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진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끝나면 세상이 끝나는 거니까.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속을 휘젓는 세찬 타격을 느끼며 생각했다. 강철 플래티넘 보디를 갖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강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냥 비참하게 죽지 않기만을 감히 꿈꾸었다.
잠시 후, 쓸데없는 생각조차 점점 흐려졌다. 아프다거나 굴욕적이라거나 얼른 끝났으면 좋겠단 생각, 이후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도 떠올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단 생각마저 희미해졌다. 정말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곧 끝날 거였다.
“새끼야, 오늘 죽어 봐.”
폭설이 내리고 있었고 사방이 조용했다. 커다란 눈 결정체가 눈동자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금세 녹아 사라졌기에 아프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암흑이 내 세계 위로 육중하게 내려앉는 것처럼 보였다.
“너 따위 죽어도 아무도 눈치도 못 채.”
주변은 소음조차 얼어붙은 것 같았다. 차갑다거나 춥다는 느낌도 없었다. 내 속은 이미 냉랭했다.
“너, 원래 죽고 싶다고 했었잖아?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
강철 플래티넘 보디를 가진다면 고통을 안 느낄까? 내가 약하다는 민망함과 굴욕도 없을까? 플래티넘 몸이라면 곧 터질 것 같은 이 울분도 단단히 가둬둘 수 있으려나? 성진이라는 유약한 나 자신을 버릴 수 있다면 뭐든 좋다. 이 삶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면 뭐든 좋다.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만나고 싶다. 강력한 몸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악귀들을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결국 너희들도 언젠가는 죽는다. 너희에게도 영원한 삶은 없잖아. 너희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늘 누군가에게 얻어터지며 살고 있잖아. 그렇게 녀석들을 연민했다. 불쌍한 구제 불능 악귀들을 용서할 겨를도 없이 나는 죽어갔다. 악귀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졌고 나는 천천히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누군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삶을 연속하겠습니까?”
시야는 깜깜했고 몸이 얼어붙어 정신은 몽롱했지만 나는 정확하게 뜻을 밝혔다.
‘아니요. 싫습니다.’
속으로만 말했는데도 마음을 읽었는지 목소리가 이번엔 다르게 물었다.
“그렇다면 다른 삶을 살겠습니까?”
‘음, 그건 괜찮을 것 같네요.’
저승사자가 길 안내를 하려는 건가? 나는 동의를 표했다. 설령 회귀나 환생이라는 선택이 가능하대도 이 삶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김성진이라는 놈은 너무도 허약했다. 나는 세상과 맞서고 싶지 않았다. 복수 같은 것을 떠올린 적도 없었다. 그냥 김성진의 삶을 종료시키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 계간 <대산문화> 2025 여름호(통권 96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