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 빌 소원도 없는 삶을

  • 내 문학의 공간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 빌 소원도 없는 삶을

갠지스강 물 위에 떠있는 배와 꽃등

 

내 문학의 한 변곡점은 40대 후반에 시작된 인도 여행. 그 이전에 나는 인류의 신비주의적 영성 철학에 젖줄 역할을 해온 인도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에 매혹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에 쓰인 문자를 읽는 것만으로 인도 신들과 경전의 가르침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경전의 배경이 된 인도의 생생한 풍경을 마주하면 문자로만 읽던 가르침을 내면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당시 나는 인도를 시나 여행기 같은 것을 쓸 문학의 공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여행의 물꼬를 튼 나는 10여 년 동안 여덟 번이나 인도로 날아갔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원이나 관광지보다 인도인들 삶을 깊이 엿볼 수 있는 곳에 오래 머물렀다. 그런 여행 경험이 쌓여 나중에 집필하게 된 책이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이다.

 

힌두교 사원이 가장 많은 인도 오리사주의 푸리에 있는 사원 풍경

 

 

나의 인도행은 ‘으뜸의 가르침’의 고갱이를 온몸으로 만나고자 하는 발품 외에 다름 아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인도 땅을 돌아다니며 『우파니샤드』를 싱싱하게 살아있는 풍경으로 읽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활자와 풍경이 내 안에서 포개질 때 나는 ‘앎’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활자와 풍경이 포개지지 않고 어긋날 때도 ‘모름’의 신비 앞에 내 가슴을 닫지 않았다. 가슴을 닫지 않음으로 나는 거대한 인도대륙에 주눅 들지 않고 ‘앎’과 ‘모름’ 사이의 그네뛰기를 즐기며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서문> 부분

 

인도를 여행하며 자주 찾아갔던 지역은 인도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설립한 비스바 바라티 대학이 있는 산티니케탄. 인도 동북부 벵골주에 있는 소도시. 이곳에서 나는 바울이라 불리는 노래하는 한 수행자를 만난 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를 만난 것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시를 촉발해 준 계기가 되어 『꽃 먹는 소』라는 시집까지 펴냈다.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를 부르려 할 때/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자/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다.//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라오//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노래 부르지 않았다.//그때부터 나도/새가 울면/시를 짓지 않는다.

-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전문

 

또 여행 중에 심심찮게 들렀던 곳은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영혼의 정화를 위해 몸을 담글 수 있는 수십 킬로미터의 목욕 계단이 있고, 사람의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과 사원과 오래된 궁전들도 층층이 솟아 있는 도시. 신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바라나시를 방문하여 그 길을 걸어보고, 가능하다면 갠지스강에서 죽음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화장장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시신 태우는 광경을 보다가 문득 해가 저물었고, 어둑어둑해진 강가엔 꽃등(燈)을 든 소녀들이 나타났다. 나는 빼빼 마른 소녀의 나뭇가지 같은 손에서 타는 꽃등을 50루피를 주고 산 후 작은 쪽배에 올라탔다.

 

저녁 어스름 때/꽃등만이 어스름 강물 위에 떠/사람의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줄 때//나는 뱃전에 기대앉아/꽃등을 강물 위에 띄웠네/그리고 소원을 빌었네//아무 빌 소원도 없는/삶을 살 수 있기를/내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빌 소원도 없이//이 어두운 강을 건널 수 있기를.

― 「꽃燈」 부분

 

인도 벵골주에 있는 산티니케탄의 한 지역축제에서 공연 중인 노래하는 수행자 바울들

 

갠지스 강가에서 꽃등을 파는 소녀들

 

고진하
시인, 1954년생
시집 『얼음수도원』 『꽃 먹는 소』 『명랑의 둘레』 『새들의 가갸거겨를 배우다』,
산문집 『시 읽어주는 예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야생초 마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