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독일 문학기행문
-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독일 문학기행문
이가인 시인, 숭실대학교 영화예술학과 4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2000년생 시 「명랑함을 가져보라고」 등 |
이방인의 마음
언제나 ‘첫’은 낯설고 설렌다.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면 도착하는 길. 먹어보지 않아도 상상되는 맛. 반응이 예상되는 일. 적당히 맞추는 타이밍. 모든 게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생활 반경 속에서도 나는 종종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왔다. 꼭 들어맞아야만 하는 어딘가에서 자꾸 튕겨져 나가고 있다는 느낌. 남들은 다 잘만 적응하는데 나만 못하고 있다는 느낌. 잘 하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의문이 늘어가던 하루에 갑자기 찾아온 문학기행은 평생 이방인의 기분으로 살아갈 거, 이왕이면 더 과감하게 낯설어져 보라는 응원 같았다. 오직 ‘문학’이라는 끈 하나로 연결된 낯선 이들과 살면서 처음 밟아보는 낯선 땅을 여행하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유로웠다. 이곳의 나는 말 그대로 이방인이기에 낯선 것이 당연했다. 낯선 문화, 낯선 언어, 낯선 얼굴, 낯선 표현, 그리고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낯설 나. 이곳에선 아무도 나를 모르고, 기행을 함께하는 우리는 베를린에서 보이던 협동심이 좋은 새들처럼 함께 걸어 다녔다.
마지막 날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방문한 카페에서, 주문을 받던 직원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스몰토크를 하면서 낯설기만 한 땅에서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은 게 신기했다. 어쩌면 낯설다는 감각은 내가 느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정과 긍정의 측면이 아닌 더 광범위하고 넓고 세밀한 어떤 감각. 즉각적인 반응과 공감으로 이루어진 것들. ‘잘 모르는 것’이 주는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예은 소설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2003년생 소설 「검은 강」 등 |
예상하지 못했어요. 예정보다 일렀어요. 여행 중 흘러나온 피는 이상한 피였고 무서운 피였습니다. 벨트가 죄였던 날, 신발이 헐거웠던 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마트료시카, 우도 린덴베르크의 음악이 주문처럼 들리던 날.
아래는 이 유혈 사태의 복선, 전조, 그리고 징후예요 :
하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비석 곳곳에 난 실금으로부터 물이 배어 나옴. 팔을 뻗어 한 방울 닦아냈을 때 저 멀리서 들린 웃음소리. 그를 비롯해 모든 소리가 고인 채 울리고 있다는 사실. 길을 헤매던 중 찾아낸 지하 비상 출구, 문은 닫혀 있음. 한 비석엔 전부 지우지 못한 ‘TRUTH’ 래커칠이 남아 있음.
둘, 베를린 신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 잉크 이전의 시대에서 필기구는 어찌나 날카롭고 뾰족했던지. 스타일러스 펜과 언어로 돌에 상처를 내는 장면. 그 옆엔 흠집 났으나 결코 깨지지 않은 유리잔들이 반짝임. 흐리고 두터운, 옅은 청록색 유리. 나는 언젠가 더러운 물을 담은 최초의 유리잔을 들고 최후의 문자를 새기는 인부들에게 부탁했을 것 : 좀 더 영원하게요. 네. 그렇게요.
셋, 낮 12시, 성 토마스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바흐와 멘델스존과 예수 그리스도가 빛을 두른 채 다가옴. 시선을 돌려도 잔상이 남음. 내 옆자리에 앉은 바흐, 성가대석에서 얼굴을 내민 멘델스존, 오르간 위에 올라선 예수 그리스도. 6년 전 12월 31일에 이곳 교회의 창을 향해 돌을 던진 남성을 떠올림. 그가 깨트린 스테인드글라스 패널 2개와 아르누보 양식 유리창 20개의 조각들은 어디로 버려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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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마우어파크 플리마켓에서 구입한 중고 카메라 두 대. 마운트에 장착한 슬라이드 필름 여러 장.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은, 어린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놀래키는 모습을 찍은 필름. 메모가 있음. ‘CARSTEW’, 아이의 이름일까.
다섯, 광장을 채운 시위대와 그래피티들. 우크라이나 국기 스티커, 한껏 쪼그려 앉아 쓴 듯한 ‘FREE GAZA FREE CONGO’, 건물 상단을 꽉 채운 ‘STOP WARS STAY TOGETHER’, 날아올라야만 쓸 수 있을 높이에.
김채은 극작가,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2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 1999년생 희곡 「0의 궤도」 등 |
마지막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내 여권에 입국 도장이 없었다(아마도 독일 입국 때, 입국 심사하신 분이 실수로 안 찍어주신 것 같다). 출국 심사하시는 분이 왜 도장이 없냐고,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입국 도장이 안 찍혔다는 이야기를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딱히 확인을 안 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냥 ‘아이 돈 노, 왓 해픈? 노 스탬프? 와이? 아이 돈 노’ 만 하염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었더니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리고 입국했던 티켓을 보여주고 무사히 출국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출국 심사하시는 분이 입국 도장이 없어서 출국 도장도 못 찍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너의 여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라고 서운한 말을 하셨다(지금 내 여권은 독일을 한 번 다녀왔지만 아무데도 안 다녀온 새것 같다! 신기하다). 다희 선생님께서 도장이 없어서 어떡하냐고, 아쉽지 않냐고 물어봐 주셨다. 이런 경험을 누가 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오히려 좋았다. 혼자 온 여행이었으면 조금 아쉬웠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렇게 명확한 기행문은 남는데, 여권에는 도장이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최선재 평론가,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2000년생 평론 「소음에서 고요로 향하는 존재의 발소리 - 황유원론」 등 |
당신이 만약 과거 동독 치하에 있던 동베를린 지역에 있다면 당신은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 속에서 모자를 쓴 꼬마 신사를 발견할 것이다. 귀여운 모습에 잠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당신은 파란불이 켜진 지 5초 만에 빨간불로 변하는 베를린의 신호등에 당혹을 금치 못할 것이다. 첫째 날에 횡단보도를 허겁지겁 달리던 당신은, 사흘 정도가 지나면 빨간불이 켜졌어도 느긋하게 걸어갈지 모른다. 베를린의 지하철에 탑승한 당신은 왜인지 지하철이 거칠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고, 베를린의 지하철은 내릴 때 승객이 직접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워할 것이다. 다행히 열차가 완전히 서지 않는다면 버튼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으니 당신은 또 안도할 것이다. 베를린 지하철역은 호선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외벽 문양과 색깔을 갖고 있으며, 기념품 가게에서는 각 역의 현판을 뱃지로 팔고 있으니 당신은 귀국하는 길에 그 뱃지를 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베를린의 트램을 한 번쯤 타볼 것이다.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베를린의 풍경을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스스로가 이 풍경에 익숙해져 있음을 자각할 것이다. 어떤 이국적인 세상이든 사흘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이승민 동화작가,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 수상자, 2004년생 동화 「파도는 우리 편이야」 등 |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요? 어느 날 훌쩍 베를린으로 떠나 처음 알게 된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일을 말이에요. 계획 없는 삶은 늘 불안하던 제게 처음으로 일탈과 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 여행이었습니다. 22살의 겨울에 느낀 베를린은 단순한 여행의 가치를 넘어서 끊임없이 회자하고 싶은 인생의 새로운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특히나 예술과 문학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완성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서 채은 언니랑 나눈 대화가 지금도 생각이 나요. “너무 완벽해서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우린 이 말에 서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은 것을 경험하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정말 모든 시간에 충실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웠습니다. 이렇게 또 성장하는 걸까요?
저는 문화와 동떨어진 섬에서 나고 자랐기에 늘 문화생활에 고파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베를린에서 방문한 박물관, 전시회, 미술관들은 정말 좋은 의미로 충격이었어요. <투란도트> 오페라도 관람했는데, 살면서 언제 베를린에서 양복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들떴답니다.
판매하는 모든 걸 다 사고 싶었던 두스만서점, 노벨상 수상자만 55명을 배출했다는 훔볼트대학교, 직접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바흐박물관, 빈티지 상점이 가득했던 마우어파크 플리마켓, 인테리어를 모방하고 싶었던 브레히트박물관까지. 문학과 예술의 새로운 경험들이 제 삶을 침투하며 다시금 예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눈과 마음이 전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기행문 전문은 웹진 《대산문화》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