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거기∨서 거기

  • 단편소설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거기∨서 거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지켜주는 주문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아브라카다브라나 하쿠나마타타 같은. 서보의 경우에는 거기서 거기, 였다. 일곱 살 때 나무 블록으로 애써 지어놓은 집을 주인집 딸 사랑이 무너트렸다고 일러바치자 아빠는 표정 하나 안 바뀐 채 “건축이나 철거나 다 거기서 거기다” 했다.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몸도 마음도 삐쩍 곯은 약골이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의 뼈마디를 삽으로 푹푹 내리찍으며 “죽기 싫으면 빨리 꺼져요, 꺼져!” 우악스레 소리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 주문 덕분일지 몰랐다. 살면서 서보는 그렇게 남의 주거와 생존을 위협하는 식으로 밥벌이를 한 아빠가 죽을 만치 부끄러웠지만 거기서 거기, 거기서 거기, 거기서 거기… 중얼거리다 보면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수녀든 무법자든 애정이든 비정이든 세상만사가 정말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달랑 삽자루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 아빠가 며칠이고 돌아오지 않을 때면 서보는 사랑과 소꿉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랑이 늘 주인 역할만 고집했기 때문에 서보는 자연스레 손님이 되었다. 그런데도 서보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손님 할게, 제갈이 너는 주인 해”라고 말했고, 그럼 사랑은 “얘, 성 말고 이름으로 불러줄래?” 점잖게 소리 높였다. 그렇게 사랑은 정육점 푸주한이 되었다가 금은방 주인이 되었다가 목욕탕 세신사가 되었다. 직업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이 어서 오세요! 손님, 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무섭게 서보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집은 오늘 문을 닫았네?”

그 후로도 둘의 역할놀이는 계속되었고, 시작되기가 무섭게 중단되었다. 그럴 거면 왜, 완전히 그만두지도, 그렇다고 끝까지 이어가지도 않을 거면서 왜 굳이 그랬던 걸까? 몇 년 뒤 곧 지구가 멸망하네 마네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1999년 12월의 어느 겨울날,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서보는 문득 과거의 자신에게 궁금해졌고, 궁금해졌기 때문에 조심스레 궁금해했고,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입김처럼 뿌옇고 아스라한 질문을 읊조렸다.

그럴 거면 왜 그렇게….

서보는 문장을 끝맺지 않고 중간에 멈추었다. 문으로 치면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닫아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서보에게는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온다고 해놓고 영영 돌아오지 않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여기 가만히 있어, 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호기심을 내보이며 다가왔던 몇몇 친구들이 같이 떡볶이를 먹자거나 당시 유행하던 아이돌 스티커를 노트에 붙여주겠다거나 시내에 귀를 뚫으러 가자고 할 때에도 서보는 먹은 셈 칠게, 가진 셈 칠게, 해본 셈 칠게, 하고 말했다. 먹으나 먹지 않으나 가지나 가지지 않으나 해보나 해보지 않으나 별다른 바가 없었다.

서보는 수능을 거기서 거기인 성적으로 치르고 거기서 거기인 대학의 거기서 거기인 사회복지과에 지원했다. 당시 신입생은 필수적으로 과 내 동아리에 가입해야 했는데, 서보가 고른 것은 영화패였다. 노래패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극패는 극장에서 연극을 올려야 하지만, 영화패는 직접 영화를 찍지 않고 보기만 한다는 게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고 철저히 손님의 자리에 머무르려 한다는 것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그 모임을 다른 무엇도 아닌 그 모임으로 만들어주던 단 몇 글자짜리 이름이.

 

* 계간 <대산문화> 2025 여름호(통권 96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선진
소설가
소설집 『밤의 반만이라도』, 단편소설 『빛처럼 비지처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