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지나간 자리에 선이 남는다. 곧은 선과 꺾인 선, 그리고 동그라미. 선들이 모여 너의 이름을 이룬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름. 나를 버티게 한 이름. 네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수없이 불러온 이름. 그런데 왜 부를수록 아득하게 느껴질까. 영영 잊을 것만 같을까. 결단코 그럴 리 없을 텐데도.
선을 겹쳐 긋는다. 비바람이 지워내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겠지. 그러다 어느 날, 사라진 줄 알았던 네가 늘 자신들과 함께했다는 것을 깨닫고 제 무심함을 탓하기를.
칼을 쥔 손이 저려온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뭉친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네 이름을 충분히 부르지 못했다.
*
병원에서 나온 원은 길 건너 베이커리로 향했다. 아이 생일이라고 하자 이 쌤이 케이크 맛집으로 추천해 준 곳이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초코케이크를 고르고, 큰 초 하나와 작은 초 다섯 개를 부탁했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 큰 초 하나를 더 달라고 했다.
베이커리를 나서자 싸늘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을 때, 에코백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원은 발신자가 영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폰을 다시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상가 건물이 모여 있는 사거리를 벗어나면 주택들이 늘어선 오르막길이 나왔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늘 숨이 찼지만, 원은 올여름 이사 온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번잡스럽지 않았고, 새 직장이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라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원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원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옆집 노인을 제외하고는. 노인은 벌써 원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이었다.
“간호사님, 이제 퇴근해요?”
그는 원이 근무하는 병원 단골이었다. 한성자. 여. 74세. ‘어르신’이나 ‘환자분’이라는 호칭보다는 성자 씨나 한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성자 씨는 원이 이웃이라는 사실을 안 뒤로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척을 해 왔다.
“누구 생일이에요?”
“아… 네, 뭐.”
“그 집 케이크 맛있던데, 잘 샀네. 아! 잠시만.”
성자 씨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서 버터 쿠키 한 상자를 꺼내 원에게 내밀었다.
“자기 케이크를 자기가 사서 들어갈 거 같진 않고. 애 생일인 거 같은데, 선물.”
“아니요, 괜찮아요.”
“별거도 아닌데, 받아 둬요.”
원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고집에 쿠키를 받아서 들었다.
집에 들어온 원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 둔 뒤 따뜻한 물로 긴 샤워를 했다. 세탁물을 정리해 세탁기에 넣고, 내친김에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서야 다시 케이크를 꺼냈다. 고르게 발린 초콜릿 크림 위에 다크 초코볼과 하트 모양 화이트초콜릿 장식이 앙증맞았다. 긴 초 한 개와 짧은 초 다섯 개를 집었다가 짧은 초들을 내려놓고 긴 초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그때, 영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내일 계획에 대해 또 달갑지 않은 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것이리라.
6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지도 15년이 지났다. 함께한 날보다 더 많은 날을 남으로 지냈으나, 아이 때문에 완전히 남이 되지는 못했다. 아이가 사라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영재와 함께한 날들을 후회하던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니 그 후회마저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어떤 후회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갖고 싶어 하던 운동화를 사 줄 것을. 놀러 가자는 약속을 미루지 말 것을. 그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아이를 제 곁에 두었더라면, 그 시각, 그 장소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아이는 지금 제 곁에서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겠지. 예견된 인재. 반복되는 비극. 이런 말은 아이와 무관한 것이었을 텐데.
* 계간 <대산문화> 2024 겨울호(통권 94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