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기쁘고, 가벼운 선택의 순간들

  • 결정적 순간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기쁘고, 가벼운 선택의 순간들

#1. 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6인실 병실 창 너머로 창경궁의 벚꽃이 한창이다. 몸도 가누기 힘든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내게 물었다. “저 하얀 게 벚꽃이니?” 지난겨울에 들어와 병실 밖을 못 나간 엄마가 본 봄이었다. 엄마는 벚꽃이 지고, 5월에 생을 마감하셨다. 지금도 벚꽃이 피면 늘 생각해 본다. ‘이 꽃이 나에게 몇 번 남아 있는 꽃 잔치일까?’ 이후 나는 매년 피는 벚꽃을 잊지 말고, 꼭 찾아가서 그 꽃 아래 서 보자고 다짐했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나는 벚나무길이 이어진 속초 설악산 밑 도문동에 자리를 잡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일부러 정한 것은 아니어도 마음에 새긴 벚나무가 나를 불렀던가, 아니면 내 핑계로 한 번쯤 찾아와 보려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2. 서강대교

출근길, 유난히 강변북로가 밀린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니 앞 차 후진 등에 고정된 눈이 두통을 일으킨다. 여의도 진입을 위해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서강대교가 보인다. 여의도 상공 위로 뿌연 스모그가 내려앉아 있다. 만성 코막힘으로 숨쉬기도 힘겨운데 저 안으로 내가 들어가는구나, 숨이 막혀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1년 만에 다시 친정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두 분의 나이 고작 쉰셋, 쉰여섯이셨다. 이후 10년간은 누가 툭 치기라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나날이었다. 늘 머릿속에 질문이 맴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한때는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 있던 방송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간절하게 하기 싫을 수가 있을까?’ 그날 서강대교를 진입하며, 오늘 날짜로 써내야 하는 방송 원고들이 목을 조르는 듯 숨이 가빠왔다. 그때 내내 덮어두었던 질문에 답을 내렸다. ‘그래 그만하자. 나를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일을 찾아보자.’

 

#3. 인게이트스톤 숲길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차량의 속도를 줄였는데도 10미터 앞이 안 보인다. 차 안에는 두 딸이 타고 있어 운전이 더욱 조심스럽다. 내가 사는 인게이트스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내인 챔스포드로 가기 위해선 아주 오래된 숲길을 지나야 한다. 이 숲길은 늘 안개가 끼기 마련이지만 그간 보던 안개보다 더 심했다.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을 내가 이렇게 좋아했던가, 신기한 깨달음으로 시작된 영국 유학길이었다. 만 가지 이유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낯선 경험이 가져올 새로움과 열정이라는 그 애매한 이유로 내린 결정이었다. 영국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할 리가 없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매일 전쟁을 치렀다. 단순한 은행 일도 거대한 태산을 오르는 일처럼 어려웠고, 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제도가 다른 영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청소년기에 접어든 두 딸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 앞길을 막았던 그때, 난 차에 동승한 두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인생이 꼭 이 안개길 같구나.” 그런데 그 말끝에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그냥 딱 10미터만 보고 살아도 되지 않나?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앞날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냥 보이는 만큼만 열심히 살아보자.’

 

#4. 속초 도문동

지인이 선물해 준 50년을 넘게 산, 3톤이 넘는 모과나무를 옮겨 심는 중이다. 대형 크레인이 들어오고, 일이 커졌다. 2013년 속초 도문동 작은 마을에 들어와 꼬박 10년을 살았다. 처음 수리를 하고 들어왔지만 10년을 살다 보니, 다시 손을 볼 곳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집수리가 다 끝나고, 임시 거처인 아파트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생겼다. 집의 수리는 10년 전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같은 사장님이 맡아주셨다. 마지막 잔금을 건네고 바로 다음 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께서 운동하던 중 심정지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남편과 나는 묵묵히 아침 식사를 하다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집을 당분간 임대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자고. 겨울에도 따뜻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남향집,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고 정원이 예쁜 우리 집. 아무런 불만도 없는 집이지만 이곳에서도 잠시 벗어나 자유롭게 정원을 찾아 떠돌아 보자고 했다.

 

뉴질랜드 마운트쿡 전경

#6. 뉴질랜드 남섬

2024년 12월. 여름인 뉴질랜드 마운트 쿡의 정상에 흰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가지 않고 머문다. 남반구의 햇살은 그 강도가 확실히 다르다. 그 수정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초원을 걸었다. 풀들이 바지를 스치고, 바람이 내 얼굴에 부대꼈다. 자연 자체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벅찰 수 있나. 삶의 기쁨이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이 맑고 깨끗한 공기, 수정 같은 밝은 햇살, 출렁이는 초원의 풀들, 그 안에 내가 한순간이나마 놓여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기억은 마치 스냅 사진처럼 장면으로 떠오른다. 그게 벅찬 감동의 순간이기도 하고, 가슴 아린 슬픔, 때론 공포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삶이 끝나는 순간에는 아름답고, 가슴 벅찬 순간만을 그려보고 싶다. 나는 매번 선택 길에서 이런 방법론을 선택한다. 되도록 마음이 기쁘고, 가벼운 선택을 하자. 요즘 불어오는 정원의 열풍 소식에 많은 분들이 나에게 얼마나 바쁘고, 잘 나가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일로서는 정원을 좀 멀리하는 중이다. 정원을 디자인하고, 시공하고. 아직은 즐거움도 많지만, 돈과 명예는 늘 그만큼 무거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이 욕심마저도 좀 덜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일을 많이 하지 않고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잉여를 두지 않는 것뿐이다. 두 딸의 큰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그 흔한 실손 보험 하나 없이 살아간다. 버는 만큼 적당히 쓰고, 적자만 내지는 말자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런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위태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 삶이 허락하는 한 두 딸에게 해주는 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좀 더 자유롭고, 가볍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작가,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 대표, 1976년생
저서 『정원의 기억』 『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시골의 발견』 『정원생활자』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