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신춘 유감

  • 단편소설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신춘 유감

그는 최근 이 년 동안 자신이 발표한 작품들 – 삼백 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 한 편, 단편소설 두 편, 인터넷사이트에 게재한 에세이 세 편 – 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평론가나 출판사 편집자 역시 그의 작품을 더 이상 반기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의 예술 세계엔 문맹의 작가만 덩그러니 남았다.

독자가 없는 글을 계속 쓰는 게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는 또다시 자문했다. 이런 고민은 등단하기 전부터 그를 괴롭혔고, 등단 직후 잠시 줄어드나 싶더니 일 년쯤 지난 뒤부터 다시 커졌다. 등단하지 못했으니 독자를 얻지 못한 건 당연하다고 자위했으나, 등단하고도 상황이 거의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작업실 밖에 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소수의 유명 작가가 책을 출간하면서 독자를 임시로 만든 뒤에 유효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반복되는 실패와 허탈감을 용케 견뎌낼, 또는 무시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작가 이외의 직업을 지녔다는 것이다. 순서로 따지자면 그에게 작가는 두 번째 직업이다. 첫 번째 직업은 두 번째 직업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명예를 가져다주진 않아도 실리를 챙기는 데엔 유용하다. 이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데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게 없었더라면 그는 작가가 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작가는 영원한 명예를 위해 기꺼이 가난과 무명과 멸시를 덤덤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업 덕분에 그럭저럭 생계를 해결하던 그가 마흔 살의 나이에 작가의 자격을 인정받았을 때, 자신은 글 쓰는 것 이외의 사명엔 관심이 없으므로 미래의 도서관을 채우는 데 여생을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자신마저 흡족할 단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즉시 작가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말까진 덧붙이지 말아야 했다. 한 권의 책으로 도서관을 채울 수 없고, 작가라는 정체성은 거부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그리고 자기 작품을 정식 출간한 자뿐만 아니라 글을 쓰려고 애쓰는 자까지 작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그는 등단 뒤에야 겨우 이해했다.

그의 발언은 물심양면으로 돕던 자들을 적이 실망하게 했을 수도 있다. 출판사 직원들은 새로 출간한 책이 독자를 피해 도서관에 숨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고, 도서관 직원들 역시 독자의 검증을 받지 않은 책이 무작정 찾아오는 걸 반기지 않을지 모른다. 독자의 눈과 혀에 적당히 닳은 책만이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있다. 다양한 상대와 스파링은 하지 않은 채 링 아래에서 체력 단련만 하는 권투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듯이, 독자를 피해 다니는 작가에게 전작을 뛰어넘는 신작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저조한 판매 실적 때문에 사장의 질책을 받은 편집장은, 작가가 무례하게 맡긴 원고를 매몰차게 돌려주지 못한 채 상품성이 없다는 직원들까지 일일이 설득해 가며 출간을 강행했던 걸 몹시 후회했을 것이다. 미래의 베스트셀러를 확보하기 위해 미리 투자하고 관리해야 할 작가의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면서, 물류 창고에 쌓인 재고를 처리할 묘수를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매년 국가가 구매해서 군대나 교도소로 보내는 책들 속에 끼워 넣을 수 없다면, 낡은 책을 화학 처리해서 곤충 사육용 사료로 만든다는 업자에게라도 헐값에 넘길 수도 있다.

그러니 독자가 새 책을 구매하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작가는 좀 더 사려 깊게 대응해야 했다. 가령, 자신의 책은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천천히 늙어가면서 이따금 수다한 말동무가 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이미 역사 속에서 잊힌 사건과 등장인물을 다룬 만큼, 마치 유물학자나 생물학자가 미증유의 대상에 열광하듯, 눈 밝은 사서가 유구한 도서관의 역사에 어울리는 구색으로 그의 책을 선택해 주길 희망해야 했다.

* 계간 <대산문화> 2025 봄호(통권 95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솔
소설가, 1973년생
장편소설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부다페스트 이야기』,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망상,어』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