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작
입춘 욕심

-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 나의 데뷔작
  • 2025년 봄호 (통권 95호)
입춘 욕심

-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

친구들과 새해 운세를 보러 갔다. 좋은 얘기를 듣지 못해서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중 제일 신경 쓰이는 말은 “욕심이 없어서 점사가 안 나온다”라는 거였다. 같이 점을 보러 간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하니, 자신에게는 1등이 되려는 욕심이 있다며 1등 작가가 되고 싶다면 굿을 하라고 했단다. 어쩐지 복채가 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과금을 유도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욕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사실이다. 나에게 있는 욕망은 뭘까? 나는 커피를 내리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심!”, 변기에 앉아서 “쾌변하고 싶은 욕심!”, 욕심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보곤 했다.

*

대학을 졸업하고 반년 정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대학원에 지원했다. 역시나 별 욕심은 없었다. 몇 년간 학생이라는 신분을 빙자하여 좀 더 편하게 놀자는 마음이 욕심이라면 욕심이랄까. 대학원생에게는 교내에서 학비를 벌 수 있는 시스템이 여럿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사무실에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필자의 데뷔작이 수록된 소설집

새 학기의 설렘도 잠시, 생각보다 일은 고됐다. 주 6일 출근에 야근을 밥 먹듯이 했으며 중간에 수업도 가야 했다. 편하게 놀고 싶은 마음에 들어온 대학원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수업 시간에는 졸고, 사무실에서는 야근하며 지냈다.

이를 지켜보던 소설 창작 교수님이 자신의 방을 관리하는 조교가 졸업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들어오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 자리는 학비가 반액이라 싫어요.”

교수님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포기한 듯 말했다.

“야근 안 시킬게. 출근 시간도 안 체크할게. 와서 책 읽고 소설 써.”

교수님의 방에서 나는 소설을 쓰진 않았지만, 책은 실컷 꺼내 읽었다. 학비도 반이나 덜고, 야근도 안 하고, 업무는 독서라니, 정말 꿀 같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달콤함도 잠시, 교수님은 다음 학기에 다른 학교로 떠났다. 방학 전 마지막 출근 날, 교수님은 내게 고기를 사주며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이야기했다. 충격에 휩싸인 나는 대답했다.

“네? 제 다음 학기 학비는 어쩌고요?”

…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했는데, 이제 교수님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

학교를 휴학했다. 자취방을 빼고 본가로 이사했다.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아무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안양천을 따라 걷거나 영화를 봤다. 단골 카페가 생겼다. 2층에 있던 그 카페엔 늘 손님이 나뿐이었다. 사장이 구워준 쿠키를 먹으며, 부팅이 5분 넘게 걸리는 노트북에 아무 이야기나 끄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눠달라면 선뜻 내어줄 정도로 시간이 많았다. 아주 느리거나 거의 멈춰있다시피 한 시간 속에서는 내가 지나온 시절로 거슬러 가는 것이 수월했다. 나는 나의 수많은 시절을 시간의 속력에 휩쓸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썼다.

지금 와 그 작품을 보면 호흡이 가쁘고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하겠다. 하지만 많이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그 시절 나의 진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잘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12월 어느 저녁, 당선 소식을 듣던 순간, 북받치다 못해 쏟아지는 마음, 그러니까 아마…, 욕심 같은 것.

이 글을 마칠 즈음이 되니 나는 나의 점사를 어렴풋이 이해할 것만 같다.

*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욕심을 내자, 로 정했다. 그러나 1등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은 아무래도 내가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인 듯하다. 그냥, 등단작을 쓸 때 만큼의 욕심을 가지고 싶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아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일을 하나 그만둘까 싶은데…, 일 욕심도 욕심인가, 싶어서 아직 갈팡질팡하는 입춘, “오늘은 펄펄 내리는 눈 구경이나 하자!”는 욕심에 이름을 붙여본다.

송지현
소설가, 1987년생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산문집 『동해 생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