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위 패스포트
과거와 현재의 화합과 함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는 스페인

  • 노트 위 패스포트
  • 2024년 겨울호 (통권 94호)
과거와 현재의 화합과 함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는 스페인

메트로폴 파라솔, 세비야

 

학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지만, 어쩌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바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인데, 가끔 한국은 12시간, 스페인은 48시간으로 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시간이 멈춘 곳… 구름마저 멈춰 서서 쉬어가는 곳… 그래서 나에게 스페인은 도피처이자 재충전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찾아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맞이해줘, 늘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스페인에서도 일정은 빡빡하다. 전공이 고전 문학이다 보니, 인터넷 자료검색보다는 마드리드 국립도서관에서 일일이 고문서 논문 자료를 검색해야 할 때가 더 많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돈키호테』 번역을 시작하면서 돈키호테 관련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다 보니, 내가 산초도 아닌데 완전히 돈키호테와 더불어 사는 느낌이다. 그래도 학회와 논문 자료검색이 끝난 후 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 사뭇 설레기도 한다.

 

 

근대의 문턱에서 고철 더미와 다름없는 중세 갑옷으로 무장한 돈키호테는 거대한 풍차와 싸우고, 둘시네아의 사랑을 좇으며 숭고한 이상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둘시네아가 서구 문학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을? 둘시네아 델 토보소는 작품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인

엘 토보소, 카스티야 라 만차

물이면서도, 실제로는 작품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돈키호테의 마음 깊이 존재하는 삶의 원동력이면서도, 돈키호테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세르반테스의 소설로 명성을 얻은 라 만차 지역 엘 토보소(El Toboso)에 가면 16세기 라 만차 지역 저택을 재현한 둘시네아 박물관도 있고, 마을 광장에는 둘시네아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하는 돈키호테 조형물도 있다. 사실 그 둘은 만난 적조차 없는데… 그리고 세르반테스 박물관에는 7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돈키호테』 판본도 있다. 그렇게 둘시네아의 엘 토보소 마을은 세계 문학 걸작의 본질이 각인된 중심지가 되어 전 세계 방문객들을 끌어모은다. 가우디와 같은 인물들도 돈키호테의 자취를 따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캄포 데 크립타나, 카스티야 라 만차

불운만 거듭되는 방랑 기사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드는 돈키호테는 언뜻 보면 우스꽝스럽고 대책 없는 희극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비극적 운명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거친 현실의 벽에 부딪혀가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녹여낸 인물이다. ‘슬픈 얼굴의 기사’라는 별명이 그런 그의 삶을 시크하게 녹여낸 것이리라. 사실, 캄포 데 크립타나(Campo de Criptana)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차들은 돈키호테가 아닌 그 누가 보더라도 오롯이 홀로 맞서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 다가온다. 돈키호테에게는 그 풍차들이 서른 명도 넘는 거대한 거인들이며, 능멸해야 할 사악한 종족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띄엄띄엄 외롭게 세워진 풍차들은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으며 우리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레콩키스타'가 시작된 코바동가, 아스투리아스

 

돈키호테에게 풍차는 기사 소설에 등장하는 거인일 수도, 스페인 역사를 전쟁으로 물들인 이슬람교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돈키호테』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원작자로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는 거짓말에 능숙한 이슬람교도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 사실, 돈키호테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스페인 중남부 지역의 풍광은 이슬람교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스페인의 고단한 역사이기도 하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불리는 이 역사적 활동은 711년 이슬람교도들이 침략해 앗아간 스페인 영토를 되찾기 위해 스페인 북부 깊은 산골 코바동가에서 시작한 종교 전쟁이자 민족 전쟁으로 1492년 그라나다의 함락과 함께 끝이 났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이 레콩키스타의 종말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7년 만에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스페인 전 지역이 이슬람교도에게 정복당한 이후 거의 800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은 스페인의 역사·문화·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던 중남부 지역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생활 방식이 뒤섞인 무데하르 양식이라는 스페인만의 독특한 혼종 문화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무데하르 예술, 특히 무데하르 건축 양식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예술 전통이 융화된 결과물로 12세기에서 16세기까지 스페인 역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중부에서는 테루엘이, 남부에서는 코르도바·세비야·그라나다가 무데하르 예술 양식을 대표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무데하르 건축물들은 주로 진흙을 구운 소박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흰색과 녹색, 파란색 유약을 바른 기하학적 무늬의 세라믹 장식으로 더욱 화려하고 화사해지면서 스페인만의 각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페인 중남부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아름다운 스페인 마을’로 선정된 풍광이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하얀 마을들을 마주하게 된다. 매우 특이하면서도 색다른 경치로 경관이 멋들어진 마을들이지만, 그곳에는 스페인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새겨져 있다. 싱크홀처럼 발밑으로 푹 꺼져 들어간 절벽 마을 알칼라 델 후카르(Alcalá del Júcar)와 동굴집으로 유명한 세테닐 데 라스 보데가스(Setenil de las Bodegas)는 800년 가까운 레콩키스타의 굴곡진 역사가 빚어낸 장관으로 오늘날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렌터카 내비게이션에 알칼라 델 후카르를 찍고 황량한 들판을 달려 거의 목적지에 이르렀는데도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소를 잘못 입력했나, 걱정하며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다 보니, 우리나라 남해의 다랑논처럼 가파른 산비탈 아래로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절벽 마을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었다. 기독교 군사들을 피해 절벽 비탈길에 집을 짓고 숨어 살아야 했던 옛 무어인들의 애환이 느껴졌지만, 그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후카르강이 그런 아픔을 적잖이 달래주지 않았을까 하는 위안도 느껴진다. 주민이 1,000명 안팎인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주민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깊고도 애잔한 울림이 있는 마을이다.

알칼라 데 후카르, 알바세테

알칼라 델 후카르와 세테닐은 기독교 왕국이 점령하기 전까지는 가족 단위로 숨어 지내던 무어인들의 정착지였다고 한다. 라틴어 세테 니힐(septem nihil)에서 유래한 세테닐이라는 이름은 ‘기독교인들이 일곱 번이나 함락을 시도했는데도 실패했다’는 의미다. 그라나다로 진격하려는 기독교 왕국에게는 세테닐이 주요 관문이었는데, 7번 시도 끝에 1484년에야 비로소 최종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적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동굴집이나 큼지막한 바위 아래로, 바와 카페, 레스토랑이 빼곡하게 들어선 색다른 관광지 모습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한편 그와는 정반대로, 가파른 협곡 위로 깎아지를 듯 우뚝 솟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들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론다(Ronda)이다.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론다는 다채로운 색상의 실들을 곱게 엮어 빚어낸 듯한 모습으로 그곳의 풍광에 매료된 수많은 작가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느긋하게 누에보 다리를 건너 멋진 건축물과 거리를 거닐다 보면 곳곳에 여행의 여유와 낭만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론다는 안달루시아에서도 이슬람 지배의 흔적이 가장 제대로 보존된 곳으로, 험난한 산악 지형 덕분에 격전이 가장 극렬했던 저항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프랑스 침략 기간에는 프랑스인들에 맞서 저항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세테닐 데 라스 보데가스, 카디스

레콩키스타의 전쟁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안달루시아 작은 마을들에는 ‘데 라 프론테라(국경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마을이 많이 있다.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Arcos de la Frontera), 카스테야르 데 라 프론테라(Castellar de la Frontera),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érez de la Frontera) 등등. 13세기 초 기독교 왕국이 안달루시아 지역을 정복한 이후, 2세기 동안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교 왕국의 접경 지역 마을들에는 그런 명칭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그 일대는 15세기 말까지 그라나다 왕국의 무슬림 요새와 기독교 지배의 경계에 따른 정치‧문화적 경계가 이뤄지며 스페인 특유의 혼종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렇게 국경이 수시로 바뀌는 치열하고도 지루한 전쟁 속에서도 스페인은 점령지의 문화·역사적 자산을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령지의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 훨씬 독창적이면서도 화려한 스페인만의 개성을 듬뿍 얹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안달루시아의 꽃이라 불리는 세비야(Sevilla)이다. 그리고 21세기로 들어선 세비야는 과거 중세의 모습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으며 더욱더 창의적이고 활력 있는 모습으로 거듭 태어났다.

론다, 말라가

재래시장이 있던 엔카르나시온 광장을 뒤덮은 버섯 모양의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 죽어가는 도시 경제를 되살린 불씨가 되었다. 이 구조물은 엔카르나시온 광장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세비야 시의회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우승한 작품이라고 한다. 버섯 모양으로 세비야의 구시가지를 뒤덮고 있어 ‘세비야의 버섯들(Setas de Sevilla)’로도 불리는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은 길이 150미터, 너비 70미터, 높이 약 26미터의 방대한 크기로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세비야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해 질 녘 멋진 파노라마 뷰가 펼쳐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세비야의 모습에서는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스페인만의 저력이, 돈키호테의 무모한 도전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태양이 져도 내일 다시 떠오르듯, 그렇게 지친 나 또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 간다.

권미선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스페인어학과 교수, 1965년생
역서 『영혼의 집』 『운명의 딸』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사볼타 사건의 진실』 『브리다』 『먼 별』 『레헨따』 『바다의 긴 꽃잎』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