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연애의 기록

-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

  • 창작후기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연애의 기록

-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

 

소설이나 시가 저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것과 달리 사랑의 대상을 품고서만 출현할 수 있는 비평은 끝의 허무함을 운명처럼 지닌다. 그렇다면 거의 매번의 계절마다 반복되는 이 헤어짐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비평가는 그저 무수한 이별과 부딪치며 허공을 헤매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이 연애의 기록들이 한곳에 모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흔히 작가가 그간 썼던 글들을 일부 모으면 그저 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마치 이런 것이다. 그간 내가 사랑하고 헤어졌던 이들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사랑론을 구성하는 것은 물론 맞지만, 그것을 한데 모아 반추하면 개별 사건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나는 것처럼, 비평집이라는 것은 단지 여러 비평의 산술적 모음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비평집은 업계의 맥락상 자주 출간되지 않는 편이므로 아쉽게도 연애사를 돌아볼 기회를 얻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2023년도 대산문학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어 비평집 출간 계약을 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4년간의 연애사를 모으고 그 궤적을 찬찬히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마감을 마치고 나면 몰려오는 공허함은 놀랍게도 매번 새롭다. 매해 지날 때마다 이제는 좀 더 적응하겠지 하고 기대도 해보지만, 글이 끝나고 닥쳐올 것의 이름을 단지 머리로 아는 것과, 그 이름을 실제 몸으로 겪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이나 성취감보다 그것이 내 손을 떠나 저 멀리 어딘가로 훠이훠이 가버렸다는 데에서 오는 헛헛함은 글마다 쏟은 마음의 내용과 애정의 크기가 모두 달라서 생겨나는 반작용이라는 걸 물론 모르지 않는다. 이미 아는 것들이라고 여러 번 되뇌어봐도 왜 마음 가장자리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는 걸까.

어쩌면 내가 비평을 쓰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비평은 작품을 ‘만지는’ 장르고, 작품이 가진 다채로운 얼굴을 모두 ‘내 것’처럼 경험한다. 작품이 내보이는 세계를 우선 그것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종국에는 그에 대한 비평의 관점으로 응답한다. 말하자면 비평과 비평가는 한 편의 작품과 글이 시작되고 끝나는 동안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한 번의 연애─그러나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이미 아는 채로─를 하는 셈이다. 그러니 그 모든 엎치락뒤치락과 사랑의 행위가 종료되고 닥쳐오는 허무함은 남김없이 쏟은 사랑의 에너지와 정비례할 테다. 요컨대 한 편의 비평이 태어나려면 적어도 한 번의 열렬한 사랑과 그에 따른 이별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것과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다. 사랑은 발발한 시간순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고 모종의 유기적인 흐름 안에서 제 나름의 서사를 형성하고 있었다. 목차를 짜고 글을 배치하는 작업은 이것을 발견하는 과정이었고, 본문을 마무리하고 책의 서문을 작성할 때는 지나온 그 사랑들에 대해 현재의 내가 어떤 심정으로 새로운 사랑에 임하고 있는지를, 말하자면 비평에 관한 나의 문학론을 발견하는 과정을 새롭게 경험했다.

그리하여 지난 초여름에 첫 번째 비평집 『퀴어 (포)에티카』를 출간했고 그간의 글쓰기와 사랑한 시간을 마음껏 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깨달음에 의하면, 한 권의 비평집을 펴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부터 또 한 번 허물어야 할 하나의 세계가 태어났다는 의미였다. 개별적인 글들이 사랑과 이별을 운명처럼 배태하는 것처럼, 그것들이 모인 한 권의 책과도 나는 또 한번 새로운 이별을 해내야만 했다. 개별 발표작들의 모음인 이 책이 매번의 사랑이 끝난 후에 찾아오던 공허를 달래주리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정작 더 큰 이별을 해야만 한다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쩌랴, 이것이 바로 계속 읽고 쓰는 일이며 사랑하는 일이라는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더 큰 이별을 하기 위해 여태 무수한 작은 이별들을 해왔다고 생각하면 다가올 시간이 더욱 아연하지만, 지난 연애의 기록들이 결국은 삶과 문학을 지속하게 해줄 힘이 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나는 오늘도 기꺼이 사랑하고 또 헤어지고자 한다.


※ 필자의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4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전승민
평론가
평론집 『퀴어 (포)에티카』, 에세이집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