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첩
영원한 작가, 최인호 선생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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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영원한 작가, 최인호 선생님이 그립다

2010년 겨울,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집필 중인 최인호 선생

 

어느 날 최인호 선생님은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는 나를 사무실 방에서 못 나오게 한 후 반 진담, 반 농담조로 “날 보면서 배워라, 글은 손과 발이 쓰는 거야” 하면서 시를 써 오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실제로 난 시를 써서 보여 드렸는데 그 시가 17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의 표제작인 「무명시인」이다. 나는 어렴풋이 선생님의 말속에서 글은 행동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정작 시를 다시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암 투병 중임에도 작가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선생님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항암치료로 손톱이 빠져 고무 골무를 끼우고 수시로 찾아오는 메스꺼움을 이기기 위해 얼음을 입에 문 채 마지막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두 달 만에 완성했다. 항상 만년필로 글을 썼는데 마치 폭포나, 화염방사기가 글 줄기를 뿜어대는 것 같았다. 지금도 생업에 너무 몰입해 시와 멀어질 때면 나는 지면 상단의 사진 속 선생님 모습을 떠올려 보곤 한다. 암세포가 번져 나가도 흔들림 없이 난을 치듯 힘차게 소설을 쳐나갔던 그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투병 중임에도 거리와 관계없이 도착 지점까지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그는 원고지 위를 달렸다. 나는 그와 2005년 인연을 맺었고, 2010년에서 2013년 9월 13일 영면할 때까지 그의 집필실 바로 옆방에서 일했다.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아직도 만년필을 꼭 쥐고 계실 영원한 작가, 최인호 선생님이 그립다.

함명춘
시인, 1966년생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