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장래 희망 아티스트

  • 글밭단상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장래 희망 아티스트

한 번씩 다짐하듯 외친다. ‘나이 드는 거 정말 좋아!’ 벅참을 약간쯤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어서, 말하고 나면 어쩐지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없다. 과거를 뒤적거려봐야 서툴고 모난, 괴로운 기억투성이다. 대신 지금이라면 같은 실수도 더 낫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나아간다. 끝내 사라지게 될 존재라는 결말 역시 몹시 마음에 든다.

새로 생긴 작은 취미 중 하나는 장래 희망 수집이다. 장래 희망을 직업으로 한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가능성의 세계에 살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레퍼런스는 주로 책 속에서 얻는다. 내가 읽어온 책보다 읽지 못한 책이 셀 수 없이 더 많다는 것, 그 무한함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읽어온 문장과 시간을 배신하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사랑하게 된 이야기와 작가를 닮고 싶고, 지키고 싶다. 동시에 책이 펼쳐 보여준 몰랐던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더듬어서 탐험하고 싶다. 때론 싸우듯이 읽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책의 세계에는 승패가 없다. 대신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아주 조금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된다. 감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샌드위치 전문점 써브웨이에서는 자사 직원을 ‘샌드위치 아티스트’로 부른다. 써브웨이 샌드위치는 기본 메뉴 종류가 많은 데다, 소비자가 개인 선호에 따라 빵 종류나 크기, 내용물을 맞출 수 있다 보니 수십 또는 수백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 일을 너끈히 해내는 직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호칭에 담은 것으로 이해했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지 고심했다. 나는 내 취미 활동에 ‘장래 희망 아티스트’라는 직함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누구든, 무엇이든 삶에서 한 가지쯤은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부푼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근래 내 장래 희망의 레퍼런스는 책보다는 광장에 있다. 깃발 위에 새겨진 글씨를 따라 읽고 싶어서 나도 광장의 일원이 된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깃발을 이해하고 싶어서 『일리아스』를 읽어볼 엄두를 드디어 냈다. 그렇게 ‘『일리아스』 완독한 사람’을 새로운 장래 희망으로 수집했다. “나는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라는 문장을 깃발에 새겨 나온 곳은 ‘어바등 해저기지 노동조합’이었다. 어바등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라는 웹소설이었다. 처음 알게 된 수많은 것 중에 유난히 마음에 남은 이 문장을 요즘 자꾸 곱씹곤 한다.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이 그 바람 안에 온전히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문장은 다양하게 변주된 버전으로 여러 번 마주쳤다. 힘멜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28부작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 정주행으로 이어졌다.

<장송의 프리렌>은 마왕을 쓰러뜨리고 세계를 구하는 성취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 이후의 세계를 돌아보기 위해 이야기를 쌓아간다. 주인공 프리렌은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과거의 동료 힘멜을 떠올린다. ‘힘멜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며 프리렌은 나아간다. 프리렌의 회고 속에서 힘멜은 말한다. “아마 이런 일을 한다고 세계가 변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나는 눈앞의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 선의는 이렇게도 순환한다. 외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도착한다. 그렇게 힘멜은 또 다른 나의 장래 희망이 되었다. 읽고 쓰는 일이야말로 변화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건임을, 또 안다. 2025년에는 그 일을 더 열심히 해볼 작정이다.

장일호
<<시사IN>> 사회팀장, 1983년생
저서 『슬픔의 방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