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먹고 잘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발길 닿는 대로 프랑스 파리를 구경하며 산책하던 12년 전 가을, 이 서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에는 편집자 일에 마음이 지쳐 있을 때라 절대 책과 관련된 장소는 찾지 않겠다고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유명 서점을 눈앞에 두니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창한 바깥과 달리 어둑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쌓인 책과 북적이는 사람들, 오래 묵은 종이와 나무 냄새, 약간의 웅성거림 사이를 지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영화 <아멜리에> OST 중 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내가 무수히 들어왔고 사랑하던 곡이었다.
파리의 서점에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니! 다소 유치한 감상이지만, 나에게는 마법 같은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날, 작은 피아노 앞에 앉아 투박하게 연주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꽉 뭉쳐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앞날에 대한 막막함과 짜증스러운 권태로 답답했던 나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견고했던 답답함에 금이 가고 톱니바퀴가 조금씩 움직이며 나의 시곗바늘이 다시 미래를 향해 돌기 시작한 시점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대해 찾아보다가 지금은 절판된 에세이 『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을 읽게 됐다. 이 책을 통해 서점의 1대 운영자인 실비아 비치의 활약을 알게 됐는데,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적극 출간하는 등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후원하기도 한 멋진 여성이었다.
![]()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
서점에 대해 알게 될수록 ‘텀블위드(Tumbleweed)’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생겼다. 서점이 제시하는 몇 가지 일을 수행하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무료로 숙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작가들을 대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1)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편집자로 일하며 책을 만들어왔고, 파리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몇 년 후쯤에는 작은 서점을 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상태이니 그 이야기를 적어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던 때라 퇴사 후 받게 될 얼마간의 퇴직금을 여기에 투자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에 처음 계획해 보는 낭만적 시간에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나는 파리에 가지 않았고, 퇴직금은 결국 ‘고요서사’를 만드는 데 쓰였다. 낯선 곳에 머물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쪽보다는 서점을 열고 직접 운영해 보는 일이 좀 더 현실적이고 안전한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이건 내가 서점 개점을 ‘창업’이라는 중대한 문제로 여기지 않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어쨌든, 마법같이 느껴졌던 그날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톱니바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계속 돌아갔고, ‘고요서사’는 몇 달 후면 10주년을 맞이한다.
생각해 본다. 9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고요서사’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처럼 누군가에게 마법을 부린 적이 있을까?
1) 에세이를 읽던 당시에는 작가 대상 프로그램이었지만 현재는 작가가 아닌 사람도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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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아직 『율리시스』 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는 데 일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토크, 낭독회, 읽고 쓰기 워크숍 등 대략 180여 개의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기념할 만한 시간을 만들어왔다. 정영수 작가는 근무하는 출판사의 사인회를 진행하기 위해 처음 우리 서점에 왔었고, 이때 서점이 있는 동네인 해방촌에서 받은 느낌을 단편 「우리들」에 연결해 썼다고 했다. 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도 해방촌을 배경으로 하는데, 할머니의 방이 있는 복희식당은 사실 ‘고요서사’의 구조를 보고 작가가 떠올린 설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2)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섭게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 봄, 대형서점과 연계된 작은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며칠 후 자정이 가까울 무렵 대형서점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독서 모임에 다녀간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로는 혼란의 시간이었다. 소수 모임이었지만 참석자 중 고등학교 교사와 의사가 있었고 모임을 진행해 준 소설가는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혹시나 누구 하나라도 확진이 된다면 정말 큰일인 상황이었다. 참석자들 모두 빠르게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자가 격리를 마치기까지 안심할 수 없어 온갖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끔찍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2) 복희(연희) 할머니의 방으로 상상된 공간은 지금 ‘숨어 읽기 좋은 방’이라는 이름의 독서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여담으로, ‘고요서사’가 생기기 전 이 자리는 한때 인문학 공동체에서 사용했었는데, 인문학자 고병권은 이 방에서 책 집필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사건이 아찔한 에피소드 정도로 기억 너머 흐릿해지던 중 이 모임을 진행해 줬던 소설가의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축하의 마음으로 수상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소설은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있던 여성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매우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 뒤로는 작가와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라 우리 서점에서의 경험이 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도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이 작품을 읽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공유했던 아찔한 나날을 비로소 웃으며 떠올릴 수 있었다.
얼마 전 한 대학의 요청으로 특강을 했다. 문학과 콘텐츠의 연결을 탐구하는 강의에서 나는 ‘문학 매개자의 역할과 이해’를 주제로 삼았다. ‘문학 매개자’라는 이름은 어떤 학술적 근거 없이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문학 매개자’란 큰 범주에서는 문학 독자에 속하기도 하지만, 문학 작품(책)과 일반 열성 독자를 연결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정의를 내려봤다. 대형서점 MD를 포함한 나와 같은 서점인,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문학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소셜미디어에서 문학 도서를 소개하는 인플루언서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년여의 세월 동안 ‘고요서사’는 문학 작품과 독자를 연결하는 ‘매개자’의 일을 해왔다. 그런데 늘 독자를 향해왔다고 생각한 지난날을 떠올리니 창작자와 연결된 순간들이 덩달아 생각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러 작가가 입을 모아 말하듯, 작가는 곧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읽은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또 하나의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는데 한두 해 전 워크숍에 몇 번 참석해 얼굴을 익혔던 손님이었다. 그가 2024년부터 평론을 발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앞서 적은 사례들은 우리가 알 만한 작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일부 떠올린 것이다. '고요서사'는 국어교사인 한 손님에게는 '나의 문학 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하고, 오랫동안 습작으로 소설을 써온 손님에게는 언젠가 자신의 책으로 북토크를 하고 싶은 공간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 작가가 자신도 작은 서점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이것저것 조심스레 물어오던 몇 년 전 여름날도 떠오른다. 밝히지 못하는, 혹은 나도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피어났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우리 서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작은 서점들이 독자를 한자리에 불러 모을 때, 그 안에는 당연히 작가(혹은 매개자)도 함께하게 된다. 함께 모여 문학을 읽고 말하면서 문학의 토양은 더 비옥해지며 그 토대는 더 단단해진다. 문학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들이 모이면 더 많은 문학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점을 운영하며 그리고 이 글을 쓰며 깨닫고 있다. 더 이상 『율리시스』의 신화가 부럽지 않다. 작은 서점은 파리에 있지 않아도 마법을 부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