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보낸 문자를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삿짐 용달차 시세를 알아보는 거였다. 용달차는 적재 중량과 이동 거리에 따라 가격이 나뉘었고, 나는 누나가 그 집에서 자기 몫으로 뺄 짐의 양을 가늠했다. 옷이 많겠지. 가구도 있으려나. 떨어져 산 지가 오래라 누나의 생활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는데, 어쩌면 성격상 많은 걸 두고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그런 사람이다. 한번 결정하면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람. 처음 결혼 소식을 전할 때에도 그랬다. 울음이 터진 엄마의 등을 두드리거나 설득할 말도 건네지 않았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누가 부족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누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애가 있잖아. 그게 부족한 거지.” 누나는 대답 대신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렸다. 아빠의 장례식에 엄마가 찾아왔을 때도 누나는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십수 년 전, 아빠의 우울증과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한 엄마가 집을 나간 사이,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누나는 엄마에게 이제 더는 가족이 아니라고, 장례식이 끝나면 각자 남처럼 살자고 말했는데, 아빠가 죽음을 선택한 원인을 엄마로부터 찾아 이 불가해한 불행을 해석하려고 했던 것이다. 누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흩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누나가 다른 가족을 만드는 시간까지 함께 했다.
집 주소를 문자로 남긴 누나는 내가 동네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용달차가 도착하기까지는 세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나오겠지. 누나의 집에 처음 방문하는 길이 하필 누나가 집을 나오기로 결심한 날이라니. 동네는 오래된 빌라 건물들이 좁은 간격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비슷비슷한 크기의 화분들이 도로까지 침범했다.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골목마다 가득했다. 문자에 적힌 주소를 재차 확인한 뒤 현관문이 떨어져 나간 빌라에 들어갔다. 계단에 오르기 전 402호 우편함을 살폈다. 누나의 이름과 그의 이름이 적힌 고지서들이 자리를 다투듯 빼곡히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다시 한 번 주소를 확인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누나에게 무슨 말을 꺼낼지 생각했다. 잘 결정한 일이라고 말할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시답잖은 농담을 던질까. 사실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굳이 여러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어 다시 눌렀는데 너무 세게 눌렀는지 플라스틱으로 된 모퉁이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한두 번 더 누른 뒤 전화하려던 차에 문이 열렸다.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갈비.”
나는 아이가 최대한 놀라지 않게, 상견례 때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끔, 그러니까 우리가 한 번 봤던 사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난데없이 음식 이름을 툭 꺼냈다. 아이는 당시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누나가 가위로 자른 살점을 천천히 오래 씹고 삼켰다. 아이는 다행히 나를 바로 알아본 것 같았고, 아니 알아본 정도가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문을 더 열어주곤 실내화를 내밀었다. 실내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부부의 취향이 적절히 안배된 듯 세련된 인테리어로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았다. 실크벽지 특유의 냄새와 여러 향이 섞인 디퓨저 냄새가 끼쳐 왔다. 아이는 실내화에 발을 넣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양발을.
“누나는?”
엄마는, 이라고 물어야 했는데. 실내화가 작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는 다른 실내화를 꺼내 건넸다.
“문 열어주라고 했어요.”
지우 아니면 진우. 혹은 다른 이름이었을까. 아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이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누나가 아닌 용달차 기사가 보낸 문자였고, 일이 밀려 시간이 더 지체된다는 내용이었다. 집에는 아이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간 아이는 문을 열어둔 채로 책상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혹시 부부싸움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거실부터 차례로 살폈으나 방금 집안일을 마친 것처럼 깔끔했다. 다만 수건 몇 장이 반쯤 접힌 상태로 소파에 놓여 있었고, 수건에는 ‘자녀와 함께, 모두가 주인공인 가을운동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다고 했으니까, 이제 열 살이려나. 또래보다 키가 작아 걱정이라고 했는데. 소파에 앉자 테이블에 놓인 ‘4학년 2반 정지수’라고 적힌 학교 명찰이 보였다.
*
“우리 엄마 볼래?”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는데, 민진은 항상 충동적으로 뭔가를 제안하는 바람에 그 일이 의미하는 무게감을 스스로 가늠하느라 입을 떼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럴 때마다 내가 입을 다문 시간을 거절의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도 내 입장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마음을 전했으며,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국에 여행을 가자고 말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친한 친구를 보러 가자는 것처럼,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나는 민진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만한 대답을 고르느라 평소보다 시간을 더 끌었다. 나중에, 한 달 뒤에, 머리부터 자르고, 지금은 더우니까 시원해지면, 여러 말을 고민했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니.”
이때의 일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결혼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미끄러졌다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우리는 혼자라면 상상하지 않았을 어떤 안정된 상태에 안착하려 했고, 그것이 시도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다퉜다거나, 마땅한 이유가 있다거나,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각자가 보존할 생활로 진입했다. 몇 번의 미련과 슬픈 밤들과 아득한 시간들이 불쑥 찾아와 생활을 흔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갔다.
민진은 TV를 끄고 욕실로 들어가 평소보다 더 오래 씻었다.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베개가 놓여 있었다.
*
아이는 스케치북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소파 앞 테이블로 다가와 뒤통수를 보이고 앉았다. 테이블 아래 색연필 통을 꺼내 색칠하기 시작했다. 곰을 파란색으로 채웠다. 나는 휴대폰으로 곰을 검색해 사진을 보여줬다.
“곰은 이렇게 생겼어.”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참견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었고 서둘러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는 색연필을 내게 건넸다. 그러곤 내 손을 끌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숙제를 망쳤다간 누나에게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너무 강하게 거절을 한 것 같아 아이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히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색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둘이 같이 나갔어?”
아이에게 말했을까. 아이를 낳은 엄마는 긴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누나는 말했다. 아이가 안쓰러워 순간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아빠도 전화 안 받아요.”
그를 매형이라고 부른 적이 있던가.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누나는 이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나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물어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동안 색연필이 스케치북을 스치는 소리만이 거실을 채웠다. ‘애랑 둘이 있어, 빨리 와.’ 문자를 한 통 더 보냈다.
누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나와 아이는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아니, 가족이었다가 이제 곧 예전처럼 남이 될 예정이었다. 아이는 색칠을 그만두고 멀뚱히 앉아 있었다.
“지수 맞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늦어질 것 같은데, 밥 먹을래?”
아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가는 사이, 아이는 스스로 옷을 갈아입은 뒤 외투까지 꺼내 걸쳤다. 신발을 신겨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고민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나는 아이의 차분함과 어른스러움에 마음이 쓰였고, 피자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골목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는 소매에 손을 넣은 채로 걷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난 것처럼 서둘러 손을 꺼냈다. 어릴 적 누나와 내가 자주 하던 행동이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귀에 박히도록 혼이 났다. 누나와 나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는데 꼭 그런 것만 닮았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남매라고 불리기엔 얼굴도 닮지 않아 종종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했다. 나는 누나가 동생인 나를 창피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럴 이유는 없었고, 집에서도 보는 애를 학교에서도 또 보자니 귀찮은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누나와 동년배인 형에게 이유 없이 계단에서 맞을 때 누나가 달려와 형의 머리카락을 양손 가득 뽑아버린 후에야 누나에 대한 서운함을 그만둘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누나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무작정 쫓아갔다.
아이는 앞장서서 걷다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자 좀 더 가깝게 붙어서 걸었다. 주택가 사이에 조성된 놀이터가 보였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
민진은 내 귀를 매만지며 덜 빚은 찰흙 같다고 말했다. 내가 거절할 것이 빤한 말을 꺼낼 때마다 하는 행동이었고, 나는 조용히 민진의 말을 기다렸다. 귀가 빨개질 즈음에야 민진은 손을 거뒀다.
“같이 가.”
한번 꺼낸 말을 절대 다시 꺼내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이번에는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동안 민진의 가족을 보는 것이 싫다거나, 결혼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안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 것이다. 어떤 인과가 분명하게 작용할 것 같았고, 그 결과란 그간 내가 피해 왔던 순간을 정면으로 감각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예감했다. 이상하게도 나의 예감은 대부분 적중했다. 예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민진의 부모님과는 백화점에 자리한 미국식 중식당에서 만났다. 부모님은 그들 가족 사이에서 내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필요 이상의 말을 건네지 않았고, 세세한 배려로 남을 챙기는 민진의 습관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부모님과 오랜만에 만난 민진은 얼마 전 담당 부서를 이동한 일에 대해 말했다. 나는 접시에 음식을 소분했다. 민진의 어머니가 눈을 마주치며 짧게 목례했다.
“서울에는 혼자 살아요?”
민진의 아버지는 어렵게 말을 꺼낸 건지 목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안에 든 음식을 삼킨 뒤 대답했다. 민진 또한 나의 대학 전공과 졸업 후의 삶, 현재 하는 일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나는 지역구 신문사에 입사해 수습 기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신문사와 집이 멀어 가끔 민진의 집에서 지냈다.
“부모님은 어디에 살아요?”
다른 누군가가 부모님에 관해 물을 때면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솔직하게 말을 전하는 것이 민진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방에서 혼자 살며 아버지는 계시지 않다고 말했다.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지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누군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물으면 꺼냈던 말을 민진의 가족에게도 똑같이 전했다. 아버지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까지 건강했다. 내 기억으론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다.
왜 그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과거에 붙잡혀 있다거나,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나는 과거의 그 일에서 멀리 분리됐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을 쓰는 성격도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어떤 인간적인 결함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았다. 내 입으로 직접 아버지의 자살을 말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같았고, 결혼한다는 건 나의 결함을 인정하고 받아달라는 일종의 투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결혼은 그런 게 아니라고, 피해를 주고받는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분에 넘치는 미래 같았다.
민진의 부모님과는 그날 저녁 별다른 일 없이 식사를 끝냈다. 주차장에서 그들과 헤어졌고, 집으로 가는 내내 민진은 차창 너머 한강을 따라 세워진 건물들을 바라봤다. 얼마 뒤 본가에 밥을 먹으러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거철이라 매일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바람에 함께 가지 못했다. 혼자 내려간 민진은 올라오는 길에 문자를 남겼다. ‘엄마가 가지 챙겨줬어. 그때 가지 잘 먹더래.’
*
아이는 그네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발이 땅에 겨우 닿았다. 누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그 사이 용달차 기사는 주소를 재차 확인하는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신은 운동화가 새것처럼 깨끗했다. 나는 등을 밀어주며 말했다.
“이따 아저씨도 밀어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삼촌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지수는 좋겠네, 삼촌도 생기고. 아이 아빠가 과장되게 아이를 안으며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는 과연 좋았을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갑자기 가족으로 묶이는 것이. 놀이터에는 제때 치우지 못한 낙엽들이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놀이터는 한적했고, 대부분 놀이기구가 칠이 벗겨져 있었다.
“여기 처음 와요.”
아이는 그네에서 내린 뒤 누군가가 파놓은 흙 구멍에 발을 넣었다. 나는 아이와 잘 놀아주고 싶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떤 놀이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했던 놀이가 떠올랐으나 지금 하기엔 유치한 것 같았고, 그보다는 남들은 회사에 있을 시간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겸연쩍게 느껴져 그네에 앉아 아이를 구경만 했다.
나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몇 달간 퇴직급여를 받으며 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놀고 있었는데, 출퇴근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채웠다. 밀린 영화, 드라마, 게임이 잔뜩 쌓여 있었고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꼴로 여행을 갔다. ‘애인도 없고 직장도 없으니까 시간 많지?’ 한 친구는 문자를 보내며 일주일간 자신의 집에 있는 고양이들을 봐달라고 했다. 엄마는 집에서 세 시간 걸리는 바닷가 근처 사찰에 나를 데려갔다. 영험한 스님이야. 엄마는 나의 직장 운에 관해 물었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결혼 운은 궁금하지 않냐고 스님이 묻자 그건 얘가 알아서 할 거라고 대답했다. 누나 문자를 받고 바로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별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이라고, 직장을 잘 그만뒀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손으로 흙을 주워 구멍을 메꾸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손이 더러워진다고,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아이는 재밌는 놀이를 발견한 것처럼 흙을 쌓았다. 나는 씨름장에서 흙을 가져와 아이 옆에 뒀다. 어느 순간 놀이터에 들어온 아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다가 흥미가 떨어졌는지 곧 사라졌다.
“집에서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누가 데리러 온다고 했을까. 누나였을까, 아니면 그였을까.
오래전 아버지가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을 때, 집을 나간 엄마가 연락을 주기를 매일 기다렸다. 며칠 뒤 자신은 집에 갈 생각이 없으니, 누구와 살 건지 결정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버스터미널로 나오면 데리러 가겠다고 덧붙였다. 아빠는 아팠고 엄마는 아프지 않았다.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아팠고 나와 누나는 아프지 않았다. 나는 터미널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누나는 매일 죽을 끓였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따지는 일은 무의미했다. 다만 나는 성인이 되어 유년기를 반추했을 때, 가족의 끝이 불행이라면 거기서 일찍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일지도 몰랐다.
“금방 오지 않을까?”
내가 말하자 아이는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또 없어지잖아요.”
아이는 쌓아둔 흙더미를 발로 툭 건드렸다. 흙더미는 무너지지 않았고 신발 앞코만 더러워졌다. 나는 새 신발 같았던 아이의 신발을 벗겨 흙을 전부 털었다. 아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
물론 민진의 부모님을 만난 것이 결혼이라는 미래로 직행하는 일이 아니었다. 설사 만남을 반대해도 그 의견에 영향받을 나이도 지났고, 현재 가장 가까운 사람을 그저 가볍게 소개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도 가족들 만나고 싶어.”
민진은 평소 상대에게 뭔가를 주면 받아야 하고, 받으면 줘야 한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다. 삶의 걸림돌이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민진의 친구들은 그 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가령 어느 날은 계산적이고 정이 없는 사람처럼, 다른 날은 똑 부러지고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민진의 이런 성격이 친구와 가족, 직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몰랐던 게 아니라, 4년 동안 민진의 입장에선 굳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잘 주고받았던 사이였을 수도 있다.
자신이 받아야 하는 걸 분명히 말하는 민진의 얼굴에선 쉽사리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방금까지 싱크대에서 손질하던 당근을 마저 정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내 가족과 민진이 함께 있는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민진의 가족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조차 나의 가족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왜 그런 순간에 엄마와 누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저녁 식사로 카레를 요리해 함께 먹었다. 민진은 덜 익은 당근을 젓가락으로 골라냈다. 애매하게 익거나 조금이라도 단단한 식감이 느껴지면 먹지 않았다. 완전히 익은 것만 입에 넣었다. 나는 민진이 접시에 골라낸 당근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분명한 게 좋아.”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흔히 말하는 썸을 타는 기간도 없었다. 민진과는 오래전 서로의 친구들을 부르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어떤 연인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금요일 저녁이었고, 스크린에선 스포츠 경기 중계가 한창이었다. 나는 제일 늦게 자리에 도착했다. 민진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스크린을 보면서 졸고 있었다.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 끝이 테이블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진은 경기가 끝나면 가방을 챙겨 자리를 뜨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나는 민진의 옆에 앉았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는데, 아마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꽤 길게 나눴던 것 같았다. 그 자리가 끝나면 사라질 이야기들. 밤이 지나면 휘발될, 처음 보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들. 며칠 뒤 친구를 통해 민진의 연락처를 물어볼지 고민하는 사이 민진은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보냈다.
연애가 끝날 때도 비슷했다. 끌지 말자.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민진은 말했다. 정확하고 분명해야지. 나는 뭘 하든 항상 그 중간에서 서성이는 사람이었고 공백을 공백으로 두는 성격이었지만 민진은 달랐다. 나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민진을 닮고 싶었다. 연애하는 와중에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연애의 끝에선 그것을 실현하고 싶었다.
어찌 됐든 이별은 미래의 일이었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만나기로 결심했다. 엄마와 누나에게 차례로 문자를 보냈고 답장을 기다렸다.
*
피자가 적힌 간판을 가리켰지만 아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가 건물 외부에 설치된 다른 간판들을 가리키며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걸까. 반에서 제일 키가 작아 걱정이라는 누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고등학교 들어가서 키가 컸다고 대답했는데, 혹시 식사량이 적은 걸까. 아니면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은 걸까. 아이는 생각에 빠진 듯 제자리에 서서 두 눈을 껌벅거렸다. 나는 아이가 내릴 결정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건물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아이를 슬쩍 바라보며 지나갔다. 퇴근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을 가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지나는 사람들이 바쁘게 우리를 지나쳤다.
“갈비.”
아이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거리 건너편에 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보였고 신호가 바뀌기 전 서둘러 걸었다. 혹시 아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조급했고 초조했는데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사실 아이에게 잘 보일 이유도, 잘해 줄 이유도, 함께 밥을 먹을 이유도 없었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준 뒤 누나가 오기 전까지 나 혼자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남이 아닌가. 좋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다거나 아이 아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생각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이와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싶었고, 짧게라도 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곧,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이가 된다. 그 정확하고 분명한 미래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빈 테이블이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문에서 가까운 곳에 앉았다. 갈비를 주문한 뒤 컵에 물을 따라 아이에게 건네자, 수저와 젓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앞치마를 받아 아이 목에 걸었고, 아이는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팀처럼 갈비를 먹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누군가가 아이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지수야, 누구야?”
여자는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를 뒤따라 나온 지수 또래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소파에서 놓여 있던, 지수와 같은 학교 명찰을 가슴팍에 단 아이가 여자와 함께 다가왔다.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지수는 고개를 내린 채 신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삼촌.”
“삼촌이 있어?”
여자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고, 지수는 고개를 들어 여자를 빤히 바라봤다.
“어떤 삼촌?”
지수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테이블 위에 놓인 깻잎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여자는 아이에게서 깻잎을 빼앗으며 작은 목소리로 혼을 냈다.
“그냥 삼촌. 엄마가 오늘 삼촌 온다고 했어.”
여자와 아이는 자리를 벗어났고 곧 갈비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나는 구운 갈비를 가위로 조각낸 뒤 접시에 덜어줬다. 아이는 갈비를 오래도록 씹었다.
옷에 밴 갈비 냄새를 없애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탈취제를 고르는 사이,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가져왔고 함께 계산했다. 편의점 밖에서 아이에게 먼저 탈취제를 뿌리려고 하자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하얀 물 입자가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로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
누나는 아이를 보느라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답장했다. 엄마는 5월 달력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병원에서 간병인 일을 하는 엄마는 쉬는 날이 주차마다 달랐고, 빨간색으로 칠한 날 중에서 고르라고 말했다. 나와 민진은 주말에 쉬느라 날짜를 맞추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주말에 하루 뺄 테니까 그럼 일당 줘.”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그 말이 농담으로 들렸겠지만, 아들 애인을 처음 만나는 날에 돈까지 달라니 농담이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예민한 내 자신이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어쩌면 며칠 뒤 만날 그 자리의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걸 미리 예감한 것인지도 몰랐다. 일을 성사하지 말라는 일종의 신호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민진은 단정한 옷이 없다며 백화점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쇼핑백을 잔뜩 들고 귀가했다. 나는 백화점 로고가 적힌 쇼핑백을 정리하며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은 민진을 바라봤다. 팔다리가 길어 어떤 옷이든 다 잘 어울렸는데,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잘 믿지 않는 눈치였다. 민진은 요리가 코스로 나오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나는 가족과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어서 벌써 어색하다고, 반찬이 많이 나오는 한식당에 가자고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이튿날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건물 입구에서 엄마를 만났다. 간병하던 환자가 새벽부터 병환이 깊어져 몇 시간 자지 못했다고, 엄마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말했다.
“의사가 그러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래. 나는 가족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민진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나란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나는 직원에게 예약자 이름을 말한 뒤 테이블로 향했다.
민진은 식사하는 내내 엄마와 대화했다. 음식은 입에 맞는지,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는지,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한 데 건강은 어떠신지. 엄마는 새 음식이 담긴 접시가 나오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민진이 먹는 법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민진도 그것을 아는지 평소보다 빠르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들은 오래 본 사이처럼 혹은 어떤 관계를 가장하는 것처럼, 익숙하고 친숙하게,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잠깐의 침묵도 비워두지 않았다.
“너는 왜 말이 없니.”
나는 캄캄한 야경을 배경으로 창문에 비친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말수가 없었는데 요즘 더 그래요. 저만 얘기한다니까요.”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려고 했지만, 엄마는 먼저 가서 자야겠다며 미안함을 표했다.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밥도 얻어먹었는데 그런 신세까지 질 순 없다고 말이다.
“다음엔 꼭 서울에서 뵈어요.”
엄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민진에게 엄마를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민진은 주차해 놓은 차에서 기다리면 되니까 천천히 다녀오라고 답했다.
택시를 잡아 엄마와 함께 탔다. 앉자마자 눈을 감은 엄마는 가는 동안 자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서울까지 얼마나 걸릴지 도로 상황을 검색하고 있었다.
“나랑은 다르게 살아야 할 텐데.”
엄마는 눈을 감은 채로 잠꼬대하듯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인지 민진은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간 내심 엄마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른 가족을 만드는 시도는 오랜 시간 우리를 사로잡았던 과거를 통과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 될 거로 생각했다. 대학생 때, 엄마는 내게 딱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 농사해서 비닐하우스가 많고 개도 많아. 술을 마셔도 똑같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엄마는 오로지 먹고사는 일과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런 시기라는 없다, 어쩌면 지금이 엄마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엄마가 말한 비닐하우스도 많고 개도 많다는 남자는, 키가 작고 마른 편이었는데 삼계탕을 두 그릇이나 비워서 적잖이 놀랐다. 살점 하나 없이 바른 뼛조각이 쌓이는 것을 보니 입맛이 사라졌고, 그는 내게 입이 짧으면 나이 들어서 아플 거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여러 말이 교차했다고 느꼈다. 그는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비운 뒤 수저를 내려놓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음식을 나르던 아주머니가 커피를 가져왔다. 언니, 고마워. 아주머니는 팔꿈치로 엄마를 꾹 찔렀다. 둘만의 신호 같은 건가. 엄마는 아주머니 등을 떠밀었다. 몇 번 봤던 얼굴이었다. 다른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사이였나. 산악회였나. 남자는 낮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몇 점 욱여넣은 음식이 명치께에서 얹힌 듯 속이 답답했다. 이런 자리에선 주로 누가 말을 걸까. 나인가, 마주 앉은 이 남자인가. 하지만 미처 말을 꺼내 볼 시간도 없이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뒤 엄마는 더 이상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더 열심히 돈을 벌었다. 모은 돈으로 무엇을 할 건지,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를 데려다주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 문을 열자, 민진은 운전석에 앉아 소화제를 먹은 뒤 명치께를 두들기고 있었다.
*
“삼십 분 뒤면 도착하는데요. 거기 앞에 세우면 되죠?”
기사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제시간에 누나가 오지 않으면 내가 알아서 짐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누나의 짐으로 보이는 것들만 우선 정리하면 나머지 짐은 알아서 하겠지. 졸지에 남의 집을 샅샅이 뒤져야 하는 처지가 당황스러웠다.
현관문을 열자, 아이가 먼저 거실로 들어갔다. 나는 신발장을 살짝 열고 안을 살폈다. 제일 위 칸에 누나의 신발과 구두가 있었다.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신발장 밖으로 꺼내 바닥에 놓았다. 쓸 만한 박스가 있는지 베란다를 뒤졌다. 평소 분리수거를 잘하는지 박스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짐을 전부 빼는 것이 아니라 반포장 이사를 선택했다. 상자를 가져오겠지.
도무지 내키지 않지만, 안방 문을 열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 웨딩사진이 담긴 액자 대신 외국에서 찍은 듯한 사진이 여러 장 벽에 붙어 있었다. 이혼을 하면 이 사진들은 누가 갖게 되는 걸까. 아이가 방에서 나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방 문을 닫았다. 아이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셨다. 그러곤 나를 바라봤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뒤 아이에게 말했다.
“아까 그거 같이 할까?”
아이는 방으로 종종 달려가 스케치북을 꺼내왔다. 아이가 원하는 색으로 그림을 채웠다.
나는 간혹 생각했다. 우리가 각자의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에 어떤 방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불분명한 미래를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도하는 모든 노력이 여전히 과거와 기억에 의해 중단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가족을 맺는 일이 혹시 우리에게만 힘든 일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 어떤 지점에서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기사가 오기 전까지 뭔가를 준비하고 싶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어느 가족의 흔한 저녁처럼 함께 TV를 보고 소리 내 웃었다. 아이가 양말을 벗길래 나도 따라 벗었다. 다리를 쭉 뻗길래 나도 따라 뻗었다. 창밖으로 야채를 파는 트럭이 지나갔고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용달차가 도착하지 않았을까 귀를 기울였지만, 자동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일 가요?”
아이는 어느덧 TV에서 고개를 돌린 채 내게 물었다.
“이불 많은데.”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가 식기를 살피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았다.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떨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꾹 눌렀다. 진동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반복됐다. 나는 아이에게 언제쯤 자는지 물었다. 아이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 시계를 바라봤다. 기사와 약속한 시각이 훌쩍 지나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액정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누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