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이승우 선생과의 만남
- 소설가 이승우 선생과의 만남
이승우 소설가, 1959년생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산문집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등 |
이승우 선생님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 싶었다. 스물다섯, 소설창작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스물아홉, 단편소설로 등단했을 때. 서른하나, 첫 소설집을 냈을 때. 항상 꿈꿨다. 소설가가 되어 선생님과 무엇이든 함께 해보는 순간을. 그토록 원했던 만남이 막상 이루어지자 난처한 마음이 들었다. 독자로서 선생님의 소설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 소설을 배웠을 그 시절처럼 소설 쓰기와 문학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깊게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글 속에 녹아있는 사유와 인식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 각각이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지면의 성격과 인터뷰 취지가 있었지만 내게는 시간도 지면도 너무 짧기만 했다. 처음엔 추리고 추려 대화하려 했으나 그냥 모든 말문을 활짝 열었다. 인터뷰어로 작가를 만나려 했지만 어느새 나는 15년 전 어느 날 선생님 연구실에 앉아 있는 철없는 학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그가 계속 쓰는 작가라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작가여서가 아니다. 훌륭한 작품을 창작한 작가여서도 아니다. 그가 매 순간 작가였고, 작가라는 것. 그는 ‘절대로 절필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했고 자신의 글쓰기를 ‘소설에 복무한다’ 라고까지 표현했다. 다짐했다고 그렇게 되지 않고 군인조차 때로는 전장을 피해 고향으로 산과 바다로 도망가고 싶을 텐데 이렇게 계속 작가인 것이 대단하다. 그래서 고맙고 그가 내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독자들은(가끔은 나 자신도) 작가들이 계속 소설을 써내는 것을 놀라워하며 어떻게 그런 새로운 생각을 계속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소위 ‘영감’이라고 표현되는 작가적 재능이 마르지 않는 것을 놀라워한다. 그는 『고요한 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의 잠 속으로 그냥 이유없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분투하는 창작자의 꿈속으로 필연적인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다. 들어와서 그 수고로부터 무언가를 끌어올린다. 불러일으킨다.’
Q 작년 하반기 가장 충만했던 독서 경험은 단연 산문집 『고요한 읽기』였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았을 텐데요. 이렇게 꾸준하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무작정 열심히 쓰는 걸까요.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끌고 온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식으로 소위 영감이 계속 찾아오는 건가요?
A 보르헤스의 소설을 주해하면서 영감에 관해 생각했었습니다. 창작자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엔 불의 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테면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죠.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끌고 온다는 건, 우선 첫 번째 문장이 자동으로 나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머릿속으로 쌓고 설계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죠. 인간의 수고 뒤에 얹어지는 영감 같은 것입니다. 영감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불러일으켜지는 것이니까요. 영감은, 신의 손길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수고하고 애쓰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말이 정말이라면 수고하고 애쓰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한 영감은 계속 선물로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계속 쓸 수 있는 것일까? 손으로 셀 수 없는 많은 작품들과 그가 어떻게 매 순간 쓸 수 있는지, 쓰고 있는지, 그것이 왜 가능한지 알 것 같았다.
Q 선생님. 솔직히 말해주세요. ‘슬럼프’ 혹은 ‘작가의 벽’ 없으셨죠?
A (머뭇거리면서) 나는 일단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느끼기에 좀 둔한 것 같아요. 내 생각은 이래요. 슬럼프가 있으려면 이전에 엄청난 성취가 있어야 합니다. 책이 엄청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되던지. 그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지. 그렇다면 그 이후에 어려움이 있겠죠. 스스로 의문이 들겁니다. 내 글이 그 정도로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일까? 그건 내가 만든 것일까? 앞으로 또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압박감을 느낄 것 같아요. 나는 그랬던 적이 없어요. 물론 내 깜냥에 비해 많은 인정과 넘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중앙무대에 서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내가 어떤 책방에 갔는데 서점 주인이 이승우라는 작가를 처음 들어봤다는 겁니다. 나는 그런 작가입니다(웃음).
![]() 이승우 소설가(오른쪽)와 정용준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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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상에. 그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A 아무튼 나는 엄청난 작품을 아직 안 썼어요. 그걸 미리 쓰신 분들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나는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이 없으니까. 전작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무겁지 않아서 슬럼프도 없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만회하려는 마음으로 쓰는 겁니다. 이번에 아쉬웠기 때문에 다음에는 좋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죠. 『고요한 읽기』에도 썼지만 그것이 대기만성의 조건인 것 같아요. 만회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
Q『캉탕』은 세상의 끝에 모여든 세 사람이자 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을 설명할 때 삼위일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듯 세 인물 모두 하나의 화자에 관해 입체적으로 복합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끝은,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나의 내부이고 사람의 등이라는 사유가 참 좋습니다. 이 소설에 관해 작가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A 어딘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캉탕』은 장년이 돼서 쓴 『생의 이면』이다.’ 『생의 이면』은 청춘 시절의 직접적인 마음으로 쓴 작품입니다. 삶의 인물이 지나치게 굵은 펜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래서 어떤 부분은 자극적이고 감정이 잘 여과되지 않은 것이 있었거든요. 『캉탕』은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잘 써진 작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완성할 때 작가로서 참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처음 쓸 때 기분과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기분이 같았거든요. 굴곡이 없이 마지막까지 써졌다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고요한 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쓸 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출간 이후에도 돌이켜볼 때 미진한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홍보하고 영업했는데(웃음).
Q ‘만족스러웠고 기분이 좋았다’ 작가로서 정말 부러운 감각이네요. 그 작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원래는 단편 한 편을 늘려서 경장편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액상프로방스에 가서 머무는 동안 갑자기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마르세이유 바다에 갔는데 안내해 준 선생이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땅끝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세상엔 여러 땅끝이 있잖아요. 한국에도 해남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어요. 그곳에서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를 못하는 내가 대화를 많이 했어요. 말로는 소통이 잘 안됐지만 좋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곳의 내가 달라졌습니다. 내 생활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도 컸죠. 사회와 역사적 관계에서 벗어난 기분을 느꼈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과 성찰을 하게 됐거든요. 세 명이 사실은 한 사람일 수 있는, 세 면을 갖고 있는 한 존재에 대해 생각했죠. 나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쩌면 신과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인물을 생각했습니다. 한 명은 문학으로, 한 명은 종교로, 한 명은 출세를 위해 도망가지만 그곳에서조차 나와 신을 피할 수는 없거든요.
Q 오래전 제가 스물여섯의 습작생이었을 때, 글을 쓰는 것이 어쩐지 신 앞에서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소설은 인간의 것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제 발목을 묶고 있던 끈을 끊어낸 것처럼 자유롭고 용감하게 글을 쓸 수 있었는데요, 그때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해주셨는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습니다.
A 성경을 잘 들여다볼까요. 그건 하나님 말씀이고 거룩한 책이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별것이 다 들어 있어요. 살육, 간음, 음모 등등. 어떤 건 굉장히 힘들죠, 추악하고. 어떤 에피소드 어떤 장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들어가 있으면서 드러내는 근본적인 생각과 사상이 중요한 거죠. 소설도 그런 것 같아요. 목사가 나오고 수녀가 나와야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상과 표면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죠. 글쓰기를 유혹과 함정처럼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나는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안에 있는 천사와 악마를 잘 드러내야 합니다. 인간을 잘 드러냈을 때 신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을 직접적으로 말하려는 순간 신에 대해 결코 말할 수 없거든요. 인간이 빠져버리니까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를 상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존재에 대해 표현하다 보면 그것 역시 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위해, 내 글을 위해 기도합니다. 문장을 달라고.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통해서 잘 표현하고 싶어요. 인간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여기에 관여하고 있는 신의 숨결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낼 때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Q 개인적으로 저는 창세기를 소설가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며 성경에서 말해주지 않는 사이사이 인간의 입장과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랑이 한 일』 소설집을 굉장히 좋아하고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맹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 아닌 ‘행간’과 ‘사이’에 관한 골똘한 생각과 회의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두려움도 있었는데요. 작가의 말에서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과 신학, 그리고 문학 사이에서 평생 고민하고 글을 쓰셨던 선생님의 생각을 더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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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 책은 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의 방식으로 풀어쓴 것입니다. 소설의 방식이 곧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거나 윤리적,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면 여러 반응이 있을 수 있죠. 무시하거나 반박하는 논리를 만들거나. 나는 신의 영역은 무한과 영원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한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은 인간이죠. 때문에 신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에 담길 때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질적으로 전혀 달라져요.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 무한이 유한 쪽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은 절대로 그대로 들어올 수 없어요.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됐죠. 그래서 유한합니다. 때문에 훼손되는 방식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고요한 읽기』에도 썼지만 텍스트는 독자의 그릇만큼 담기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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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겠네요. 성경에서 오류가 없다, 완전하다는 뜻은 그 안에 담긴 신의 뜻과 의지이지, 그것을 표현한 인간의 언어는 도리어 당연히 오류가 있고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A 인간의 언어로 표현됐으니까요. 성경의 저자들은 그 시대의 환경, 자기 나름의 문체, 특성, 지성의 한계로 썼습니다. 필자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썼죠. 나는 그 여백에 침투하려고 했어요. 비어있는 부분, 훼손된 부분, 나는 그곳이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싸우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백은 공백이 아니고 싸움터입니다. 내 글쓰기는 거기를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글쓰기나 책읽기는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잘 된 번역은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말한 사람이 왜 그 말을 했는지를 생각하는 거죠. 반박하는 마음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요. 그래서 『사랑이 한 일』을 쓰게 됐어요.
Q 선생님, 이번에 은퇴하셨죠. 제가 만난 선생님은 교수가 되지 않으려는 교수였고 소설가이면서 소설가가 되려 하는 소설가였습니다. 그 모습이 글을 쓰는 제게 최고의 교육이었고 배움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소설을 가르치는 선생의 삶은 무엇이었습니까?
A 내 정체성은 작가라는 자의식이 강해요. 교수로 꽤 오래 살았지만 교수의 면모보다는 소설가의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교수의 삶에서는 은퇴하지만 소설가는 은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무대를 내려가는 느낌은 아니고 무대를 옮겨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나는 그동안 작가로 살면서 교수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준비도 없었고 언젠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예감도 없었죠. 그래서 초기에는 힘들었어요.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고요.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죠. 이름도 연구실이잖아요. 이상하죠. 나는 연구를 안 하는 사람인데(웃음). 그런데 학생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어요.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빨리 방학이 시작되기를 바라는데 방학이 끝나갈 무렵엔 문득 학생들이 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때 느꼈죠, 내가 선생이 되었구나.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강의를 잘하거나 교수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나를 교수로 요청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내가 그런대로 괜찮은 작가였기 때문이었겠죠. 그래서 내가 교수의 삶을 잘 수행하는 것은 무엇보다 작가로서 어떤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소설창작 교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을 계속 쓰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학생에게 있어 가장 좋은 강의라는 생각을 했었죠. 은퇴하고 홀가분한 것이 있다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추천하고 조언하고 권유하는 것, 관여하고 간섭하는 것, 천성적으로 그런 것을 잘 못하고 싫어하는데 교수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것이 많거든요.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 해방되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서도 불안함도 있죠. 겁도 나고. 적당히 배분된 이 적절한 긴장이 사라지면 통째로 글을 써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해본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천천히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안에 있는 것을 많이 꺼내 보여주셨다.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이 훌쩍 흘렀는데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더 듣고 싶은 것은 시작도 안 한 것 같아 아쉬웠다. 제자로서, 후배 소설가로서, 신에 관한 고민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더 듣고 더 묻고 싶었다. 그가 아니면 말해줄 수 없는 말이 있다. 그가 아니면 절대로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 있다. 하면 할수록 허기가 느껴지는 대화는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충만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계속 쓸 것이고 나는 계속 읽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가 그렇게 했듯 계속 쓰며 문학 곁에 있을 것이다. 소설에 복무하듯, 나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