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한 변곡점은 40대 후반에 시작된 인도 여행. 그 이전에 나는 인류의 신비주의적 영성 철학에 젖줄 역할을 해온 인도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에 매혹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에 쓰인 문자를 읽는 것만으로 인도 신들과 경전의 가르침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경전의 배경이 된 인도의 생생한 풍경을 마주하면 문자로만 읽던 가르침을 내면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당시 나는 인도를 시나 여행기 같은 것을 쓸 문학의 공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여행의 물꼬를 튼 나는 10여 년 동안 여덟 번이나 인도로 날아갔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원이나 관광지보다 인도인들 삶을 깊이 엿볼 수 있는 곳에 오래 머물렀다. 그런 여행 경험이 쌓여 나중에 집필하게 된 책이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이다.
나의 인도행은 ‘으뜸의 가르침’의 고갱이를 온몸으로 만나고자 하는 발품 외에 다름 아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인도 땅을 돌아다니며 『우파니샤드』를 싱싱하게 살아있는 풍경으로 읽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활자와 풍경이 내 안에서 포개질 때 나는 ‘앎’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활자와 풍경이 포개지지 않고 어긋날 때도 ‘모름’의 신비 앞에 내 가슴을 닫지 않았다. 가슴을 닫지 않음으로 나는 거대한 인도대륙에 주눅 들지 않고 ‘앎’과 ‘모름’ 사이의 그네뛰기를 즐기며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서문> 부분
인도를 여행하며 자주 찾아갔던 지역은 인도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설립한 비스바 바라티 대학이 있는 산티니케탄. 인도 동북부 벵골주에 있는 소도시. 이곳에서 나는 바울이라 불리는 노래하는 한 수행자를 만난 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를 만난 것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시를 촉발해 준 계기가 되어 『꽃 먹는 소』라는 시집까지 펴냈다.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를 부르려 할 때/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자/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다.//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라오//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노래 부르지 않았다.//그때부터 나도/새가 울면/시를 짓지 않는다.
-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전문
또 여행 중에 심심찮게 들렀던 곳은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영혼의 정화를 위해 몸을 담글 수 있는 수십 킬로미터의 목욕 계단이 있고, 사람의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과 사원과 오래된 궁전들도 층층이 솟아 있는 도시. 신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바라나시를 방문하여 그 길을 걸어보고, 가능하다면 갠지스강에서 죽음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화장장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시신 태우는 광경을 보다가 문득 해가 저물었고, 어둑어둑해진 강가엔 꽃등(燈)을 든 소녀들이 나타났다. 나는 빼빼 마른 소녀의 나뭇가지 같은 손에서 타는 꽃등을 50루피를 주고 산 후 작은 쪽배에 올라탔다.
저녁 어스름 때/꽃등만이 어스름 강물 위에 떠/사람의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줄 때//나는 뱃전에 기대앉아/꽃등을 강물 위에 띄웠네/그리고 소원을 빌었네//아무 빌 소원도 없는/삶을 살 수 있기를/내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빌 소원도 없이//이 어두운 강을 건널 수 있기를.
― 「꽃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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