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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배달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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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마음 배달 시계

내 마음, 아무도 몰라 줘 답답한가요?

누구에게든 신속, 정확하게 내 마음을 배달해 드립니다.

마음 배달 시계, 지금 당장 써 보세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정우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음 배달 시계라고?’

이것만 있으면 더는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정우는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어제는 엄마 생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선물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용돈은 진즉에 탈탈 털어 써 얼마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때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그릇들이 보였다.

‘엄마가 저 많은 그릇을 다 닦으려면 힘드시겠지?’

정우는 엄마 선물로 ‘설거지해 드리기’를 골랐다. 기특한 생각을 한 스스로를 칭찬하며 접시를 막 집어 드는데, 민우가 뒤에서 와락 달려들었다.

“형, 혼자 또 뭐 먹어?”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접시를 놓쳐 버렸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졌다. 민우가 으앙 울음을 터트렸다. 배민우는 아홉 살씩이나 먹어 놓고 툭하면 눈물 바람이다. 막 퇴근해 들어오던 엄마는 다짜고짜 정우를 혼냈다. 정우는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피, 내 마음도 모르고.’

어제 일을 떠올리니 정우 마음이 모래를 잔뜩 집어넣은 것처럼 꽉 막혀왔다. 그럴수록 마음 배달 시계가 마음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엄마가 사줄 리 없었다. 엄마는 돈이 들어가는 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까.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야 꽉 닫혀 있는 엄마 지갑이 살짝 열린다. 그때 미처 보지 못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출시 기념 이벤트 : 마음 배달 시계가 꼭 필요한 단 한 명을 뽑아 선물로 드립니다.※

 

마음 배달 시계가 필요한 이유를 적어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 명을 뽑아 선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거다!”

정우는 이제껏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겪었던 억울한 사연을 구구절절 적었다.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열 가지도 넘었다.

일주일 뒤. 정우 스마트폰으로 당첨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마음 배달 시계가 정우 손에 쏙 들어왔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알 속에 새빨간 하트가 쉼 없이 깜빡이는 시계였다. 정우는 사용 설명서부터 잽싸게 눈으로 훑었다. 마음 배달 시계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1. 하트를 터치한 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한다.

2. 이야기가 끝나면 마음 배달 시계가 알아서 척척 마음을 분석한다.

3. 완벽하게 표현된 내 마음을 확인한다.

4. 마음을 전할 사람에게 ‘배달’ 버튼을 누른다.

 

아무렇게나 말해도 똑똑한 시계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마음 배달 시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시계로, 없는 사람에게는 문자로 마음이 전송된다고 했다. 간단하게 마음을 배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물건이었다.

정우는 마음 배달 시계와 스마트폰을 연동해 연락처를 모조리 옮겨 놓았다. 그리고 당장 마음 배달 시계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만만한 건 동생 민우였다.

정우는 하트를 터치한 뒤 엄마 생일날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한바탕 털어놓으니 답답했던 속이 조금 풀렸다.

정우 말이 끝나자마자 하트가 한껏 쪼그라들더니 점점 커졌다. 하트가 커질수록 10%, 20%, 50%… 숫자도 점점 커졌다. 마침내 ‘뚜둥’ 소리와 함께 100%가 떴다. 하트도 시계 알을 꽉 채울 만큼 커져 있었다.

 

마음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딱딱한 기계음이 들렸다. 정우는 한 번 더 하트를 터치해 보았다. 속상한 표정을 짓는 이모티콘이 팡 떠올랐다 사라졌다. 곧 정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민우, 엄마 생일날 형이 아주 속상했어. 난 그저 설거지하려고 했을 뿐이야. 그게 내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깜짝 생일 선물이었어. 설마 내가 맛있는 걸 혼자 먹었겠니?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형은 아니거든? 그래도 네가 다치지 않아 참 다행이야!

 

“와, 이거 진짜, 완전, 대박 신기해!”

정우는 연신 ‘우와’를 외쳤다. 자기가 들어도 깜빡 속을 만큼 정우와 완벽하게 똑같은 목소리였다. 조금 전 정우가 이야기하는 걸 듣고 정우의 목소리 분석도 끝났나 보다. 내용은 살짝 닭살 돋았지만, 정우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게다가 자기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더욱 생생하게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날 민우에게 이렇게 조리 있게 말했다면 좋았겠지만, 앞으로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정우에게는 마음 배달 시계가 있으니까!

“근데 이건 좀 아닌데.”

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맛있는 걸 혼자 먹었을 리 없다’는 말이 살짝 걸렸다. 망고 젤리를 민우에게 뺏길까 봐 화장실에서 혼자 몰래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중요한 건 민우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전하는 거니까.

정우는 망설임 없이 ‘배달’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우 마음을 받은 민우가 사과를 건넨 것이다. 배민우 인생 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음 배달 시계의 효과를 톡톡히 확인한 정우는 수시로 시계를 썼다. 그러니 더는 억울한 일도 생기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마음을 배달했다. 엄마 생일에 있었던 사건의 오해도 진즉에 풀었다. 엄마 얼굴에 날마다 웃음꽃이 폈다.

“음식만 배달이 되는 줄 알았더니, 우리 아들 마음도 척척 배달되네. 고 녀석, 참 신통방통하다! 우리 정우가 이렇게 속 깊은 아들인 줄도 모르고, 엄마가 미안해.”

마음 배달 시계를 쓰고부터 사과받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더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우가 드디어 반 대표 축구 선수로 뽑힌 것이다.

정우네 반은 5학년 전체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 은찬이를 비롯해 날고뛰는 애들이 수두룩하다. 가끔 반 대항전을 하는데 정우는 번번이 응원만 했다. 같이 뛰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볼 때마다 정우는 발가락만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해 볼까?’

2반과의 축구 시합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정우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번에는 꼭 반 대표 선수로 나가고 싶었다. 정우는 마음 배달 시계를 사용해 은찬이에게 마음을 전했다. 은찬이는 다음 날 정우에게 다가와 축구를 함께하자고 했다. 정우는 운동장에서 펄펄 날았고, 은찬이보다 많은 세 골을 넣었다.

“오, 배정우! 숨은 실력자였네. 여태 왜 말 안 했냐?”

은찬이는 정우 실력을 확인하고는 바로 정우를 대표 선수에 끼워줬다.

드디어 2반과의 축구 시합 날이 되었다. 시작은 좋았다. 정우의 패스를 받은 은찬이가 먼저 한 골을 넣었다. 하지만 2반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축구 영재가 전학 왔다더니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 아이는 혼자서 내리 두 골을 넣었다. 경기는 이제 5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정우네 반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은찬이가 축구 영재의 공을 빼앗아 순식간에 공격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은찬이는 골문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왔다. 2반 아이들 서넛이 금세 은찬이를 에워싸며 쫓아왔다. 골문 근처에 있던 정우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은찬이가 패스해 주면 골을 넣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은찬이는 정우를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슛했다.

팅!

축구공은 골대 위를 맞고 맥없이 튕겨 나갔다. 결국 정우네 반이 2대 1로 지고 말았다.

‘강은찬, 나한테 패스만 했어도. 어휴, 아까워.’

정우는 속상한 마음에 발을 쾅 굴렀다. 다른 아이들도 아쉬워했지만, 곧 은찬이와 정우에게 잘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하지만 정우의 속상한 마음은 집에 와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정우 눈에 마음 배달 시계가 들어왔다. 민우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놓기만 해도 답답함이 조금 풀렸던 게 떠올랐다.

정우는 재빨리 하트를 터치했다. 그러고는 낮에 있었던 축구 경기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었다. 은찬이에게 멋지게 패스해 1점을 냈던 일과 은찬이 때문에 골 넣을 기회를 놓쳤던 일을 이야기할 때는 저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다.

그렇게 한참 떠들고 나니 축구 경기에서 진 일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누구에게도 마음을 전할 생각이 없었기에 정우는 시계가 분석한 마음을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피곤한데 잠이나 자자!”

정우는 침대 위로 철퍼덕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곧 달디단 잠에 빠졌다.

다음 날. 교실에 들어선 정우는 싸늘한 분위기에 어깨가 절로 움찔했다. 은찬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반 분위기가 왜 이래? 2반에 축구 져서 아직도 속상한가?”

은찬이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속상한 건 배정우, 너 같은데. 진짜 미안하다. 나 때문에 져서.”

같이 축구했던 아이들도 정우 들으라는 듯 한마디씩 했다.

“축구 좀 한다고 끼워줬더니 어디서 잘난 척이야.”

“솔직히 은찬이가 정우보다 훨씬 잘하잖아.”

“어렵게 공 뺏은 것도 은찬인데, 자기는 골문 앞에 편하게 서 있다가 골 맛만 보려고?”

정우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이들이 왜 갑자기 자신을 비난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다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한 아이가 나서서 제 스마트폰을 정우 눈앞에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배정우의 마음이 배달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화난 표정의 이모티콘이 떠 있었다.

“어, 이, 이게 왜…….”

정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배달돼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잔뜩 화난 정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휴, 열받아! 강은찬은 저 혼자 축구하나? 나한테 패스만 했어도 멋지게 골을 넣을 수 있었는데, 이게 뭐야. 강은찬 때문에 다 망쳤어. 다른 애들도 그래. 실력이 안 되면 빠릿빠릿 움직이기라도 해야지. 하여튼 몽땅 다 마음에 안 들어!

정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이건 내 마음이 아닌데….’

하지만 입술만 파르르 떨릴 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정우는 온종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서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집에 돌아온 정우는 마음 배달 시계를 손목에서 휙 빼내 침대 위에 던져 버렸다.

“내 마음을 배달해 준다더니 엉뚱한 마음만 전했잖아!”

자기 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이런 기계에 의존했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기계는 언제든 오류를 일으킬 수 있었다.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비록 서툴더라도 그걸 표현해야 할 사람 역시 바로 나였다.

‘그래, 내 마음은 내가 배달하는 거야.’

정우는 가장 아끼는 공책을 꺼냈다. 공책을 쫙 펼치자 쪼그라들었던 정우 마음도 쫙 펴지는 것 같았다.

정우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천천히 적어 보았다. 썼던 글을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쓰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다.

정우 마음이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졌다.

백혜영
동화작가, 1981년생
동화 『우리말 모으기 대작전 말모이』 『귀신 쫓는 비형랑』 『외로움 반장』 『구구옥 : 이별을 도와드립니다』, 청소년소설 『꿈을 걷는 소녀』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