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겁게 다 들고 다녀. 어차피 다시 올 건데.
그 애는 말했다.
어차피 다시 올 거잖아? 옷도 한국 가면 많을 텐데.
그 애는 말했다.
그럴 텐데 뭐 하러 다 들고 다녀.
그 애는 말했다.
나는 무어라 대답했던가. 아마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대답하지 않고, 거대한 가방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각종 생활용품과 책과 서류 외에도 묵직한 겨울옷이 잔뜩 들어있는 남색의 이민 가방을. 그 가방은 떠나기 전, 남대문에서 산 거였다. 이민을 가는 것은 아니었는데. 내게 필요한 것이 이민 가방이며, 이민 가방은 남대문에서 사는 거라고 누가 말해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출국 직전, 아마도 새벽 세 시쯤에야 가방을 꾸렸던 기억만이 생생하다. 비행기를 타려면 일곱 시에는 나가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즉흥적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어쩌면 반대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때의 그 애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 애는 이제 그때의 그 애가 아니겠지. 지금의 그 애는 이제 그렇게 말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 그렇게 무겁게 다 들고 다녀.
……
어차피 다시 올 건데.
……
어차피 다시 올 거잖아, 그런데 뭐 하러 무겁게……
……
묵묵부답인 한 사람을 향해 세 번이나 질문을 하는 사람. 질문으로 그를 감싸는 사람. 느리고 억양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담담하고 담백한 목소리. 바로 그 담담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그 애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누가 그러는데 내가 너무 담백하대.
……
그런데 연애하려면 좀 찐득거릴 필요가 있대.
……
그때도 나는 묵묵부답으로 거대한 가방을 바라보았던가. 아니면 펼쳐진 가방 속 수북한 겨울옷들을. 다양한 색감과 재질의 니트와 스웨터, 스커트와 바지, 그리고 갈색 겨울 코트를.
그 코트는 쁘아띠에(Poitiers)의 한 아웃렛 매장에서 산 거였다. 학교와 아웃렛은 가까웠고, 점심시간마다 나는 아웃렛에 가서 통조림을 까먹고 옷을 입어보았다. 점심에 옷을 사러 오는 이는 거의 없었기에 의류매장 내의 드레스 룸은 늘 비어 있었다. 작고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했고, 매장에서 옷을 고를 때 따라붙는 직원이 없었기에 나는 그곳에서 평소에는 입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옷들을 한껏 입어보았다. 그러나 구입까지 이어지는 건 역시 평소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옷들이다. 그 갈색 코트는 라인이 여성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데가 있었다. 몸에 붙는 니트나 클래식한 셔츠를 받쳐 입을 때와 넉넉한 후드 티나 맨투맨 티를 겹쳐 입을 때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조금은 얄팍한 합성 원단이긴 해도 카디건이나 조끼까지 겹쳐 입는다면 한국의 매서운 겨울도 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한국에도 두고 온 코트가 많지만, 나는 이 갈색 코트를 그곳에 가서도 입고 싶었다. 이 코트뿐 아니라 아웃렛에서 산 니트 여섯 벌과 스웨터 다섯 벌, 스커트 세 벌과 바지 네 벌, 목도리 세 개까지 다 가져가는 건, 그래서 이민 가방에, 캐리어에 배낭까지 끌고 오게 된 건 ― 물론 이 중 두 개의 가방 정도는 쁘아띠에의 C에게 맡겨둘 수도 있었을 테지만 ― 한국에 가서도 입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암막 커튼처럼 새카만 머리칼 사이로 입을 다물고, 어쩌면 그 애의 가방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애가 가져온 가방은 하나였다.
길쭉한 등산용 배낭 하나.
진회색 몸체 앞면에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 있고 주머니 지퍼와 고리 부분만 형광 연두색을 띠고 있는, 눈에 익은 배낭이었다. 강의 시간에 그 애가 종종 매고 오던 것. 왜 등산 배낭을 메고 왔냐고 물으면 그 애는 산악부에서 방과 후 야간 등반을 간다고 했다. 그런 날이 꽤 잦았던 것 같다. 내성적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 애는 동아리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나도 그 여행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야간 등반이나 몇 박에 걸친 긴 여행은 아니었고 일요일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정이었는데 그때 떠난 곳이 저 멀리 남쪽의 무슨 산이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장기자랑이 펼쳐져 몹시 불편했던 기억만이 생생하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맨 뒷좌석부터 한 사람씩 지목했는데 모두에게 익숙한 일인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애 역시 전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가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마법의 성>과 <기억의 습작>을 연달아 불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사회자는 신입회원이라 소개하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나가지 않았다. 사회자가 뭐라 다시 소개했고 사람들이 손뼉을 쳤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흥겹던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지자 사회자는 서둘러 다음 사람을 불렀고, 다음 사람은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그 누구보다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좁은 통로를 오가며 춤까지 췄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고, 김밥과 사이다를 먹고, 다시 산을 오르고, 유명하다는 봉우리에 닿아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산에서 내려오기까지, 나는 그 애 외에 다른 누군가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서서히 해가 질 무렵, 봉우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오전에 버스에서 사회를 보았던 아이가 못마땅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는 대체 여기 왜 온 거냐? 나는 그 애 때문이라고 말했다. 뭐? 그 애가 등산을 하니까 따라와 본 거라고. 그게 다야? 응, 그게 다야. 사회를 봤던 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거친 손놀림으로 담뱃불을 끄고 자리를 떴다. 나는 누군가 손에 쥐여 주었던 젤리를 천천히 씹으며 다시 진회색 배낭을 찾았다. 아무튼 이 배낭은 그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산악부 활동에서 내가 시선을 놓치지 않고 졸졸 따라다녔던 바로 그 진회색 배낭이었다. 네팔의 에베레스트에도 메고 갔고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에도 메고 갔었다던 그 배낭. 그걸 메고 그 애는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 파리에도 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애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왔다. 내가 살던 쁘아띠에에서 파리까지는 열차로 두 시간 거리. 그 애와 파리에서의 짧은 여행 후에는 잠시 한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 잠시…… 구정까지 딱 한 달만 한국에 머물고, 그 애의 말대로 다시 쁘아띠에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왕복에 필요한 비행기와 열차 티켓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앞으로의 일정은 그 티켓들에 인쇄된 날짜와 시간만큼이나 확고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정이란 언제나 틀어질 수 있고, 예정이 확고하다고 해서 틀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즉 예정과는 다르게 내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지 않거나,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다 해도 돌아오는 열차를 타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 몹시 미미한 가능성일지라도, 그 가능성이 불가능할 확률이 절대적이라 할지라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 그 미미한 가능성에 나는 늘 주목했다. 그 미미한 무수한 가능성을 나는 버릴 수 없었다. 이 미미하고 무수한 옷가지들을 버리고 올 수 없는 것처럼. 물론 두고 오는 거지, 버리고 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두고 올 때,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있잖아 나는, 무언가를 두고 올 때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그렇게 그 애에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애에게 말했다면,
그건 그런 게 아니야, 언니.
라고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그 애는 설명해 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해가 되고 안심이 되어 다음부터 좀 더 가벼운 가방을 꾸릴지도 모른다.
그 애처럼.
실내복 한 벌과 양말과 속옷 몇 벌, 카메라 한 대가 전부인 그 애의 가방처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던 사람.
그 애는 내 입술이 아픈 것처럼 붉다고 했다.
너는 머리를 잘랐네.
그렇다. 나는 곧바로 그 말을 했다. 내 붉은 입술을 지우기 위해. 내 붉음을 덮어버리기 위해 내가 했던 그 말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 말은 어쩌면 그 시간을 기억하는 글쓰기 속에서 했던 말일 수도 있다.
너는 머리를 잘랐네, 소년처럼.
그 애와 내가 파리에서 함께 지냈던 사흘, 함께 루브르 전시도 보고 몽마르트르 언덕도 가리라 했지만 어디도 가지 않았고 무엇도 보지 않았던 사흘, 단지 방에서 가방을 바라보거나 기억을 바라보았던…… 시작과 동시에 깊이 가라앉아버린 우리의 여행 아닌 여행을 기억하는 글쓰기 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했던 말일 수 있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글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수십 번, 어쩌면 백 번가량 시도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없다. 발표된 것도 없다. 수백 장의 원고는 당시 기어이 끌고 다니던, 남색의 이민 가방에 전부 들어 있다. 아직도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그 이민 가방을 끌고 다닌다. 아무런 필요가 없는데,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데 버릴 수 없다. 실은 그런 가방이 수두룩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옮기는 사람은 툴툴거린다. 이건 뭔데 이렇게 무겁냐고. 대체 뭔데 이렇게 무거운 가방이 많냐고.
기억.
이라고 나는 말하지 못하고 또다시 그 애의 말을 기억한다.
블로그에 글을 써봐. 꼭꼭 숨겨두지 말고.
……
혼자만 보지 말고 같이 보면 좋잖아.
……
혼자 보거나 같이 보거나 여러 사람이 보거나 아무도 보지 않거나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 그리고 기억의 글쓰기를 이어간다 ― 나는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부러 꼭꼭 숨겨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블로그가 있었다면 블로그에 글을 써서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것은 없고 그냥 노트북만 있었기에 노트북 문서에만 썼던 거라고, 그래서 한국을 떠나와 지난 일 년 동안 썼던 모든 글은, 타국에 머물면서 집요하게 기록하게 된 일기나 일기를 쓰면서 번져나간 소설 비슷한 무언가, 나 자신 예상하지 못했지만 방대하게 번져나간 그 텍스트 덩어리들은 모조리 노트북 안에만 있었다고, 그러니까 노트북은 바로 그렇게 글쓰기에 몰두했던 지난 일 년의 시간이나 일 년 동안의 기억으로 여겨진다고, 그래서 그것이 한순간 사라지자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 그 애는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말하지 못했고 그 애는 듣지 못했지만,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니 기억을 잃어버리게 한 기분이야.
……
내가 언니 기억을 잃어버렸어.
……
나는 네가 잃어버린 것이 한 대의 노트북일 뿐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2006년 12월 23일 오후 1시 35분 우리가 재회한 지 정확히 35분이 흐른 시각,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리고 네가 자리에 남아 창밖을 보는 사이 사라져 버린 그것이 일 년 동안의 내 기억이 아닌, HP사의 십삼 인치 노트북일 뿐이라고.
그렇다. 나는 이민 가방과 캐리어, 배낭 외에 노트북 가방까지 총 네 개의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쁘아띠에에서 온 것이었다. 쁘아띠에에서 파리까지는 승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했다. 가방이 너무 많고 무거워서 이걸 다 끌고 열차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차 공유를 하기로 한 곳까지 가방을 옮기는 일은 C가 도와주었다. 기숙사 앞에서 만난 C는 내가 주렁주렁 매달고 온 가방들을 본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내게 다가와, 참담한 얼굴로 물었다. 완전히 떠나는 거냐고. 날 두고 가는 거냐고.
승차 공유의 운전자는 쁘아띠에에 사는 사십 대 후반 남자였고 다른 탑승자는 없었기에 여정 초반 어쩔 수 없이 단조로운 질의응답을 이어가야 했다. 운전자는 자신은 파리에 사는 애인과 모레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러 가는 것인데 너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 친구와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가는 거라고 했다. 네 친구도 파리에 사느냐고 그는 물었다. 친구는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어젯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왔다고 나는 대답했다. 친구도 남한 사람이냐고 그는 물었다. 그렇다. 남한 사람이다. 우리는 같은 대학에 다녔고 일 년 만에 재회하는 거다. 일 년이면 꽤 오랜만인데 기분이 어떠냐.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걱정? 무슨 걱정이? 내가 그 애를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너는 파리를 잘 아는가? 아니, 모른다. 나도 이번이 첫 방문이다. 그런데 왠지 책임감이 느껴진다. 어째서? 글쎄, 아무래도 그 애가 내가 사는 나라로 왔기 때문에…… 그 애는 이 나라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자 운전자는 잘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는 숙소는 어디에 구했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내리기로 한 벨빌역 근처에 구했다고, 80제곱미터나 되는 아주 넓은 방인데 욕조까지 딸려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운전자는 문득 조수석의 나를 돌아보더니 그 푸른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목적지를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 벨빌역에 방을 구한 건가? 그 시장판 같은 동네에? 그러고는 벨빌이 얼마나 소란하고 사건 사고가 많은 구역인지를 설명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들었고 마침 운전자에게 전화가 왔다. 파리에 산다는 그의 애인인가 보았다. 나와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한결 빨라진 속도로 은밀하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그의 음성을 뒤로 하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쁘아띠에에서 출발한 이후로 줄곧 드넓은 농장이나 초원, 외딴 농가만 반복되던 풍경에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공장 건물과 고층 빌딩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음울한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풍경 위로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 애가 겹쳐 보였다.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는 길고 가느다란 몸…… 까무잡잡한 얼굴에 새카맣고 커다란 눈동자…… 숱이 많은 긴 머리…… 그러나 머리는 몹시 짧아져 있었다. 소년처럼. 그래서 그 애가 나를 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애를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 애의 모습이 크게 달라져 있던 데다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벨빌역 사거리는 운전자가 말했던 ‘시장판’을 넘어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중국인, 베트남인, 튀르키예인, 러시아인 등 온갖 국적의 이민자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각자의 모국어로 왁자지껄 떠들며 우르르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인도 여기저기 좌판을 깐 상인들은 어쩐지 악에 받친 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파는 물건의 이름과 가격을 공격적으로 외쳐대고 있었으며, 사거리를 따라 길게 늘어진 이민자 마트와 식당에서는 캐럴과 힙합, 샹송과 이슬람 경전 낭송음 등이 동시에 흘러나와 더는 알 수 없는 소음 덩어리로 뒤엉키고 있었다. 게다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찢어진 신문지나 봉지 따위가 인도와 차도 위를 휙휙 날아다니고,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휘날려 눈을 가린다. 그때의 나는 머리가 길었다. 한 번도 짧게 자른 적이 없었고, 짧게 자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머리가 아주 짧다. 한 번도 길게 기른 적 없고, 길게 기를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때의 그 애는 서울을 떠나기 직전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했는데, 그즈음 몸이 몹시 아팠던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면 목, 옆구리, 어깨 같은 데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막 아픈 거야.
……
밤새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어, 누구라도 말을 걸면 욕하고 싶을 정도로.
……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 심지어 내 머리칼마저 나를 아프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 같았어.
……
그 거대한 혼돈과 바람 속, 벨빌역 사거리의 1번 출구 앞에서 재회한 우리는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애는 곧장 그런 이야기를 했다. 논문을 쓰고, 전시를 치르고, 출국을 준비하면서 아팠던 이야기. 아프고, 살이 빠지고, 머리를 잘랐던 이야기. 느리고 억양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느리지만 쉼 없이, 잠깐의 공백도 없이 이어지는 목소리.
카페 내부는 바람만 불지 않을 뿐 바깥과 다를 것 없이 소란하고 번잡했는데 그럼에도 목소리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길게 이어졌고, 뒤늦게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을 때야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웨이터가 떠나자, 다시 이어진다.
살이 십 킬로나 빠질 정도로 아팠는데 신기하게도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아픈 게 싹 없어졌어.
……
중학교 때부터 만성으로 시달리던 두통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거야.
……
그 애는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자신에게 너무 잘 맞아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마음도 아주 평온한데, 실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고.
그 사람은 아이가 있어.
……
내게 결혼하자고 해.
……
결혼과 아이. 아이와 결혼. 그런 단어를 발음하고 있는 그 애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낯설었지만 더없이 낯설어진 얼굴 뒤로 카페의 전자시계가 보였다. 1시 15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방 열쇠를 받으러 가야 해.
열쇠를 받으러 간다고……? 어디로?
저기.
그리고 나는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사거리 너머 맥도날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 주인과는 이메일로 소통했는데, 내가 방을 빌리는 기간 동안 자신은 이탈리아로 출장을 떠나므로 열쇠는 자신의 친구가 전해줄 것이라고 했다. 벨빌역 사거리에서 일하는 친구가 1시 20분쯤 맥도날드 앞으로 잠깐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그때가 괜찮겠냐고. 맥도날드는 4번 출구 바로 앞이니 찾는 건 전혀 문제없을 거라고. 그 애와의 약속도 같은 장소로 잡았다면 이동할 필요가 없었을 테지만 무국적의 패스트푸드점에서 그 애와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고, 또한 여행의 첫 음료로 중국산 맥카페를 대접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 그래, 다녀 와.
그 애의 결혼과 아이에 대해, 아이와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은 앞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곧장 뒤돌아 출입문을 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불쑥 일어나 어딘가를 나가는 사람. 미리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직전이 되어서야 말해버리기 때문에. 불쑥 말해버리고 불쑥 나가버리기에 마침 알맞은 자리였다. 내가 끌고 온 가방이 많기에 우리는 출입문을 열자마자 코앞에 닿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바깥의 찬 공기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자리였으나 카페에는 잠깐만 머물 것이기 때문에. 열쇠를 받아오는 즉시 방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빨리 다녀올게.
또다시 거대한 혼돈과 바람 속. 건너편 맥도날드로 가려면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더 간편한 방법이었지만 나는 곧장 지하 출구로 내려갔다. 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고 오래 기다리는 내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불쑥 나가버린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애의 검은 시선이 그럼에도 등 뒤로 느껴졌다. 그 눈동자. 먹물처럼 새카만 눈동자. 내가 그토록 따라다녔던, 따라 하고 싶던 눈동자. 유난히 크고 새카맣던, 그래서 동물의 눈을 떠올리게 하는 그 눈동자를 본 순간부터 나는 그것에 이끌렸다. 그 애가 이유도 모른 채 아팠던 것처럼 이유도 모른 채 그것을 바라보았고, 그것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눈이 바라보는 것은 유난히 크고 새카만 그 눈을 닮은 주변의 사물, 공간, 또는 어둠 그 자체였고, 그것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그 애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나 역시 주변의 사물, 공간, 또는 빛과 어둠을 바라보며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실은 그 애의 이미지를 따라 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더 솔직히는 그저 그 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애는 지하 2층의 암실에서 내 사진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언니는 내가 지나간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친해지고 싶지 않았어.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진입하니 놀랍게도 지상만큼이나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또한 지상만큼이나 인파가 붐볐는데, 지하에서 사람들은 더 빠르게 걷고 더 크게 말하며 더 무섭게 웃는 것 같았다. 이 속도와 소음, 활기에 나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난 일 년간 고요와 침묵에 너무 적응해 버린 까닭인 듯싶었다. 내가 살던 쁘아띠에는 텅 빈 거리와 텅 빈 광장, 텅 빈 초원의 도시였다. 인적 없는 거리를 걷다 보면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나거나 뒤뚱뒤뚱 차도를 건너는 오리 가족, 또는 드넓은 초원에 띄엄띄엄 서 있는 몇 마리의 양을 만날 뿐이었다. 곱실거리는 흰 털로 뒤덮인 크고 둥그런 몸뚱이들의 움직임은 얼마나 느리고, 또 얼마나 고요하던지. 울타리 한편에 멈추어 서서 그 한없이 느린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대로 세상이 정지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곤 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곤 했다. 나를 발견한 한 마리의 양이 어느샌가 다가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코앞에 다가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러면 나 역시 코앞에 선 양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마치 정지된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두 생명체처럼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영겁의 시간 동안 나는 양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 자체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익숙한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양이, 그것도 지금 막 처음 만난 한 마리의 양이 내가 이제껏 만나왔던 그 누구보다 흔들림 없는 눈으로, 거의 영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으며 이 나라의 언어로 양이 ‘무똥’이란 사실 역시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무똥…… 무똥이라니. 하교 후에는 무똥, 무똥, 중얼거리며 거대한 초원과 목장을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걷고, 끝없는 고요 속에서 끝없이 홀로 걷기만 하던 시간이었다. 귓속을 울리는 소리라곤 멀리서 들려오는 대성당의 종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외국어를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전부이던 지난 일 년…… 낯선 근육질의 음성들이 쩌렁쩌렁 울리는 지하통로를 걷고 있자니 문득 그 시간이 아주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곳에 있을 때는 너무나 만연하여 이제 충분하다 싶던 고요와 침묵이 그곳을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그리워졌고, 그중에서도 자주 가던 아웃렛의 드레스 룸이, 그 작고 폐쇄된 공간의 깊은 적막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정체된 공기 속에 잠깐이라도 웅크려 있으면 내게 닥친 이 변화를,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예상치 못했던 그 애의 변화를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편안하고 성숙한 얼굴로 그 애를 마주하여 그 뒤로 이어질 이야기를 듣고, 또 안정되고 침착한 모습으로 그 애를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이 도시가 처음이지만 그 애가 내가 사는 나라로 왔기 때문에…… 그 애는 이 나라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 현실은 어딘가로 숨기는커녕 어디로도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사람이 이토록 불어났는지 아니면 진작부터 이랬던 것인지 맥도날드로 나가는 출구는 계단 초입부터 완전히 정체되어 있었고 나는 이미 그 인파 한가운데 말려들어 있었다. 계단부터 이러하다면 출구를 나간다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지금이라도 방 주인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를 변경하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은 그러나 하지 못했고, 생각했다 해도 소용없었다. 익명의 몸뚱이들에 포위된 채로 한 계단 한 계단 가까스로 올라 마침내 다다른 지상에서 맥도날드 앞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무수한 머리통을 마주했을 때, 이 속에서는 모르는 얼굴은커녕 아는 얼굴을 찾아내기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전화를 걸려고 했을 때, 주머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다고 되뇌며 옷에 달린 주머니를 모조리 뒤적였으나 정말 텅 비어 있었다. 빠르게 거대해지는 불길함, 그리고 시간이 몹시 지체되고 있다는 초조함 속에서 다시 차근차근, 외투의 겉주머니와 속주머니, 바지의 앞주머니와 뒷주머니를 두 번, 세 번 휘저어 보았으나 나오는 것은 구겨진 영수증 쪼가리와 일 센트짜리 동전 몇 개, 그리고 인파의 한복판에서 꼼짝하지 않는 아시아인을 향한 적나라한 욕설이 전부. 앞으로 좀 가! 멍청한 중국인아! 이런 제길,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출구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문득 아까 커피를 주문하며 지갑을 꺼낼 때 노트북 가방 앞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핸드폰뿐 아니라 여권, 지갑, 각종 발권 확인증 등 중요한 소지품들은 모두 그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바보같이 빈손으로 나와 허둥대는 꼴을 건너편 카페의 그 애가 보고 있지는 않을까,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나는 방향을 틀어 방금 간신히 통과했던 계단의 인파 속을 다시 비집고 들어갔다. 건너편 카페로 가려면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더 간편한 방법이었지만 카페 창가에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훤히 보이고, 창가에 앉은 그 애에게 내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하여 나는 한층 격해진 욕설을 받으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 머리를 미친 듯이 헝클어뜨리는 지하통로를 지나, 아까 도망치듯 뛰어 내려왔던 카페 쪽 출구 계단을 두 칸 세 칸씩 뛰어올랐다. 그런 다음 몰아치는 숨을 최대한 억제하며 가능한 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카페 출입문을 밀고, 그 애의 검고 아득한 시선 속에 들어와, 의자 등받이에 기대두었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하는 노트북 가방을 찾았을 때,
어디 있어 내 노트북?
응?
여기 있던 노트북?
응……?
여기 노트북을 두었는데?
어……? 내가 여기 계속 있었는데?
……
어 내 가 여 기 계 속 있 었 는 데?
……
어 내 가 여 기 계 속 있 었 는 데?
이 순간은 무수히 썼다. 그 시간, 그 도시에서의 사흘을 기억하는 글쓰기에. 주로 도입부에 등장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래,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수백 장의 원고가 든 그 이민 가방은 열어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에 나는 내 글쓰기를 읽거나 확인하지 않고, 기억하거나 추정한다. 끝없이 시도되던 그 글쓰기 속에서 그 애는 그녀이기도 했고, 지금과 같이 그 애이기도 했고,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누군가이기도 했고, 단지 시선이기도 했을 것이다. 수십 번, 아마도 백 번은 이루어졌던 그 글쓰기 속에서 그 애는 한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했고, 창밖의 오로지 한 지점을 응시하는 집요한 시선이기도 했으며, 이를테면 카페 창문 앞 인도에 선 히잡 차림의 무슬림 여인, 자신이 파는 관광 엽서가 바람에 날아가는 줄도 모르고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내부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동자를 역시 뚫어져라 응시하느라 바로 자신과 인접한 이들의 시선과 움직임, 바로 자신의 시선을 초점에 두고 진행되는 소리 없는 움직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먹물처럼 검은 눈동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검은 눈동자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어딘가, 그 눈동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동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 눈동자는 오로지 검은 눈동자만을 바라보는데, 새카만 먹물이 뚝 뚝 떨어질 때까지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역시 하염없이 바라보는 눈동자 아래 입술은 아픈 것처럼 붉었을 것이다. 그 눈동자의 입술은 유난히 붉고, 그 눈동자가 바라보는 눈동자는 유난히 검기에, 붉음과 검음, 또는 붉은 양과 검은 양이라고 그 둘은 지칭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붉은 양과 검은 양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 어둡고 커다란 방에 숨어버린 다음, 당연히 하게 될 줄 알았던 전시 관람도 몽마르트르 방문도 쇼핑도 없이 사흘 내내 오로지 기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검은 양은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붉은 양의 기억을, 붉은 양은 검은 양이 잃어버린 것이 기억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기억의 가방을. 그들 특유의 기질과 습성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것을 어찌나 집중해서 바라보았던지 검은 양의 눈에선 여지없이 새카만 먹물이 뚝 뚝 떨어졌고, 뚝 뚝 떨어지는 눈물까지 이중으로 바라보는 붉은 양의 기억의 가방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점점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이 끝나고 검은 양과 헤어진 직후, 붉은 양은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보낸 우리의 사흘과 그 애가 내게 남겨준 기억, 내가 그 애에게 남겨준 기억들이 무분별하게, 공격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저항할 수 없다. 우리의 사흘을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시간을 끈질기게 잡고 언제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라고, 빠르게 적어 내려갔던 최초 글쓰기의 순간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리고 경악한다. 기어코 그 시간을 끈질기게 잡고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사흘이 벌써 십칠 년 전의 일이고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이 되어도 끝끝내 그 시간을 놓지 않을 것 같다는 무서운 예감에. 기억은 쓰면 쓸수록 가볍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더 집요하게, 더 미세하게 뿌리를 내려 무수한 뿌리를 내린 모든 기억에 기억이 꼬리를 물고 번져간다는 사실. 그 오래전 일기를 쓰면서 무섭게 번져갔던 소설처럼 하나의 기억이 무수한 글쓰기로 번져가 무겁고 무거운 글쓰기의 가방이 끝도 없이 늘어간다는 사실. 아무런 필요가 없는데,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아는데 그 바윗덩어리 같은 가방들을 기어이 끌고 다니고.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옮기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툴툴거린다. 이것들은 대체 뭔데 이렇게 무겁냐고. 대체 뭔데 이렇게 무거운 가방들이 많냐고. 나는 내심 그들이 나 모르게 가방을 버려주기를 바라지만 가혹하리만치 완벽하게 그들은 이사를 완료하고. 모두가 떠난 뒤 방에 남아 마치 고대 비석처럼 여기저기 우뚝 선 채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방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왜 그렇게 무겁게 다 들고 다녀.
……
아무것도 아닌 다 지난 일인데.
……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잖아, 그런데 뭐 하러……
……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린다. 느리고 억양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 담담하고 담백한 목소리. 그리고 이어서 내 침묵이 들린다. 아니, 침묵이라기보단 말 없음이. 아니, 말 없음이라기보단 말하지 못하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십칠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어떤 말이. 수십 번, 어쩌면 백 번은 시도되었던 글쓰기의 이유가 되는 말. 언제나 그 말을 하려고 글쓰기를 시작하지만 매번 실패했던 말. 그 말을 쓰기에 실패하였기에 글쓰기 역시 실패하였고, 그리하여 글쓰기를 가방 속에 머물게 했던 말. 길고 복잡한 것도 아니고 서너 문장이면 충분히 서술될 수 있는 말. 노트북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흘리던 눈물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말. 그리하여 너를 당혹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안절부절못하게 했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말. 어쩌면 미미한 말. 미미하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말. 물론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지 버리는 것이 아니지만, 그건 그런 게 아니지만, 그건 그런 게 아니라고 네가 설명한다면 나는 이해가 되고 안심이 되어 그 말을 놓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그럴 수 없는 사람.
내 입술은 여전히 아픈 것처럼 붉고, 이번 글쓰기에서도 끝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할 것을 안다. 영원히, 그 말을 하지 못하기에 글을 쓰리란 것을.
미래의 내 모든 이사에 끌고 다닐 무수한 가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