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에 겐자부로 장편소설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
- 오에 겐자부로 장편소설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
![]() |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2023)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전후 일본 사회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현실과 신화를 결합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오에는 일본 시코쿠[四国] 지방의 에히메현[愛媛県] 오세무라[大瀬村]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고교 1학년까지 그곳에서 성장했다. 이곳의 자연환경은 오에 문학의 토양이 되었다. 9세라는 어린 나이에 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는데, 오에의 죽음에 관한 테마는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던 소년기에 마주한 할머니와 아버지의 연이은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의 불문과에 진학한 그는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사르트르만 읽었다고 말할 정도로 사르트르의 사상에 심취하면서 인간 실존과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58년, 23세 나이에 발표한 단편 『사육(飼育)』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썼으나, 1963년 뇌 헤르니아를 가진 아들 히카리(光)가 태어나면서 문학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되고, 이후 장애아들과의 공생의 삶을 작품에 그리기 시작했다.
오에의 소설에는 그가 나고 자란 시코쿠의 산골짜기 마을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고향 마을의 광대한 자연을 본격적으로 총체화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도달점이 1986년에 출간한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오에의 근원적이고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우주로서의 신비의 숲속 이야기로,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다.
M/T라는 수수께끼 같은 기호로 시작되는 이소설은 중앙의 국가 권력이 닿지 않는 깊은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의 독자적인 신화와 전승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형식이다. M과 T는 각각 메이트리아크(matriarch)와 트릭스터(trickster)를 의미하며, 파괴자에서 메이스케, 메이스케의 환생동자로 이어지는 T 계보의 인물들은 마을의 신화와 전승 속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마을을 구한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옛날 일이라면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하고 들어야 한다. 알겠니?”
“응!”
이것은 어린 주인공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외치는 정해진 문구로, 신비의 세계가 열리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이 창화(唱和)를 통해 열린, 이야기 속 숲의 공간은 죽음과 재생의 공간임과 동시에 마을의 신화와 전승을 듣는 주인공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그곳은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살다 소멸하는, 존재의 순환이 실현되는 근원이며, 그렇기에 ‘숲의 신비’에 대한 그리움은 인류의 기억 저편, 태초의 생명이 태동하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자 시원(始原)의 상태에 대한 무의식적 그리움이다. 그것은 개체로서의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우주적 리듬 속으로 귀속되려는 존재론적 몸짓이며, 이 숲은 그러므로 단순한 자연이 아닌, 우주 그 자체이다.
주인공 ‘나’가 할머니에게 마을의 신화와 전승을 들으면서 신화 속 인물들에게 그리움을 느끼고, 멕시코 인디언 부족의 민담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골짜기 마을의 신화와 역사에 대한 그리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듯 숲으로의 강력한 이끌림 그리움은 고향을 떠난 주인공 ‘나’가 마을의 신화와 전승을 쓰는 원동력이자, ‘나’와 오버랩되는 작가 오에의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이 그리움은 ‘나’에게서 아들 ‘히카리’에게로 이어지고 히카리의 그리움이 표현된 ‘파괴자’를 뜻하는 라는 음악은 ‘숲의 신비’와 공명하며 미래로 확장되어 나간다.
2025년 3월 3일은 오에 겐자부로 타계 2주기였다.
※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93번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