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고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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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고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의 출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기쁨과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제 차분히 그 여운을 음미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의미와 앞으로 한국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할 시간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노벨문학상은 한국문학이 거쳐야 할 중요한 관문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변방의 한국문학이 중심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넘어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의 장을 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작가의 뛰어난 작품세계에 있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사유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성취”하였다. 한강은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 이후 더 깊고 확장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을 선언한 여주인공을 통해 가정과 사회를 옭아매는 규범과 관습의 폭력을 매혹적으로 담아낸 이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통해 거대 권력에 의한 참혹한 비극 속에 희생된 개인의 연약함을 탁월하게 다룸으로써 한층 심화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번역의 승리이다. 한 시대나 집단의 삶과 사유의 지형도라 할 수 있는 문학은 가장 온전하고 효과적으로 정신과 문화를 전달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 다만 번역이라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서구 주요 언어 및 문화와 근친성이나 공유점이 멀수록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근대화가 늦은 후발국이나 주변국일수록 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즉 노벨문학상 수상은 번역의 진화, 발전 단계와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다.

 

제30회 대산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한강 작가

 

1992년 교보생명이 출연한 대산문화재단과 1995년 정부가 세운 한국문학번역원이 한국문학 번역출판지원을 꾸준히 해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책적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해외에서 출판된 한국문학 작품 3,000여 종 가운데 두 기관이 2,600여 종을 지원했다. 특히 한강 작품의 번역서는 28개 언어 82종인데 이는 1994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직전의 17개국 79종과 비교해 볼 때 손색이 없다.

한국문학의 번역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 번역가 중심의 1세대 번역(~1990년대 초)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한국어(문화)에 밝은 외국인이 공동 번역하는 2세대 번역(~2010년대) ▲도착어로의 표현능력이 뛰어나고 출발어 문화에 능통한 3세대 원어민 번역가 번역(2010년대 중반~) 과정을 거치며 질적 발전을 해 왔다. 특히 3세대 번역가 등장은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에 올려놓은 동력이 되었다.

최근에는 ▲연간 200종에 달하는 해외 출판 ▲세계적 수준을 의미하는 선인세 2만 달러를 받는 작가군 형성 ▲연이은 국제문학상 수상 ▲현지 문학·출판계 주목과 독자층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었다.

번역원장 임기 3년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이 문학 한류 도입기에서 문학 한류 성장기로 진입했음을 진단하고 봄을 부르는 일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제비 한 마리를 부르는 것이 아닌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이라는 봄을 부르면 제비뿐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강물이 흐르는 생태계가 형성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언어권과 국가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번역출판지원 도입, 번역출판에 관한 모든 정보와 모든 지원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 ‘KLWAVE’ 구축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강을 비롯한 황석영·김혜순·이승우 등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여러 후보군이 형성되었고 천명관·정보라·김애란·박상영 등이 세계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두터운 층을 만들 수 있었다.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문학과 문화는 계속되고 역할은 점점 더 크고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한국문학 번역, 출판지원을 더 활성화하여 한국문학의 마르지 않는 강물이 되어 흐를 수 있도록 적절한 예산이 확충되어야 한다. 그리고 해당 기관이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3세대 원어민 번역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직 신뢰할 수 있는 번역가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문학의 미래는 우수한 번역가의 체계적 육성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법안 발의까지 갔으나 무관심 속에 폐기된 번역전문대학원 설립은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본연의 한국문학을 활성화할 정책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 정부 들어 문학진흥정책위원회는 폐지되었고 문학·출판 분야 예산은 크게 줄었다. 다행히 내년 예산을 과거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하지만 유일한 번역가 육성 사업인 번역원의 번역 인력 양성 내년 예산안은 2022년 대비 반토막 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번역 대상 작품을 뽑는데 작품성 비중이 높아서 문제다”, “번역지원을 받은 해외 780여 개 출판사 대상 판매량 조사가 81%만 이루어져서 부실하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이 다시 재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득 대산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교보문고 입구에 역대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를 걸고 비워둔 한국인을 위한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대산의 말에 나는 그 일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래서 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의지는 “예술·문화 지원은 결과 예측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전문가들과 좋은 정책을 만들고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지원해야 한다”는 신창재 이사장의 운영철학으로 이어져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정책 수립 그리고 인내심과 일관성이다.

 

※ 이 글은 필자가 한겨레신문에 쓴 「한강의 성취 뒷받침한 ‘번역의 승리’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 봄이 온다」(2024.10.16.)를 개고한 것이다.

곽효환
시인,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1967년생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