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아버지 오규원 시인
- 나의 아버지 오규원 시인
오규원(1941~2007)
시인이자 교육자. 경남 밀양 출생.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시 쓰기 방식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험의식을 보여준 시인이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낼 당시 수많은 문인을 길러낸 교육자로도 유명하다. 1982년 현대문학상, 1989년 연암문학상, 1995년 이산문학상, 200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창작이론집 『현대시작법』,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등이 있다. |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을 뿐이다.
-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중에서
1990년 초여름,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처음으로 혼자 먼 길을 떠났다. 시외버스터미널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매캐한 연기와 짐 가방 바퀴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나는 배낭 속에서 아버지가 적어준 작은 쪽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종이 위의 익숙한 필체가 마치 부적처럼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아버지가 내게 건넨 작은 쪽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것은 나를 이끄는 길잡이이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주문과도 같았다. 쪽지에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세심한 정보가 담겨 있었고, 나는 그것을 따라가며 아버지의 배려를 되새겼다.
당시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 계셨고, 늘 메모를 남기곤 하셨다. 어릴 때는 그것이 단순히 작가들의 습관 중 하나라고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메모들이 단순한 안내를 넘어 나를 위한 지침이자 가르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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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몇 번 갈아탄 끝에 도착한 ‘상남’ 마을. 쪽지에 적힌 대로 빨간 우체통 옆 슈퍼로 갔다. 쪽지를 내밀자, 슈퍼 아저씨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아버지에게 안내해 주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여정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한 편의 이야기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가며 초록빛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가게도, 인가도 없는 외딴곳이었다. 그런데도 길은 포장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길 끝에서 아버지를 만날 거라는 확신이 서서히 차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전보다 더 마른 체구에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단출한 시골집보다는 미국 농장의 풍경 속에서 더 어울릴 법한 차림새였다. 요양 중이셨지만, 생각보다 활기찬 모습에 안도했다. 아버지의 모습과 시골 풍경이 어우러지지 않는 듯해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넸고,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셨다.
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방문에 놀란 듯 내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묵직한 자부심과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게 북두칠성이야.”
나는 그 손끝을 따라가며 별들을 바라보았다.
“옛날 사람들은 저 별을 따라 길을 찾았지. 너도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저 별을 기억해.”
별빛을 등진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한 그림자 속에 묻혔지만,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선명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지만, 그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시골의 밤은 도시보다 깊고 빠르게 내려앉았다. 어둠이 내려앉자, 우리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숨소리를 들었다. 나는 가만히 숨을 고르며, 아버지의 조용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폐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해서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의 발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내 귓가에 ‘Hello darkness, my old friend’라는 노랫말이 스며들었다. 그 노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내게 처음 소개해 준 는 멜로디와 가사가 아름다워 종종 따라 부르곤 했었다. 아버지 역시 이 곡을 좋아하셨고, 특히 가사를 “한 편의 시 같다”며 칭찬하시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 노래는 그냥 듣는 게 아니라, 가사로 들어가야 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날 밤 처음으로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날 밤, 방 안에 나타난 벌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를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벌레도 같이 사는 거야” 하셨겠지만, 그날은 묵묵히 벌레를 잡아 밖으로 내보내 주셨다. 괜히 아픈 아버지를 귀찮게 한 것 같아 죄송했지만, 덕분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벌레가 베개 옆을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책을 읽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삶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며 미소 지었다.
“가끔은 미끼 없이 낚시하기도 한단다.”
나는 웃으며 반문했다.
“미끼도 없이 물고기가 잡히나요?”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조용히 물결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꼭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만이 낚시의 목적은 아니야. 기다림 속에서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거야.”
그날 나는 처음으로 미끼 없는 낚싯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햇살과 찰랑이는 물소리는 내 마음을 아무런 잡념도 없는 고요한 상태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깨달음을 기념이라도 하듯 사진기에 담았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누구보다 평온해 보이셨다. 요양을 위해 내려가 계셨지만,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환자라기보다 오히려 삶을 깊이 이해한 현자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요양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붉은 딱새』 책을 발간하셨다. 병으로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정신은 더욱 맑고 순수해지고자 노력하고, 인간 내면의 깊이에 더욱 몰두하셨다.
붉은 딱새가 날아오르던 순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때마다
하늘은 새의 배경이 되었다 어떤 새는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날아올랐지만
거기서부터는 새가 없는
하늘이 시작되었다
— 오규원, 「물과 길 2」 중에서 (1995)
1990년대, 나는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아버지의 쪽지를 따라 낯선 세상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는 그때의 경험을 품은 채,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되고자 한다.
아버지의 시어는 별빛처럼 내 길을 밝혀주고, 등대처럼 나를 인도한다.
길을 잃을 때마다, 그분이 남긴 별자리가 나를 조용히 감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