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종조의 진열장 |
작은 골목에 작은 간판, 열 평쯤 되는 좁은 매장에 식탁이라곤 두 개뿐인, 그나마도 원형 탁자 하나에 손님들이 둘러앉도록 한 이상한 가게. 프랑스 와인이 대부분인 괴팍한 와인 리스트.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의 이름들과 어딘지 단호해 보이는 주인의 인상. 이것이 샤퀴테리 전문 식당인 ‘메종조’에 대한 첫 기억이다.
서초동의 주택가 뒷골목에 위치한 메종조는 7년쯤 전, 한참 요리에 열을 올리며 새로운 식재료들을 탐구하고 있을 때 발견한 곳이다. 진열장에는 닭의 간이나 가슴살로 만든 테린, 직접 훈연해 밀봉한 베이컨, 소시지 등이 종류별로 놓여 있었고, 그날그날 구운 빵들에 곁들일 샐러드, 고기를 끓여 만든 잼인 리예트, 버터나 머스타드, 올리브 등이 있었다. 근사하지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조림도 쌓여 있었다. 덩어리째 진열해 둔 햄은 주문 즉시 잘라 멋스러운 종이에 감싸 포장해 주었다. 처음 가본 이후 단번에 이 가게에 매혹되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들러 여러 종류의 샤퀴테리들을 포장하곤 했다. 답답한 일상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겹쳐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곤 했던 당시의 나에게, 메종조는 막연히 가지고 있던 서양 식재료와 향신료에 대한 동경, 여행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유럽의 어느 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소시지, 큰 덩어리 햄을 얇은 칼날의 기계로 쓱쓱 썰어 주는 상인, 작은 색색의 산 모양으로 쌓인 올리브와 커다란 바퀴 모양의 치즈들, 겉면이 바삭하게 갈라진 돔 형태의 빵 같은 것들이 주는 ‘먼 곳’의 느낌 말이다.
집에서 가깝지도 않고 시간을 잘못 맞추면 대기 줄도 제법 길게 늘어서는 이 아담한 가게를 쭉 좋아해 온 것은, 식재료를 넘어 시간을 사 온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오래된 저장 방식인 염장은 소금의 삼투압이라는 과학적 현상이지만 그것을 넘어 서두르지 않는 인내를, 숙성과 기대, 약속의 시그널을 준다. 개인적으로 음식의 조리법에 ‘차분하고 조용한, 다소 가라앉는 느낌’과 ‘활달하고 열정적인, 소위 텐션이 높은’ 방식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보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염장이나 훈제는 매우 고요하고 영적인 면이 있는, 그래서 기도에 가까워진 조리법이다. 메종조가 주력으로 삼는 샤퀴테리는 ‘셰르(Chair, 살코기)’와 ‘뀌(Cuit, 가공된)’이 합쳐진 단어로 고기와 고기 부속물로 만든 육가공품을 아우르는 프랑스어다. 우리나라로 치면 뒷고기 등을 모아 만든 음식이다. 주로 염장이나 훈연 방식을 사용하는 샤퀴테리는 시간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닭의 간이나 껍질, 돼지의 귀 같은 부속처럼 자칫 버려질 수도 있는 재료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 염장하고 숙성해 새로운 맛으로 탄생시키는 시도가 신선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먹는 스팸이나 편육, 피순대 같은 것들도 일종의 샤퀴테리다(이 역시 무척 좋아하는 것들이다).
한적한 곳에 있음에도 메종조의 테이블 자리는 거의 늘 만석이었고, 포장해 가려는 사람들도 많아 매장은 언제나 활기가 돌았다. 공간이 협소해 자리에 앉기보다는 포장한 음식들을 가지고 홈파티나 소풍을 가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메종조에 들르는 일은 파티나 소풍의 시작 같은 설렘을 주었다. 큰맘 먹고 이것저것 고른 식량들을 가방에 넣으면 그 든든한 기쁨에 벌써 정신적 포만감이 차올랐다. 오래전 탐닉했던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리니지’의 캐릭터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말린 고기’, ‘훈제 연어’, ‘양념한 저장육’, ‘잿불에 훈연한 떠돌이 상어 토막’ 같은 음식들은 모험을 떠나기 전 마을의 상점에 들러 배낭의 슬롯이 허락하는 만큼 채우곤 하던 것들이다. 여정을 책임질 식량을 배낭에 넣고 모험가가 되어 상점의 문을 나서는 기쁨이란.
날씨가 좋으면 얼음과 와인을 챙겨 한강으로 갔다. 적당한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딱딱하고 커다란 빵에 얇게 잘라낸 수재 햄인 ‘잠봉’을 얹어 크게 베어 물고,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다. 꼭 가게에 가서 자리를 잡지 않아도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으니, ‘이동식 식당’인 셈이었다.
![]() 샤퀴테리는 소풍에 화려함과 맛을 더해 주는 멋진 아이템이다. |
‘메종’은 프랑스어로 ‘집’을 의미한다. 가정을 뜻하는 집이 아닌,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가게 이름인 ‘이모 집’, ‘할머니 집’과 같은 식당으로서의 집이다. 그러니 메종조는 ‘조의 집’인 셈. 이름처럼 인상적인 것은 가게의 주인인 ‘조’님의 접객이다. 처음에 내가 단호하고 무뚝뚝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던 ‘조’는 오가며 지켜보니 말수가 적고 진지한 분이었다. 유별나거나 티 나게 손님에게 아는 척하거나 말을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대신 매우 섬세하고도 미묘한 눈짓으로 ‘아, 또 오셨네요’, ‘오늘도 만났네요’와 같은 반가움을 전달하곤 했다. 나는 그런 ‘조’님의 표현법이 반가웠다. 이런 종류의 의사소통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거의 사라지고만 은근함, 우아함과 연관되어 있고 가게의 분위기와도 어울렸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가게에 자주 함께 갔던 친구가 전해주기를, 계산하고 난 봉투에 ‘조’가 주문한 적 없는 까눌레 하나를 살짝 놓아주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호의였지만 그 역시 호들갑 떨지 않고 가게 문을 나서기 전 살짝 돌아보며 ‘이거 참, 고마워요’ 정도의 의미를 담은 눈짓을 보냈다는 것이다. ‘조’ 식의 은근한 의사 표시에 대해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그와 나는 “뭐야 뭐야, 정말이야?” “글쎄 그랬다니까. 웃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와 같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우아해지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
메종조의 음식들은 요리의 재료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간단한 샐러드와 데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완제품으로도 진열되어 있지만, 샤퀴테리나 소시지를 따로 사서 홈 파티 메뉴에 특별함을 더하는 재미도 있었다. 다소 심심했던 샐러드에 수제 베이컨인 ‘소시송’이나 속살의 그라데이션이 아름다운 우둔살 염장 햄 ‘브레지’를 툭툭 뜯어 얹으면 색감과 맛이 화려하게 살아난다. 염장한 돼지고기인 ‘판체타’는 파스타에 넣으면 풍미를 확연하게 끌어올려 주고, 파프리카 가루가 들어가 매운맛을 내는 소세지인 ‘초리조’는 감바스 알 아히요 같은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나 볶음밥에 부수어 넣으면 특유의 매콤함과 향신료 등이 요리를 알아서 완성해 준다. 이곳의 음식들을 하나씩 ‘도장 깨기’하며 마음에 든 것들을 따라 해 보기도 했는데, 그 중 구움 과자인 ‘까눌레’와 당근으로 만든 샐러드인 ‘당근 라페’는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애착 메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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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다 보니 채식이 권장되는 이 시대에 육고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그런데 아마도 샤퀴테리는 고기가 부족하던 시절, 부속으로 남은 부위를 어떻게든 오래 저장하고 보관하려던 궁리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버려지거나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부위들을 알뜰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메종조는 원래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악기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플루트 가게, 활 털과 송진을 파는 현악사를 지나 아담한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을 파는 ‘조의 집’의 간판이 보인다. 묵직한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갈 때마다 나는 다시 여행자가 되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