느냐고 물어왔다. 긴장이 풀리자, 실망감이 몰려왔다.

늦은 오후에는 성자 씨가 내원했다. 성자 씨는 지속적인 소화 장애를 앓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통증을 호소해 내시경을 권했지만 계속 미루는 중이었다.

“한 선생님, 오늘은 날짜 잡아요. 네? 그런다고 병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아요.”

“아유, 알았어. 우리 간호사님은 생일 파티 잘했고?”

성자 씨는 이 쌤의 잔소리를 흘려들으며 자연스레 원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원은 일부러 뻔뻔하게 대꾸했다.

“네, 쿠키도 잘 먹었어요. 애가 좋아하더라고요."

“그래? 잘됐네. 그거 맛있거든.”

역시나 만만치 않은 반응이었다. 결국 먼저 자리를 피한 쪽은 원이었다.

그러나 원은 퇴근 후 다시 그를 마주쳐야 했다. 그는 빌라 현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끙끙 앓고 있었다.

“한 선생님, 괜찮으세요? 병원으로 갈까요?”

“아니, 집으로… 좀 누워 있으면 돼요.”

원은 하는 수 없이 그 말을 따라 주었지만 아픈 사람을 문 앞에 던져두고 갈 수는 없었다.

성자 씨의 집에 들어선 원은 세련된 인테리어에 놀랐다. 벽지와 가구를 화이트와 밝은 그레이 톤으로 맞춰 모던한 느낌을 주면서도 곳곳에 포인트 컬러를 활용해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가구는 꼭 필요한 것만 놓여 있었고 너저분하게 꺼내놓은 물건도 없었다. 같은 구조인데도 원의 집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성자 씨는 옷도 잘 입는 편이었다.

원은 성자 씨가 겉옷을 벗고 침대에 누울 수 있도록 돕고 따뜻한 물과 약을 가져다주었다.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찜질팩도 데워 성자 씨의 배에 올려놓았다.

“계속 안 좋으시면 지금이라도 저랑 병원 가요.”

“아까 다녀왔는데.”

“상황이 나빠지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가야죠. 대체 검사는 왜 자꾸 미루세요?”

“내 병은 내가 잘 알아요.”

“무슨 병인데요?”

성자 씨는 대답 대신 끙 소리를 내며 자세를 바꿔 누웠다. 원은 그런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 침대 맞은편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판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숲속에 서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찍어낸 작품이었다. 여자의 진한 눈썹과 고집스러운 입매가 인상적이었다. 정면에서 비껴간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여자 뒤로 펼쳐진 숲은 검은빛이 도는 녹색이었고, 하늘은 붉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림은 아니었다. 직접 그린 걸까. 원은 성자 씨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었고, 은퇴 후에는 노인 복지센터에서 그림 강좌를 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가 내원할 때마다 자꾸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바람에 자연스레 알게 된 정보였다.

“날카로운 게 속을 자꾸 긁어요.”

원은 들려오는 말소리에 성자 씨를 돌아보았다. 그는 모로 누워 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가 긁히는 느낌이 드세요? 출혈이 있을지도 몰라요. 당장 내시경 날짜 잡으세요.”

“그래서 아직 여기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네?”

원은 성자 씨가 하는 말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잘 들어 봐요. 그림에서 목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거든.”

제가 죽은 아이를 산 아이처럼 말하고 다닌다고 해서 정말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까. 어디까지 미쳤는지 시험이라도 하려는 건가.

“사람 놀리니까 재미있으세요?”

“내가 간호사님을 왜 놀려요?”

“이만 가 볼게요. 밤새 통증이 더 심해지면 응급실이라도 가 보세요. 검사는 꼭 받으시고요.”
성자 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원에게는 그 모습마저 연극적으로 느껴졌다. 현관을 나서는 원의 등 뒤로 성자 씨가 외쳤다.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요.”

고약한 노인네. 원은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왔다.

 

*

적막한 밤을 견디려면 뭐라도 틀어 놓아야 했다. 원이 택한 것은 자연 과학 다큐멘터리였는데, 거짓말을 덜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공룡에 관한 내용을 즐겨보았다. 사람들이 이미 사라진 것들을 계속 궁금해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 무엇이 공룡을 멸종시켰을까요? 우리는 아직 그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원은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영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한동안 비어 있던 자리가 얼마 전부터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주로 그의 아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전에는 영재 프로필 사진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사진 속 체육복 차림 아이는 1등이라고 적힌 선물 상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운동회에서 계주라도 뛴 모양이었다. 원의 아이도 달리기를 잘했다. 열두 살 때 시장 배 육상대회 200m 부문에 참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었다. 원은 운동에 영 소질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두 아이 모두 영재 피를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생김새만 놓고 보면 아이들은 그리 닮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은 습관적으로 닮은 점을 찾았다. 어른이 된 두 아이가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영영 오지 않을 순간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을 자꾸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잔뜩 취하고 싶어졌다.

기어코 소주 한 병을 비운 원은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영재에게 또 전화를 걸고 말았다. 꼭 아이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동생이나 친구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영재는 아이 아빠였다. 그는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몸을 뒤집었을 때를 알았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것도, 슬슬 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도 지켜봤다. 그러니 그도 아이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비록 원과는 남남처럼 지내왔다 하더라도.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영재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애 아빠가 지금 곯아떨어져서 대신 받았어요. 원 씨 이름이 보이기에… 괜찮다면 우리 한번 볼까요?”

서둘러 통화를 마친 원은 술병을 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뒤척이는 원의 귓가에 방금 전까지 떠들어 대던 목소리가 맴돌았다.

- 하지만 공룡은 이 땅에 존재했습니다. 당신이 보지 못했다고 해도요.

 

*

늦은 밤 근린공원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중년 부부와 운동기구를 이용 중인 나이 든 남자뿐이었다. 원은 공원 가장자리에 그려진 트랙을 따라 걸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이 자꾸만 트랙을 벗어나려 해서 주의해야 했다. 술기운이 올랐지만, 취한 것은 아니었다.

원이 영재 아내와 대면한 것은 오늘이 두 번째였다. 첫 만남은 아이 장례식장에서 이뤄졌는데 그때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다부지고 당당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원보다는 두 살밖에 어리지 않았는데 대여섯 살 이상은 차이가 나 보였다. 그 여유와 젊음은 그의 아이가 여전히 살아 있는 덕분일까.

원은 그가 제게 자신들의 삶에서 그만 나가 달라고 부탁할 거라 예상했다. 아무리 큰일이 있었다고 해도, 전처와 연락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원의 삶에서 사라져 줄 거라고 했다. 곧 먼 나라로 이민을 갈 계획이라고. 영재를 만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결국엔 지 와이프 입을 빌리다니, 찌질한 새끼.

걸음 속도는 점점 빨라져, 한 바퀴를 다 돌았을 즈음에는 달리고 있었다. 트랙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원은 아이와 함께 달리는 상상을 한다. 아이는 원의 어설픈 자세를 보며 깔깔거린다. 원은 엄마를 놀리느냐고 화내는 시늉을 하다 저를 앞질러 가는 아이 뒷모습을 지켜본다. 너는 왜 그렇게 달리기를 잘할까. 아이는 점점 빠르게 달린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영영 원으로부터 멀어져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아이는 정말 이곳에 있었나.

종종 어디부터가 상상이고 어디부터가 실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원의 곁에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야 했다. 원이 전에 살던 동네를 쉽게 떠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이와 함께 살던 집, 같이 걷던 거리, 방문했던 가게들. 그런 것들에서 아이와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곳을 떠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데, 오직 아이만이 없었다. 원과 마주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던 사람들도 점차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은 아직 아이를 보내지 않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데, 다들 아이를 지워가는 것 같았다. 원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까.

그런데 씨발, 그게 무슨 소용이지.

두 바퀴를 채 달리지 못하고 토기를 느낀 원은 가까운 나무에 기대 구역질을 했다. 누군가 원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돌아보니, 성자 씨였다.

“아니, 야밤에 웬 미친 여자가 뛰어댕기나 했더니 간호사 선생님이잖아.”

이번에는 원이 성자 씨 부축을 받았다.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 원은 선뜻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주저했다. 오늘따라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더 두려웠다. 그런 원을 지켜보던 성자 씨가 물었다.

“우리, 한 잔 더 할래요? 애매하게 취하면 잠도 안 올 텐데.”

원은 못 이기는 척 성자 씨를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성자 씨는 선물로 받았다는 매실주를 꺼내고 재빨리 달걀 세 개를 풀어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근데, 속 안 좋으시잖아요. 술 드시면 안 될 텐데.”

“매실은 속에 좋으니 괜찮아요.”

궤변이었지만, 원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술잔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원이 두 번째 잔을 받아 들었을 때,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걷어보니 제법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성자 씨는 테이블 위 스탠드 불만 남겨둔 채 거실 등을 껐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원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자꾸 제 거짓말에 장단을 맞춰 주세요?”

“거짓말?”

“우리 애 죽은 거 아시잖아요. 그때 복도에서 다 들었으면서. 생일 선물 같은 건 왜 주시는 건데요?”

“난 간호사 선생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 말을 진짜 믿는다고요?”

“내 수강생 중에 오랜 벗을 잃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판화는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어서 좋다고. 그리운 얼굴을 자꾸 찍어내면 그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라고요. 쉽게 잃어버리지 않을 거 같아서 안심된대요.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은 사라져 버리기 쉬우니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내가 하는 작업이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도 내가 보고 싶은 얼굴들을 새기기 시작했어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들을요. 그랬더니….”

성자 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였다. 원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 그에게 집중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던 성자 씨가 곧 다시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린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아… 전에 말씀하셨던 그 목소리요? 뭐, 귀신같은 거예요?”

원은 또 다시 시작된 목소리 타령에 맥이 풀렸다. 그러나 성자 씨 표정은 진지했다. 적어도 원을 골탕 먹이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헛소리하는 거 같아요? 나, 그거 때문에 무당까지 찾아갔어요.”

“무당이 뭐라는데요?”

“한 맺힌 귀신이 농간을 부리는 거라고 굿을 해야 한다네. 됐다고 했어요. 목소리들이 그랬거든. 자기들은 그냥 머무르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뭐 어쩌겠어. 계속 새길 수밖에.”

“….”

“저 노인네가 미쳤나 싶죠? 근데 난 내가 겪은 걸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간호사님도 그랬겠죠.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 이도 아이 존재를 계속 느끼나 보구나. 이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데.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안 그래요?”

원은 성자 씨의 말에 어이없으면서도 반박할 수 없었다.

“침실에 걸려 있던 사람은 누군데요?”

“우리 언니요. 7년 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언니 목소리가 자주 들려요?”

“가끔. 근데 우리 언니가 좀 심술 맞아서 정작 내가 듣고 싶을 땐 잘 안 들려줘요.”

빗줄기는 조금씩 더 거세지고 있었다. 원은 남은 잔을 비우고 다시 술병을 기울였다. 성자 씨는 미친 사람인가. 근데 그게 문제가 되나. 원에게 상처를 준 이들은 모두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원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다들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아이가 제 아빠랑 결혼한 여자를 만난 적이 있대요. 그 여자가 그러더라고요. 아이가 살아 있을 때 집으로 초대했었다고요. 아주 바르고 선한 아이였다고. 전 전혀 몰랐거든요. 애가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아이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부터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제 아빠와 만났다. 사춘기에 접어들고서는 만남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굴었지만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있다는 걸 까먹고 지내면 괘씸하잖아. 그래서 만나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아이가 참 당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어쩌면 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화가 나거나 당황스럽기보다는 안도가 됐어요. 아직도 아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요. 사람들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걱정도 하고 불만도 늘어놓고 자랑도 하고. 그렇게라도 아이를 느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없다는 건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 제 거짓말을 무너뜨리려고 현실을 들이밀까 봐… 전 한 선생님처럼 진짜로 믿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척하는 거거든요. 안 그럼 아이가 정말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거 같아서… 무서워서…”

원의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다. 성자 씨 말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성불? 좋지. 천국? 좋은 곳이겠지. 근데 여기서 해야 할 게 많대. 산도 가고, 바다도 가고, 봄이면 꽃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 가고 싶대…

눈을 떠보니 침대 위였다. 성자 씨는 원 옆에 누워 작게 코를 골고 있었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원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서 흘러들어온 스탠드 불빛이 방 안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방을 나서려던 원은 그림 앞에 멈춰 서서 여자를 마주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흐릿해져 가는 것을 보며 외로웠는가. 화가 났는가. 혹 당신 눈에는 내 아이가 보이는가. 내 아이는 어디에 있나. 귀를 기울여 보아도 그림 밖에 서 있는 원은 그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온 원은 반나절을 숙취에 시달렸다. 마침 휴무일인 게 다행이었다. 저녁 무렵 택배를 들여오려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문고리에 걸린 쇼핑백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조각칼 한 세트와 판화용 나무판, 잉크와 롤러, 도화지 따위가 들어 있었다.

원은 테이블 위에 그것들을 올려 두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작은 판 위에 아이의 얼굴을 새기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몇백 번이고 새길 것이다. 지난 5년간 수없이 많은 기도를 해 왔지만,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각칼을 쥐었다. 아이의 얼굴을 그려낼 솜씨는 없어서 대신 아이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목판 위로 선이 그어질 때마다 지난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너의 가지런한 눈썹을 닮은 가로선. 네가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만든 카네이션. 계주 경기에 나간 네가 앞서 달리던 선수를 제쳤을 때 들려오던 환호 소리.

너의 곧은 콧대를 닮은 세로선. 열이 펄펄 끓는 너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밤. 혼잡한 쇼핑몰에서 너의 손을 놓쳤을 때 느꼈던 공포.

너의 부드러운 턱 선을 닮은 동그라미. 아이를 혼내고는 후회하던 밤.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를 원망했던 날들.

아이 이름을 완성한 원은 영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영재, 넌 공룡이 정말 있었다고 믿어?”

“한밤중에 전화해서 뜬금없이 뭔 공룡 타령이야? 또 술 마셨어?”

“믿어, 안 믿어?”

“내가 믿고 말고 간에 당연히 있었지.”

“왜? 지금은 없는데. 직접 보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증거가 있잖아. 화석 같은 거.”

“그렇지. 증거가 있지.”

“괜찮아?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영재가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원은 두려웠다. 아이 존재를 확인시켜 주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가끔은 다 꿈속 일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리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수 있나. 아니, 차라리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꿈이었다면 좋겠다. 그럼 아이가 느꼈을 고통도 허상일 테니.

하지만 아이는 분명 여기, 원의 곁에 있었다. 원은 그 사실을 증명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싸워야 했다. 원의 아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

함께 술을 마신 뒤로, 원은 성자 씨를 마주하기가 조금 민망했다. 그러나 성자 씨는 그날 밤 일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덕분에 원도 곧 전처럼 그를 대할 수 있었다. 원은 성자 씨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술을 얻어 마신 값이라고 했지만 핑계였고 실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혹 자신이 성자 씨를 이용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쪽이 먼저 오지랖을 부려오지 않았는가.

성자 씨는 기꺼이 초대에 응해 주었다. 원은 칼칼하고 뜨끈한 어묵탕을 끓였다. 메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주도 곁들여야 했다. 이틀 뒤에는 성자 씨가 굴전을 부쳤다며 원을 불렀다. 원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닭볶음탕을 만들었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가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원은 성자 씨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20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딸은 외국에서, 아들은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매콤한 음식과 주전부리를 좋아하고, 시럽을 타지 않은 라떼를 즐겨 마셨다. 쇼팽을 좋아하지만, 임영웅이 나오는 프로그램도 즐겨 찾아보곤 했다. 젊었을 때부터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니 속이 아픈 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며, 약을 먹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우겼다.

성자 씨는 원에게 자신이 작업한 판화 몇 점을 보여 주었다. 그가 남기고 싶었다는 얼굴들이 담긴 그림이었다.

“판화는 동양에서는 불경, 서양에서는 성경 내용을 찍어내며 발달했대요. 그래서 그런가, 그림을 새기다 보면 칼끝에 마음을 담게 돼요. 그 마음을 여러 장으로 찍어내면 기도를 널리 퍼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요.”

“이분들 목소리가 다 들리는 거예요?”

“그렇죠. 근데 보통 혼잣말들을 해서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더라고요. 나한테 말을 거는 건 우리 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요?”

“성자야, 오늘은 날이 좋아. 얘, 우리가 같이 가던 카페 기억나? 그런 소소한 이야기요.”

원은 그림 목소리를 듣는다는 성자 씨 주장이 더는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목소리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원도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원은 성자 씨의 다른 그림들도 좋았지만, 언니를 그린 게 가장 좋았다.

“이 숲은 꼭 주변을 다 빨아들일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해져요. 여긴 어디예요?”

“어릴 적에 악몽을 자주 꿨어요. 언니와 내가 숲속을 헤매고 있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서 언니를 삼켜버리는 꿈이었어요. 꿈에서 본 풍경이 너무 생생해서 원래 알던 곳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 숲이에요? 근데 왜 하필 거기를 그렸어요? 언니분 무섭게.”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

원이 판화에 관심을 보이자, 성자 씨는 원에게 조각칼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는 원이 조각칼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지 못할 것이었다.

단풍나무 줄기에 선을 긋는다. 칼끝에 저항하는 힘이 느껴지고, 원의 몸에도 힘이 들어간다. 단풍나무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버텨내는 힘. 그 끝에 남게 될 결과물. 원에게는 그런 게 필요했다.

원은 아이가 다녔던 학교와 어릴 적 놀던 놀이터의 나무에 아이 이름을 남겼다. 아이가 머물렀던 곳들과 좋아했던 곳들을 찾았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소개해 주었다. 이 건물에 엄마가 일하는 병원이 있어. 여긴 엄마가 종종 산책하는 곳이야. 네가 있었다면 저녁을 먹고 함께 이곳을 걸었을 텐데.

자리에서 일어난 원은 뒤로 물러서 나무를 보았다. 잎을 떨군 나뭇가지가 앙상했다. 고작 몇 발짝 떨어졌을 뿐인데, 줄기에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새겨 넣은 아이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한갓진 곳을 찾아온 커플이 멍하니 서 있는 원을 흘끗 보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원은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색색의 놀이기구와 동물 모양 머리띠를 쓴 사람들, 달콤한 설탕 냄새를 풍기는 솜사탕과 추로스 가게. 원은 아이가 머무를 세계가 이 놀이공원 같기를 바랐다. 무채색이 되어 버린 원의 세계와 같은 곳이 아니라. 관광지나 놀이공원에 제 이름을 낙서하는 이들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이 이 알록달록한 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겠지. 세상은 무엇이든 빠르게 잊으려 하니까.
그러니 원은 아이의 증거를 남겨야 한다. 더 선명하고 더 깊게.

 

*

원은 잠결에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비명, 다급한 고함… 떠올리고 싶지 않은 소리가 되살아났다.

점점 가까워져 오던 사이렌 소리는 원의 집 아래에서 멈췄다. 잠시 뒤, 복도를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옆집 문을 두드리며 “계세요?” 하고 외쳤다. 그제야 원은 마취에서 풀려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보니 구급대원들이 성자 씨의 집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원이 묻자, 구급대원 중 한 명이 답했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옆집하고 잘 아세요?”

그때, 성자 씨의 집 문이 열렸고, 구급대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실신한 성자 씨를 들것에 싣고 나왔다.

“제가, 제가 같이 갈게요!”

원은 대충 손에 잡히는 점퍼를 걸치고 나와 구급차에 올라탔다.

성자 씨는 위궤양으로 인한 급성 위경련이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정신을 잃기 전에 스스로 신고한 모양이었다. 원은 링거를 꽂고 잠이 든 성자 씨 옆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심야의 응급실은 원을 악몽 같던 밤으로 데려갔다. 아이의 창백한 얼굴, 돌아오지 않던 맥박.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기 아이는 살리지 못하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 그 이후로 병원 일 같은 건 다시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자신 역시 다른 이들처럼 적응해 가는 걸까.

잠에서 깬 성자 씨는 한결 나아진 듯했다. 원은 기어코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성자 씨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니까 검사 좀 제때 받으라고 했잖아요. 이게 뭐예요?”

“나 때문에 고생했네. 미안해요.”

“잠 한번 자고 나면 끝나는 검산데 그렇게 어려워요?”

“그게 아니라 목소리가…”

“왜요, 그 목소리가 검사도 받지 말래요? 그거, 사람 잡는 목소리 맞네. 무당 말대로 쫓아내 버려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힘없이 중얼거리던 성자 씨가 또다시 통증을 느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원은 성자 씨를 남겨두고는 황급히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제게 성자 씨를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 검사를 미루는 환자들이야 많았다. 그렇지만 그가 고집을 부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더 묻지 않았나.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 왜 술을 마시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자신에게 그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닌가.

성자 씨는 며칠간의 병원 신세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퇴원 날까지 그를 돌보았다. 성자 씨 아들 내외는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원에게 충분히 감사 인사를 했다. 원은 성자 씨를 챙기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원은 성자 씨의 저녁 초대를 거절했다. 가까웠던 사람이 떠나가는 장면을 또 목격할 자신이 없었다. 성자 씨가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가 제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 보았다. 아직까진 괜찮을 것 같았다. 자신이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자 씨도 불편해하는 원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더는 원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시 고요해진 저녁, 공룡 다큐멘터리가 원의 술 상대 자리를 되찾았다.

- 멸종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개소리. 원은 잔에 남은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중얼거렸다. 걔네가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졌나. 다큐를 끄자 깊은 적요가 원을 짓눌렀다. 차라리 귀신 목소리라도 들린다면 나으려나. 원은 괜히 허공에 귀를 기울여 보았고 곧 그런 제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다.

 

*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원은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낮부터 흐리더니 기어코 비가 오려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날카로운 칼끝이 살갗을 베는 듯했다. 작업 속도를 높여 보려 해도 손이 얼어붙어 쉽지 않았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조각칼에 의심이 들었다. 세상 온 나무에 이름을 새긴다고 누가 아이를 기억해 줄까. 끝내는 지워져 버리는 게 아닐까.

길을 잃은 칼날이 원의 손등 위를 지나갔다.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던 원은 문득 제 몸에 아이의 이름을 찍어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손등의 피를 방금 새긴 이름에 묻혔다. 그리고 그 위에 제 손바닥을 대고 꾹 눌렀다. 피는 마르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주먹을 쥐어 보지만 아이 이름은 잡히지 않았다.

베인 자리가 욱신거려왔다. 이 통증만큼은 생생하구나. 남은 건 오직 이것뿐이로구나. 원은 그제야 성자 씨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 여기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원은 성자 씨의 놀란 표정을 마주하고 나서야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제 꼴이 말이 아니라는 것도.

“무슨 일 있어요?”

“죄송해요.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안 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비를 맞고 다녀요? 감기 걸리게. 아니, 손은 또 왜 그래?”

“별거 아니에요. 늦었는데 쉬세요.”

원은 당황한 성자 씨를 남겨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왜 갑자기 성자 씨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어리광이라도 부리려 했나. 원은 젖은 겉옷을 벗고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손등에서는 아직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소독해야 했지만,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가만히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성자 씨일 것이었다. 그대로 돌아가 주기를 바랐지만, 초인종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구급상자를 품에 안고 성큼성큼 들어온 성자 씨는 원을 제 앞에 앉히고 상처를 살폈다.

“어디에 벤 거예요?”

“조각칼이요.”

“어이구, 그림을 몸에다 새겼구먼. 그러라고 준 건 아니었는데.”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

성자 씨는 상처에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거즈를 댄 뒤 반창고를 붙였다.

“내가 간호사 선생님을 간호하게 될 줄은 몰랐네. 흉 질 거 같은데, 날 밝으면 병원 가 봐요. 더 잘 알겠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까 봐 두려우세요?”

성자 씨는 뒷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물끄러미 원을 바라보았다. 원은 제 손 위에 붙은 거즈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두렵더라고요.”

“…”

“이 통증이야말로 아이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 같아서… 그래서였나 봐요. 아픈 선생님을 붙잡고

술을 마신 것도. 다른 사람도 계속 아팠으면, 했나 봐요.”

성자 씨는 구급상자를 마저 정리했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언니가 서 있던 숲이 어디냐고 물었죠? 그 숲, 정말 있는 곳이에요.”

“그랬군요.”

“꿈을 꾸기 시작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됐어요. 내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고, 커다란 그림자가 언니를 덮친 것도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요. 내가 그 기억을 모두 지워버렸던 거예요. 고통을 언니 몫으로 미뤄두고 혼자 도망친 거죠. 그 일은 그렇게 언니와 나, 그림자만이 아는 비밀이 되어버렸어요.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었고, 언니는 이제 여기 없죠. 사라진 내 기억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했고요. 그럼 그 일은 없던 게 되어 버리는 걸까요?

언니가 그림 너머로 말을 걸어오면 지워졌던 이미지가 다시 선명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통증이 느껴져요. 어쩌면 내가 없애버린 기억을 언니가 내 안에 새겨 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난 그걸 새길 판이 되고 싶었어요. 지금 원 씨처럼요.

알아요. 그날 일어난 일이 내 잘못이 아니란 걸. 하지만 우리 언니도 잘못한 건 없었죠. 간호사님도, 간호사님 아이도요. 그런데도 우린 통증을 느껴요. 그건 잘잘못을 따지며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난 내 통증을 잊자 언니 통증까지 사라진 것처럼 굴었어요.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누가 통증을 끌어안고 살고 싶겠어요. 빨리 털어내고 싶겠지.”

“고통을 잊고 나아간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어쩔 땐 한없이 잔인한 일이기도 해요.”

“…”

“그래서 계속 새기는 거 같아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기억을 찍어내 퍼뜨리려고. 내가 그림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알아요?”

“…뭔데요?”

“세상은 지금껏 그렇게 굴러왔대요. 자꾸 지워내고, 끊임없이 남기면서요.”
원은 한때 이곳에 있었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선가 그들 이름을 새기고 있을 사람들도.

“아팠겠다.”

성자 씨가 다친 원의 손등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이는 원이 아닐 것이었다. 그래도 원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네, 아파요. 다들 아파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러자. 우리가 다들 아프게 만들어 버리자.”
원은 아프지 말라는 말보다 그 말이 더 좋았다.

 

*

바람에 따뜻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며칠 전까지 패딩 일색이었던 거리에 가벼운 겉옷을 걸친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병원을 나온 원은 조금 걷고 싶어져 집까지 빙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끼고 돌다 보면 천변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나왔다. 그곳에도 아이 이름이 새겨진 나무가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조그맣게 새겨진 이름을 찾았다.

원은 나무가 상처를 회복하는 방식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게 아니라 상처 주변에서 자라난 조직으로 상처를 덮어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했다. 아이의 이름은 다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 보호를 받으며 나무와 함께 자라날 것이다.

가지 끝에 돋아난 연초록빛 작은 잎을 발견한 원은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중년 여자를 붙잡고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잎이 돋았어요.”

여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원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이제 정말 봄이네요.”

원과 나란히 서서 잎을 바라보던 여자는 핸드폰 카메라로 그것을 찍어 갔다. 원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이의 이름이 증식해 나가는 광경을 상상했다. 이 나무는 살아 있으니까, 상처를 회복하며 아이를 품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겠지. 계절을 반복하겠지.

그날 밤, 원은 제 가슴께에 생겨난 작고 푸른 점을 발견했다. 공룡 발자국을 닮은 모양이었다.

조진주
소설가, 1985년생
장편소설 『살아남은 아이』, 소설집 『다시 나의 이름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