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공원의 친구들

- 동화집 『6교시에 너를 기다려』

  • 창작후기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공원의 친구들

- 동화집 『6교시에 너를 기다려』

 

12편 단편이었다. 내가 마침표를 찍은 모든 동화였다. 그중에는 내보이기엔 아직 부족하다 느껴지는 단편도 있었다. 단편집 형태로 추려 보내야 하나 고민이 있었지만 모두 보냈다. 대산창작기금 선정 연락을 받고, 심사평을 여러 번 읽었다. 출판사를 구하는 과정도 비슷했다. 그때엔 책 형태로 추려 고르고 고른 단편 7편을 투고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혹 다른 글이 더 있느냐고. 내 모든 동화가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갔다.

그 모든 과정이 속상했다. 분명히 완결하고 내보인 작품이 아닌 미완의 무언가가 내 문학이 되어가는 일에 두려움도 느꼈다. 원래 수상과 출판의 과정은 이렇게 물밀듯이 이뤄지는 일인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지만 민망해 그러지 못했다. 동화로 등단한 이후로도 대산창작기금을 받고 출판사와 책 계약을 이룬 이후로도 나는 미완의 불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계약 후 1년간 퇴고를 거듭했다. 퇴고는 지지부진했다.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주저앉아버리고 울퉁불퉁한 곳을 눌러 펴면 밋밋해졌다. 언제나 최초 글을 한편에 띄워두고 읽고 또 읽었다. 내 글을 살펴준 재단과 출판사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1년 내내 글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가 고민했다. 세상에 내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글은 무엇인지 답을 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숫자가 붙은 파일을 모두 지웠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내 글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음을.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불신을 끝내줄 어떤 순간을. 메일함을 열었다. 낮에 편집자에게서 온 메일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고치기 전 최초 글이 더 좋다는 서문. 이어지는 내가 살피지 못한 어쩌면 부정해 왔던 작품의 매력을 알리는 본문. 거칠다. 튀어 나간다. 예상할 수 없다. 그 단어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순간은 문학의 정체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밤의 행운에 감사한다. 편집자가 용기 내 쓴 메일과 어둠을 지나 깨달음의 새벽에 도착한 순간은 다시 없을 분기였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퇴고본을 모두 지운 그날의 나를 말리고 싶다. 하루만 더 생각해 보라고.

편집자는 자꾸만 완벽해지려는 내 글에 틈을 만들고 방으로만 숨으려는 친구를 불러내 달리는 공원의 친구와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거친 글을 쓰는 신인 작가를 선정한 재단, 내 글을 살펴준 모든 이들이 그랬다. 어쩌면 그들 모습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친구가 되고 싶던 나는 멋들어진 계획과 서사 대신 일단 따라나서고 싶은, 대책 없이 밖으로 향해 무슨 일이든 벌이고야 마는 공원의 친구가 되어야 했다. 정체를 모르기에 세상은 다정해진다. 그렇게 내 문학을 살피게 되었다.

모든 모험은 알 수 없기에 따라나서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의 모든 것일지도. 내 글을 읽은 이들은 하나같이 그 낯설고 거친 지점을 짚었다. 다듬어지고 정제되는 글쓰기에 힘써왔던 나는 첫 책을 내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경계를 넘고, 무엇에라도 낙서하고 싶다. 내 책을 받아든 이들 표정을 그릴 수 있다면 오랜만에 방을 나서는 아이 표정이었으면 하다. 따듯하면서도 왠지 서늘한 한낮의 볕을 올려다보며 짓는 천진한 웃음이었으면. 그렇게 내딛는 걸음을 함께하는 친구였으면.

 

※ 필자의 동화집 『6교시에 너를 기다려』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4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성욱현
동화작가, 시인, 1994년생 | 동화집 『6교시에 너를 기다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