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강증산의 여성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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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강증산의 여성관을 생각한다

1.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406)는 인간 심리 묘사의 대가였다. 기원전 431년에 초연된 『메데이아』도 심리 묘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비극에서 남편 이아손은 아내 메데이아와 격하게 다투다 말고 소리 지른다.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인간들에게도 불행이라는 것이 없을 텐데!”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함께 코린토스로 망명해 그 나라 왕의 후원을 받으며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아손이 아내를 두고 코린토스 공주와 혼인하겠다고 하자 메데이아의 분노가 폭발한다. 흑해 연안 콜키스의 공주였던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황금 양모피를 구하러 왔을 때 아버지 몰래 이아손을 도와 황금 양모피를 얻게 해주었다. 이아손에게 메데이아는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 아내를 버리고 코린토스 공주에게 새장가를 들겠다고 하니 메데이아의 모욕감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비극 초반부에 메데이아는 여자들의 처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명과 분별력이 있는 만물 중에서 우리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예요. 첫째, 우리는 거금을 주고 남편을 사서 우리 자신의 상전으로 모셔야 해요. 다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얻는 남자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거예요. 헤어진다는 건 여자들에게 불명예스럽고, 남편을 거절하기도 불가능하니까요. …(중략)… 그리고 남자는 집 안 생활에 싫증이 나면 밖에 나가 친구나 또래와 어울려 울적한 마음을 풀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만 쳐다보고 살아야 해요. 남자들은 말하지요. 우리는 집에서 안전하게 살지만, 자기들은 창을 들고 싸운다고. 바보 같으니라고! 나는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세 번 싸움터로 뛰어들겠어요.”

메데이아의 탄식은 에우리피데스 당대의 아테네 여성들의 평균적인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말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만개한 나라였지만, 그 민주주의의 열매는 모두 아테네 성인 남자들 몫이었다. 아테네 성인 여성은 자유인이기는 했지만 정치적 권리가 전혀 없어 나랏일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집 안에 갇혀 살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만족해야 하는, 남편의 부속물 같은 존재였다.

에우리피데스 시절 아테네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 아내 크산티페를 떠올려 봄 직도 하다. 소크라테스의 명성 덕에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았다. 기원후 3세기 그리스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는 크산티페와 소크라테스의 일화 한 토막이 나온다. 어느 날 남편에게 화가 난 크산티페가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도 양이 차지 않아 소크라테스 머리에 물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이렇게 큰 천둥이 치는데 비가 쏟아지리라고 내가 예상 못했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대화편도 크산티페의 모습을 슬쩍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재판을 다룬 『변론』에는 소크라테스가 늦게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다. 큰아들 람프로클레스는 다 컸지만 둘째와 셋째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크산티페 처지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식을 셋이나 둔 가장인데도 집안은 돌보지 않고 밖으로 돌며 사람들과 논쟁하는 걸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린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파이돈』에는 크산티페가 어린 막내아들을 안고 감옥으로 찾아와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집안을 팽개치다시피 하던 남편이 이제 그 어린것을 두고 세상을 마저 등지려 하니 설움이 북받치는 것이다. ‘악처’ 크산티페는 시대의 한계에 갇혀 몸부림친 평범한 여성이었을 수도 있다.

 

2.

고전기 그리스의 여성관을 철학적으로 이론화한 사람으로는 단연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가 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신학까지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였지만, 생물학 분야에서도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가운데 일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발생론』에서 남자와 여자는 본성상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은 세상 만물을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 이해한다. 돌이라는 질료에 조각가가 형상을 부여해 조각품이 나오듯이, 세상 모든 것은 질료에 형상이 더해져 현실태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질료-형상의 구도를 인간의 발생에도 적용했다. 여성의 생리혈이 질료를 제공한다면 거기에 형상을 주는 것이 남성의 정액(sperma, 씨앗)이다. 정액이라는 씨앗이 생리혈이라는 질료에 형상을 줌으로써 태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여성의 난자가 아직 발견되지 않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생리혈과 남성의 정액이 만난다고 보았다. 그러면 태아는 언제 여자가 되고 언제 남자가 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발생론』에서 남성의 정액이 주도권을 얻으면 태아를 남자로 만들고, 반대로 주도권을 뺏기면 태아가 여자가 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은 남녀의 성차를 뜨거움과 차가움으로도 설명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몸이 더 뜨겁기에 남성의 혈액은 정액이 되고 여성의 혈액은 그대로 생리혈로 남는다. 또 더 많은 열 덕에 남성 태아는 여성 태아보다 더 높은 완전성에 이른다. 반대로 여성 태아는 남성 태아보다 더 낮은 상태에 머무른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장을 더 간명하게 말하면, 남성은 정상이고 여성은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비정상 곧 ‘기형’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기형성을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에게 ‘외부 생식기’가 없다는 데서 여성의 기형성, 다시 말해 ‘완전성의 결여’를 보았다. 남성 태아가 지닌 더 많은 열이 생식기를 외부로 완전하게 발달시켜 주는 데 반해, 여성에게는 충분한 열이 없어 생식기가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아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도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여성의 생리혈이 태아의 발생에 필수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힘은 남성의 정액에서 나온다. 정액이야말로 “생명을 주는 영으로 가득한 영적인 실체”다. 이 정액의 영적인 힘이 제대로 발휘되면 남자가 되고 그 힘이 덜 발휘되면 여자가 된다. 여성은 신체적인 차원에서만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남자의 완전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생물학 이론을 토대로 삼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남녀의 발생적 차이를 현실적 차이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남자의 용기와 여자의 용기는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는 지배자의 용기고, 다른 하나는 하인의 용기다.” 남자는 지배자로 타고나고 여자는 그 지배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타고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남자만이 인간다운 인간이고 여자는 인간으로서 결함이 있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은 앞 시대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밝힌 여성관을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이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자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다. 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는 아테나 여신이 마련한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때 선고 이유를 대는 이가 아폴론이다. 아폴론은 말한다.

“이른바 어머니는 제 자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새로 뿌려진 태아의 양육자에 불과하오. 수태시킨 자가 진정한 생산자이고, 어머니는 마치 주인이 손님에게 하듯 그 씨를 지켜주는 것이오.”

그러면서 아폴론은 자기주장의 증거로 옆에 있던 아테나 여신을 지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나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지 않고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통에서 무장한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아버지의 씨가 자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들어 아폴론은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존속살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당대의 통념을 뒷받침해 준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이었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생각은 제자와는 사뭇 달랐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하게 남자의 정액을 씨앗으로 보고 여성의 자궁을 밭으로 보았다.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 『테아이테토스』는 태아 발생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남자와 여자가 자궁이라는 밭에다,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씨로 뿌리면 이 생명체는 분화하기 시작하고, 자궁이 영양분을 공급하면 생명체로서 성장해 햇빛 속으로 나오지요.”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닮은 점은 여기까지다. 여성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은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급진적이라고 할 정도로 반시대적이다. 플라톤의 여성관이 자세히 기술된 곳이 중기 대화편 『국가』다. 『국가』는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 이상 국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대화편 제5권에서 플라톤은 그 나라의 ‘수호자’ 곧 전사가 될 사람들을 뽑아 어릴 때부터 그 목적에 맞게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여자들을 남자들과 함께 교육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감시견(수호자)의 암컷들은 수컷들이 지키는 것을 똑같이 지키고 사냥도 함께 하며 그 밖의 것들을 공동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암컷들은 강아지를 낳고 기르는 탓에 그런 일들을 할 수 없고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이 비유적 물음을 통해 플라톤은 남녀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물론 여성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남성의 힘이 더 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육체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플라톤은 강조한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용기와 기개를 지녔기에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남녀는 김나시온(gymnasion, 체육관)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체력 단련을 해야 한다. 당시 아테네 남자들은 김나시온에 모여 옷을 모두 벗고 운동했다. 그러므로 여자들도 옷을 다 벗고 남자들과 함께 운동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남자들이 벌거벗고 운동을 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고, 아테네에 처음 그런 운동 관습이 들어왔을 때는 다들 웃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국가』는 플라톤의 이런 주장에 반론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는 본성이 다르지 않은가?” 플라톤은 ‘대머리인 사람과 대머리가 아닌 사람’을 들어 반론에 답한다.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제화공이 될 수 있지만 머리숱이 없는 사람은 제화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남성은 아이를 생기게 한다는 점에서 본성상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런 외적인 차이는 여성과 남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남녀가 육체적 조건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남자만 수호자가 돼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나라를 지키고 다스리는 일에서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에 여자의 것, 남자의 것이 따로 없네. 오히려 여러 성향이 두 성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요컨대 여성과 남성 사이를 갈라 한쪽에만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맡기는 것은 잘못됐으며, 오히려 수호자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을 남녀를 묻지 않고 양쪽에서 고루 선발해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여성이 전쟁과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던 당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플라톤의 여성관은 혁명적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4.

역사 전체를 통틀어볼 때 플라톤의 엄격한 남녀평등 사상이 현실에 구현된 적은 없다. 서양 역사를 지배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완고한 차별 사상이었다. 그 사상에 금이 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 2000년도 더 지난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뒤 일이다. 프랑스혁명을 이끈 이들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해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천부의 권리임을 선언했다. 그 직후 영국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가 ‘왜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느냐’고 항의하며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쓰고 나서야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을 뚫고 남녀평등 사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앞 시대 계몽 사상가들의 남성중심주의에 맞서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이성’이라고 선포했다.

서양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장벽을 넘어 플라톤의 여성관 수준에 도달하려고 분투하던 그 시기에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도 남녀평등관이 싹트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 후천개벽 사상을 정립한 김일부(1826~1898)가 새로운 여성관의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김일부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독자적인 철학적 체계를 세우고 그 위에서 여성관의 변혁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에 있다. 김일부는 고래의 ‘주역’을 뜯어고쳐 만든 ‘정역’에서 동아시아 음양오행 사상을 재해석해 우주의 시간을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었다. 선천 5만 년은 음이 억눌리고 양이 지배하는 ‘억음존양’의 시대다. 남성은 높고 여성은 낮은 남존여비의 시대이자 양의 힘들이 충돌해 불화와 갈등이 그치지 않는 상극시대다. 이 선천 시대의 음양오행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사건이 후천개벽이다. 이 우주적 개벽을 통해 열리는 후천시대는 억눌렸던 음이 올라와 양과 동등해지는 ‘조양율음’(調陽律陰)의 시대,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싸움과 죽임이 끝나는 상생의 시대다. 김일부는 『정역』에서 말한다.

“음을 누르고 양을 높임은 선천 심법의 학이요, 양을 고르고 음을 맞춤은 후천 성리의 도다.”

김일부의 이 ‘정역 사상’을 이어받아 종교운동으로 전환한 사람이 증산 강일순(1871~1909)이다. 젊은 날 동학농민전쟁의 참혹한 패배를 목격한 강증산은 27세 때 충청도 연산의 김일부를 만나 정역을 배웠다. 4년 뒤 깨달음을 얻고 후천개벽 운동에 나설 때 강증산이 시대를 통찰하는 심안의 틀로 삼은 것이 ‘정역’의 변혁사상이었다. 선천 5만 년은 양이 음 위에 서서 음을 짓밟는 시대였지만 후천 5만 년은 음과 양이 바르게 자리를 잡아 서로 균형을 맞추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증산은 내다보았다.

“선천은 억음존양의 세상이다.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과 문무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오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 없느니라.”

이런 시대 인식에 따라 강증산은 우주 질서를 바꾸는 ‘천지공사’를 벌였다. 이때 증산이 맨 처음 한 것이 여성의 원과 한을 풀어주는 ‘해원공사’였다. 증산은 억눌림에서 풀려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수준을 넘어 남성을 제압하려 할 것이라는 예견도 했다.

“여자가 천하의 일을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나니 이는 장차 여자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로다.”

그러나 그렇게 음양이 뒤집히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고 “남녀 동권의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 증산이 내다본 후천의 미래였다.

“사람을 쓸 때는 남녀 구별 없이 쓰리라. (다가올) 세상에서는 남녀가 모두 대장부(大丈夫)요 대장부(大丈婦)니라. 자고로 여자를 높이 받들고 추앙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로는 여자도 각기 닦은 바를 따라 공덕이 서고 금패와 금상으로 존신(尊信)의 표를 세우게 되리라.”

강증산은 “내 세상에는 여자의 치마폭에서 도통이 나올 것”이라는 말도 했는데, 하늘로 돌아가기 얼마 전에 청상과부 고판례를 부인으로 맞아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이때가 조선이 일제에 국권을 상실하기 직전인 1909년, 가부장적 지배가 극에 이른 때였다. 김일부의 정역과 강증산의 교리는 그 극렬한 여성 억압의 시대를 뚫고 터져 나온 여성해방의 사상이자 음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양이 함께 온전해지는 보편적 인간해방의 사상이었다.

 

5.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성관의 뿌리에는 형이상학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이라는 형이상학적 가설에 따라 남녀의 질적인 차이를 주장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혼’이 이성과 기개와 욕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형이상학적인 삼분설을 바탕에 두고, 이 혼의 질서에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평등관을 세웠다. 김일부와 강증산도 우주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동아시아의 전통 음양 사상을 빌려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

그러나 이런 형이상학은 믿음의 체계지 우주의 존재 자체라고는 할 수 없다. 여성의 혈액을 질료로 보고 남성의 정액을 형상으로 보는 것이 억지스러운 것이듯이, 여성을 음에 배치하고 남성을 양에 배치하는 것에도 자의성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 플라톤도 인정했듯이 여성과 남성의 육체에 생물학적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성성이 ‘양적인 것’으로서 거칠고 투쟁적이고 호전적인 데 반해, 여성성은 ‘음적인 것’으로서 수용적·포용적·평화적이라는 생각이 꼭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성향 차이도 오랜 세월 남성과 여성이 다른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키워진 데서 나온 사회적·문화적 에토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성’과 ‘남성성’을 나누기에 앞서 남녀를 포함해 모든 인간을 아우르는 ‘인간성’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때 나올 수 있는 물음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어 가장 참다운 인간성인가?’ 하는 물음이다. 종래의 인간성, 곧 데카르트 이래 서양 근대를 지배한 인간중심주의적 인간성은 이 물음의 답이 되기에는 너무 낡았다. 인간이 동물과 식물과 사물 위에 홀로 존귀하며 인간 아닌 모든 것을 지배하고 소유한다는 그런 의미를 품은 인간성은 우리 시대의 보편적 인간성이 될 수 없다. 이 시대에 우리가 만나야 할 인간성은 인간 내부의 성차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를 넘어선 인간성, 지구와 우주의 만물을 모시고 보살피는 인간성이다. 그 인간성이 세상을 이끌 때 플라톤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 더 나아가 강증산이 예견한 ‘정음정양의 후천 세계’가 우리의 미래로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한겨레 문화부 책지성팀 선임기자, 1966년생
저서 『하이데거 극장: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 『니체 극장: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광기와 천재: 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