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한 손의 거짓말, 한 손의 기도

-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 오늘의 화제작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한 손의 거짓말, 한 손의 기도

-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기도는 두 손을 모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느라 두 손을 포갤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기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만 하는 것일까. 무언가 놓거나 포기할 수 없다면, 한 손밖에 남지 않은 이들이 기도가 필요한 순간에 서로에게 자신의 남은 다른 한 손을 빌려주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각기 다른 비밀, 거짓말, 혹은 이야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손에 꽉 쥐고 있던 세 청소년이 각자의 한 손에 다른 한 손을 포개어 주는 이야기다.

지우와 채운, 소리에게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최근에 가족과 헤어짐을 겪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하나씩 갖고 있다. 지우는 최근에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거짓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 나를 위한다면서 바다 쪽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삶의 방향을 튼”(90쪽) 엄마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런 지우는 같은 반 친구 소리에게 자신의 반려 도마뱀 ‘용식’을 잠시 돌봐줄 것으로 부탁하며 학교와 집을 떠나 독립을 준비한다. ‘용식’을 잠시 맡아준 소리에게도 이 년 전 엄마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소리에게는 상대방의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이 곧 죽게 될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소리는 매일 아침 암에 걸린 엄마의 손을 잡으며 죽음이 얼마큼 도래했는지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의 명도와 채도를 살피곤 했지만 엄마는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렇듯 죽음은 소설 속 곳곳에 널려 있다. 삶의 기쁨과 어려움을 미처 다 깨닫기도 전에 지우와 소리는 죽음이 남기고 간 여러 질문과 비밀들 앞에 허우적거린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버둥거리기는 채운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가족들을 정서적·신체적 폭력으로 학대해 온 아버지를 향해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칼을 겨눠버린 채운은 자기 대신 교도소에 간 엄마를 보며 깊은 죄책감과 혼란을 느낀다.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며 죽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162쪽) 마음과 기억을 갖게 된다.

 

옛날 옛날에

세상에 자비도 없고 희망도 없고 노래도 없던 때

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그 밤을 덮고 자느라

세상에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걸 잊었습니다.

첫날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만든 밤이 너무 편해서. (12쪽)

 

세 아이를 둘러싼 세상은 가혹하고 이들이 가진 비밀은 너무 뜨겁거나 차갑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주기 전, 한 손에 각자의 비밀을 꼭 쥐고 있을 때 짓게 되는 이야기는 위와 같다. 희망도 없고, 노래도 없고, 구원도 기적도 없는 이야기. 선의도 없는 이야기. 그 누구도 되돌아오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는 사람도 없는,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 손에 꼭 쥐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얼마큼의 거짓과 진실로 구성되는 것일까.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면 비밀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비밀은 이야기일까 이야기가 아닐까. 서로 달라 보이는 비밀과 거짓말, 이야기에는 어딘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세 단어를 마음속으로 굴리다 보면 어쩐지 나란히 겹치고 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우와 소리, 채운이 가진 각자의 비밀, 거짓말, 이야기가 한곳의 가느다란 빛을 향해 나란히 포개어지는 것처럼. 이 세 사람은 서로가 가진 비밀을 들춰내고 밝혀내는 대신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135쪽)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서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 한 번은 네가, 또 한 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 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 (182쪽)

 

비밀에 비밀이 덧대어지는 순간은 “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192쪽)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비밀들, 가령 항암 치료에 지친 소리의 엄마가 조력사를 원했다는 사실과 아빠의 애먼 의심인 줄만 알았던 채운의 엄마가 진짜로 새로운 사랑을 만났었다는 것, 그리고 지우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진실. 지우 엄마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실족사였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는 순간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당신이 펼쳐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 숨기는 비밀일 것이다. 손안에 꼭꼭 쥐고 있는 것들과 꼭 쥐고 있는 다른 이의 손바닥을 포착해내는 눈빛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한 손에 비밀을 쥐고 남은 한 손으로만 도망치는 것이 사실은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의 남은 한 손으로 그 도주를 도와줄 때, 우리는 손안의 비밀이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 비밀은 그저 비밀일 뿐이지만, 어떤 비밀들은 이미 시작된 이야기에 새로운 접속사를 끌어와 시작과 끝을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들은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235쪽)는 새로운 시작과 결말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손아귀에 있는 비밀과 거짓말들은 기도의 다름이 아니며, 그로 인해 새롭게 시작되고 새롭게 끝나는 이야기는 빛의 다름이 아니다. 이 빛은 채운과 소리, 지우의 눈썹 위에 꾹 눌러앉아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 것이다.

민선혜
평론가, 1996년생
평론 「간(間)의 기록 – 문지혁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