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의 대화
-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의 대화
칼 세이건 (Carl Edward Sagan, 1934~1996) 미국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 『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를 비롯해 30권 이상의 과학 저서를 펴냈다. 다큐멘터리로 처음 제작된 <코스모스>로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천문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화성 탐사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1996년 별세했다.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NASA는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탐사 기지를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했다. |
이명현(이하 이) 안녕하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천문학자 출신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명현입니다. 여러 과학자와 과학커뮤니케이터와 함께 과학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말하자면 ‘아폴로 키즈’죠. 제가 고등학생일 때 당신이 쓴 『코스모스』를 만났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이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미 과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던 소년이었는데 『코스모스』를 보면서 더 확실하게 과학자, 특히 천문학자가 되리라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또한 ‘코스모스 키즈’기도 합니다. 박사님은 어떤 계기로 천문학자가 되셨는지요?
칼 세이건(이하 칼) 네. 반갑습니다. 여기서 ‘코스모스 키즈’를 만나니 저 또한 정말 반갑습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어요.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집 근처에 있는 브루클린 도서관에서 천문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데는 조금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직업적인 천문학자가 있는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아마 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는데 하버드대학교에 천문학과가 있고 그곳에는 천문학 연구만 하면서 월급을 받는 직업적인 천문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 충격이 컸습니다. 놀라움도 컸고요. 내가 좋아하는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천문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이 월반해서 고등학교를 일찍 졸업하셨죠? 그러고는 시카고대학교에 진학을 하셨지요?
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16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나이의 학생을 받아주는 대학교가 거의 없었어요. 시카고대학교가 기회를 줬지요. 대학교에 다니면서 천문학과 물리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화학, 지질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부를 했습니다. 천문학 공부가 주였지만 생물학과 화학 연구실에서 인턴도 하면서 여러 학문의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시카고대학교에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도 제가 만들었고요. 농구도 열심히 하고 독서 모임도 활발하게 했습니다.
이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적인 모습을 보이셨네요!
칼 고등학교 때는 전국적인 웅변대회에서 상을 탄 적도 있습니다. 뉴욕시에 있는 카네기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적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나중에 피아니스트가 될 줄 아셨답니다. 집안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집에 피아노가 있었어요. 저한테 투자했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1934년에 태어나셨는데 박사학위를 1960년에 받으셨습니다.
칼 이른 나이에 받았죠. 제 지도교수가 두 분이었는데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앙숙이었어요. 한 분은 천문학자였고 다른 한 분은 생물학과 화학을 하시는 분이었어요. 마치 이혼한 부모가 아이를 통해서 간접 대화를 하듯 두 분은 저를 통해서 소통하셨지요. 박사학위 과정 동안에도 저는 천문학에 생물학과 화학 같은 학문을 융합하는 데 관심을 가졌어요. 결과적으로 제 박사 논문이 말하자면 우주생물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셈이 되었습니다. 태양계 내 행성 탐사를 통한 행성들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들 행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박사님은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같은 제목의 책을 쓴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대중적인 인기에만 연연했던 사람으로 박사님을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칼 지금은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제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학자는 학계 내에서 조용히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과학 연구는 대부분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에서 발견하고 이루어낸 것을 국민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제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또 오피니언 리더들을 상대로 과학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여전히 박사님을 학자가 아니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칼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사이언스》와 《네이처》라는 과학저널이 있습니다. 과학자들 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과학저널이지요. 저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이 두 과학저널에만 60편 정도의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이카루스》라는 행성과학 저널의 편집장을 오래도록 맡아 왔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주생물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거의 모든 미국의 초기 우주탐사에 제가 관여를 했습니다. 달 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부터 화성 탐사 계획인 매리너 프로젝트까지 저는 늘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갖고 참여를 했습니다.
이 위대한 과학커뮤니케이터 칼 세이건의 그늘에 가려진 과학자 칼 세이건의 면모를 사람들이 잘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외계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시죠?
칼 네. 그렇습니다. 태양계 내 행성들 특히 화성에 외계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관심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1976년에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처음 착륙했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당시 화성에서는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체를 확인할 장치들이 좀 미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이후 많은 화성탐사선이 보내졌고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지금 과학자들은 화성의 땅 아래 액체 상태의 물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 메탄가스를 생산하는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몇 년 내로 땅을 파서 정말 그런지 확인하는 탐사선이 갈 예정입니다. 제가 꿈꿔 왔던 일이 실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외계지적생명체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칼 그렇습니다. 외계지적생명체, 즉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많지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판타지였다면 과학자가 된 이후로는 어떻게 하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외계지적생명체를 찾을까가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태양계 내에서 박테리아나 미생물 같은 외계생명체를 찾는 작업에 힘쓰는 한편 외계지적생명체 탐색(Search for Extraterrastrial Intelligence; SETI)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외계지적생명체를 연구하는 세티 연구소의 설립에도 큰 역할을 했지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행성협회도 만들었습니다. 외계지적생명체에 관한 책도 썼습니다. 아 참, 『콘택트』라는 SF 소설도 썼습니다. 나중에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은 영화도 나왔지요. 외계인을 발견하는 과학적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박사님이 개척했던 우주생물학은 이제 가장 큰 학문 영역 중 하나가 됐습니다. 외계생명체 탐색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요. 세티 프로젝트도 2016년에 유리 밀러라는 사람이 1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숨통이 좀 트이고 활성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칼 너무 기쁜 일이지요. 뿌듯합니다.
이 과학자로서의 칼 세이건을 살펴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의 칼 세이건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아무래도 『코스모스』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겠죠?
칼 당연하지요. 『코스모스』를 빼고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의 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요. 그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것처럼 어쩌면 저 자신이고 제 자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쓴 많은 책들 중에, 뭐라고 할까요. 애착이라고나 할까요. 연민의 눈길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이 앤 드루얀과 함께 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말씀인가요?
칼 어떻게 아셨어요?
이 2019년에 당신이 『코스모스』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썼던 앤 드루얀과 함께 살던 그 집을 제가 방문했었거든요. 앤 드루얀과 인터뷰를 하면서 두 사람이 너무 고통스럽게 또한 진정성을 다해서 쓴 이 책을 정말 애정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앤 드루얀이 몇 번이나 이 책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칼 맞습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들의 조상의 실체에 대해서 직면하면서 시작하는 책입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진화적 탐구가 바탕인 책이지요. 인간의 영장류적 본능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죠.
이 『코스모스』 이야기 좀 해주시죠.
칼 『코스모스』 책은 제 단독 저서로 출판되었지만 다큐멘터리는 제 제자이자 동료인 스티븐 소터, 나중에 제 아내가 되는 앤 드루얀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코넬대학교에서 휴직을 하고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지역으로 잠시 이주해서 살면서 회사도 만들어서 진행했던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단순히 제가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쓴 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거의 3년의 시간을 전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쏟았습니다.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받고 최고의 프로듀서를 고용했습니다. 먼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인 후 이어서 책을 출간한다는 전략은 처음부터 세워져 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됐지요.
이 『코스모스』의 성공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자 한 사람이 틈틈이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정상급 전문가들이 모여서 함께 만든 종합 작품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과학적, 극적 완성도가 같이 높다는 점과 무엇보다 그런 데서 오는 지적 재미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 『코스모스』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인지요?
칼 사람들이 과학의 경이로움을 같이 느끼고 즐겼으면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학이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과학이 단지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되고 나아가서는 삶의 태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그래서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코스모스』에 어떤 장치들을 넣었나요?
칼 『코스모스』에는 천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과학 분야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래도 사람들이 좀 더 익숙한 문학, 철학, 지리 같은 분야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과학의 전문 용어가 아닌 사람들의 일상 언어와 지식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인간을 흔히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심취한다는 말이지요. 『코스모스』는 말하자면 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아주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옛날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그동안 문화유산으로 여기던 것들이죠. 그러면서 친밀도를 높입니다. 그런 다음 현대 과학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물론 오래된 이야기의 현대 과학적 모범답안 같은 내용입니다. 우주의 모습에 대한 오래된 전설과 신화 이야기를 한 후 빅뱅우주론 이야기를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과거와 현대의 이야기를 한 후 우리들의 문제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온실효과의 영향으로 금성의 표면온도가 470도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 후에 지금 지구에서 쟁점 사항인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말씀하신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네요. 『코스모스』가 세상에 나온 것이 1980년입니다. 거의 45년에 이르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칼 탄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유효한 것이겠죠. 과학의 발견은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됩니다. 40년이 넘은 책을 과학책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당시 새로운 과학적 발견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원리에 바탕을 두면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코스모스』의 롱런에는 앤 드루얀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칼 맞습니다. 『코스모스』를 같이 만든 파트너이자 연인이자 제 마지막을 옆에서 지킨 아내가 바로 앤 드루얀입니다. 정말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죽은 후 앤 드루얀은 제 유고집을 마무리했고 제 강연을 발굴해서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 2편과 3편을 제작하기도 했죠. 2020년에는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이라는 1980년판 『코스모스』의 정식 후속작을 내기도 했습니다. 앤 드루얀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코스모스』가 지금 같은 위상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저도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가 앤 드루얀과 세 번의 만남을 통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은 연인이자 부부이자 파트너이자 소울메이트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동력이 『코스모스』를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칼 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