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건 9월쯤이다. 7~9월 중 문학·출판계 소식을 담아달라는 요청에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국제작가축제, 문학 주간 등 9월의 문학 행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요량이었다. 그러다 10월 10일.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 그리고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문학·출판계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상황. 다른 이야기를 쓰기는 어려웠다. 마감을 앞둔 며칠 전 대산문화재단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10월 노벨문학상 얘기로 써도 되나요?” ‘오케이’ 답을 듣고 ‘그날’의 일을 정리해 봤다.
“설마 올해 한국 작가가 받진 않겠죠?” 시간을 거슬러 가본다. 노벨문학상 발표 한 달 전쯤이었다. 문학계 사람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농담처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언젠가 받겠지만 올해는 아니겠죠.” “4~5년 뒤라고 봅니다.” “받으면 한강 선생님 아니면 김혜순 선생님.” “중국의 찬쉐가 받으면 한동안 아시아에서는 안 나올 텐데 어쩌죠.”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한국’은 농담으로 통했다.
지난 10일 오후 8시 정각. 기자는 회사 안에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잘 모르는 낯선 작가가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발표장에 들어선 마츠 말름 한림원 상무이사가 스웨덴어로 먼저, 그리고 영어로 발표문을 읽었다. ‘스드코리아’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했다. 그다음 ‘한강’이라고 했을 때는 벙찌고 말았다. 맞게 들은 건지 확신하지 못했다. 곧 영어 발표가 이어졌다. “South Korean author, Han Kang…”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부장, 한강이라는데요!”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에 감동할 겨를도 없이 편집국은 불난 호떡집처럼 숨 가쁘게 굴러갔다. 약 한 시간 반 만에 지방판을 막고, 두 시간 반 만에 최종판을 찍어야 했다. 그 와중 한강 작가의 소재지를 파악하라거나, 그에게 전화해 멘트를 받아내라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급히 기고도 청탁해야 했다. “선생님 소식 들으셨죠? 세상에… 그런데 정말 정말 송구한데요. 혹시 한 시간 반 내로 기고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문화부 선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온라인 속보를 수시로 채워 업데이트하는 한편, 문학평론가들에게 전화해 받아친 멘트를 바로바로 공유했다. 누군가는 한강 작가의 약력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띄웠다. 옆 부서인 스포츠부장도 거들어 줬다. “여기 오타 있다.” 수상 발표 직후 한강 작가의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몇 시간 뒤 노벨위원회가 전화 인터뷰를 공개했다. 그 내용도 부랴부랴 지면 기사에 녹였다. 아마 그때 통화 중 신호는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이후 어느 시점부터는 통화연결음만 지루하게 이어졌다.
출판사들도 올해 이런 경사가 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게 틀림없다. 한강의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해 ‘노벨상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문학동네는 지난달 30일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 노벨문학상 대비 자료를 배포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19명의 해외 작가를 추려 소개 자료와 이를 담당한 해외문학팀 편집자 연락처를 첨부했다. 최근 유튜브에 공개된 ‘문학동네는 지금: 2024 노벨문학상 현장 스케치’ 영상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다.
이밖에 조선일보 문학 담당 기자에게는 대대로 내려져 오는 ‘족보’가 있다. 노벨문학상 발표 시즌이 오면 해마다 영국 유명 도박사이트 ‘나이서 오즈’에서 베팅이 진행된다. 배당률이 높은 작가를 추려 수상에 대비한다. 유력 후보인 경우, 지면 안을 미리 짜두거나 전문가 기고를 받아둔다. 그 자료가 쌓여서 담당이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된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만년 후보는 대책이 촘촘하다. 올 초 전임자로부터 이 자료를 건네받았다. 한국 작가도 족보에 있었다. 언제 받아뒀는지 모를 한 시인에 관한 기고. 쓰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해외 작가가 수상하는 시나리오를 대비하며 내실을 다진다고 착각했다.
‘설마 한국’은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됐다. 한국 문학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다. 한강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당시 맨부커상) 수상 이후 정보라·박상영·천명관 등 한국 작가가 꾸준히 후보로 올랐다. 올 초 김혜순 시인이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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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시집이 이 상을 받은 건 최초다. 마치 지난 2020년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미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최고 작품상을 거머쥔 것 같은 일이 시(詩)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불과 지난달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올해 메디치상 1차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로 상을 받았던 그 부문. 배턴 터치하듯 후배가 뒤를 이으려고 뛰는 것 이다.
몇 달 전 부커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번역가 안톤 허를 인터뷰했다. 그때 그는 ‘한국 문학 독자는 정말 복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번역 필요 없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정말 많다는 것. 양질의 문학을 원어로 읽을 수 있는 환경, 한국 독자들은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한국 문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 또한 더 뜨거워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