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③ 스마트폰 화면 속의 작가들

  • 기획특집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③ 스마트폰 화면 속의 작가들

나의 글쓰기는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열두 살 무렵이었다. 우연히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모이는 웹사이트에 들어갔는데, 그림, 음악, 게임과 같은 창작 게시판 사이 문학 게시판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며칠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좋은 글도 있고 별로인 글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읽다 보니 나도 여기에 무언가를 써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무작정 ‘글쓰기’ 버튼을 눌러 시를 한 편 쓰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외의 독자를 처음으로 가정하고 쓴 글이었다. 댓글이 달렸던 것 같다. 어떤 댓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반응한다는 게 신기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젖힌 기분이었다. 그해에 나는 수십 편의 시를 썼고, 가끔은 소설의 짧은 프롤로그를 썼다. 모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몇 년 뒤에, 친구들이 ‘인터넷 소설’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을 연재하는 ‘다음 카페’가 있다고 했다. 카페에 들어가 소설을 읽어보니, 내가 주로 읽던 종이책 소설과는 아주 달랐다. 고등학생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나와 친구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은어와 이모티콘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가 푹 빠졌고, 결국 밤을 새워서 전부 다 읽었다. 소설은 정말로 슬픈 사랑 이야기였다. 결말을 읽는 내내 울어서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인터넷 소설은 내 또래 소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어떤 친구들은 직접 인터넷 소설을 써서 연재했다. 그 이후 나는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판타지 소설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조아라(Joara)’는 누구나 회원가입만 하면 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사이트였는데, 인기가 많았던 연재소설들은 나중에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어떤 소설은 흥미진진한 전개 중에 연재가 중단되었고, 그럴 때면 나는 돌아오지 않는 익명의 작가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러다가 몇 번은 내가 구상한 판타지 소설의 첫 한 두 편 정도를 써서 올리기도 했다. 댓글이 전혀 달리지 않아서 직접 쓰는 것에는 금세 흥미를 잃었지만, ‘재미있게 쓴다면, 읽어 줄 독자들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생각은 그때부터 이미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0년, 한국에서는 문학창작과 소비의 장이 종이책에서 전자매체로 옮겨가는 현상이 뚜렷하다. 종이책 독서량은 점점 줄어들고, 성인 독서량이 계속 감소한다는 기사가 매일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출퇴근길에 웹소설을 읽는 사람도 많다.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공간에서 글을 쓴다. 블로그와 브런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독자를 만난 글들이 종이책으로 묶여 나온다. 메일로 글을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직접 유료 구독자를 모집한 다음, 매일 한 편씩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구독자들에게 메일로 발송한다.

내가 어릴 적 목격했던 장르 소설의 ‘선 온라인 연재, 후 종이책’ 규칙은 이제 약간 변형되어서, 2010년 중반부터는 아예 종이책을 내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연재와 상업 출간이 완결되는 추세이다. 장르 소설의 독자들은 열렬한 전자책 소비자이기도 하다. 출간의 문턱이 점점 낮아지면서 독자, 작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뚜렷한 구분도 조금씩 사라진다. 소설을 즐기던 독자들이 어느 순간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아마추어 작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 출간을 한 프로 작가가 된다. 그에 비해 장르 소설 외의 순문학은 오랫동안 종이책 위주의 시장에, 특히 기존 ‘등단’ 제도에 묶여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주요 출판사들이 웹진을 운영하고 작가 중심의 구독 서비스도 생겨나면서 순문학의 영역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나의 경우, 온라인 문학장의 확장은 내가 작품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게 해준 기반이 되었다. 나는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처음 주목을 받았으므로 작가로서의 시작은 전통적인 절차를 밟은 셈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작품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 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웹진, 전자책 선공개 등 종이책보다 훨씬 다양한 온라인 지면들이 신인 작가였던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만약 예전처럼 작가들의 발표 기회가 종이책, 종이 잡지 위주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나는 첫 작품집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동료 작가 중에는, 출간 전에 온라인으로 먼저 인기를 얻은 작가들이 매우 많다. 특히 SF는 그 장르의 특성상 온라인 매체와의 친밀함을 가지기 때문에, 웹에서 입소문을 얻어 널리 읽힌 다음 종이책 출판을 하게 된 작가들이 많은 편이다. 이산화 작가의 「증명된 사실」은 사후세계와 심령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충격적인 결말을 가진 단편으로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심너울 작가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게임 회사의 서버 개발자가 주인공인 단편으로, 이 역시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화제가 된 이후 출간과 미디어 믹스로 이어졌다. 장르 소설 외에도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출판사 웹사이트에 공개되었다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서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일도 있다. 온라인은 눈 밝은 독자들이 먼저 작가를 알아보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온라인을 통한 창작과 문학전파는 분명히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소비되는 소설은 자연스럽게 가볍고 짤막하며 경쾌해진다. 지하철 안에서, 당장 5분 뒤에 내릴 역이 있는 이들이 소설 속의 진한 감정묘사, 인물들의 깊은 고뇌에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어떤 작품들은 긴 호흡으로, 손에 잡히는 물성과 종이책의 감각으로 독자를 만났을 때 그 매력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우리가 이미 직면한 변화이기에,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 좋은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적절히 가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도 작가들의 도전과제가 된 것 같다. 중국과 일본 역시 종이책에서 전자매체로의 전환이라는 같은 변화를 겪고 있기에, 작가들의 고민과 제안을 함께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제5회 중한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을 위해 ‘현대의 다양한 문학전파 방식과 작가창작’을 주제로 2020년에 작성된 원고입니다.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파견자들』 『므레모사』,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방금 떠나온 세계』, 소설 『행성어 서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