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1980년대 산동네에서 살 때 일이다. 도로변에 빌딩 한 채가 서 있었다. 낮에 빌딩 유리창에는 꼬막같이 다닥다닥 붙은 키 작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찼다가 땅거미가 번지어 오면 구럭을 빠져나오는 어린 게처럼 새어 나와 제자리로 돌아가곤 하였다.
2000년대 들어 산동네마다 아파트 단지가, 도로변에는 마천루가 들어서면서 골목과 계단이 사라지고 저녁이 와도 땅거미가 찾아오지 않았다. 불빛은 거리를 적시며 흘러넘치고, 빌딩의 유리와 아파트 창들은 서로를 향해 빛을 반사시켰다.
오솔길
사는 일 까닭 없이 힘에 부칠 때
풀숲 기어가는 뱀의 등허리처럼
꿈틀대던 옛길 떠오릅니다.
아랫마을에서 시작하여
저수지를 끼고 가다가
비탈을 타고 오르던 시오리 길은
산 중턱 정각사(正覺寺)에서 끝이 납니다.
어릴 적, 절에 시주하러 다니던 할매 따라
가던 길이고 담배 농사짓던 아부지가
지게 가득 담뱃잎 지고 오던 길입니다.
적막이 돋아나던
요철의 길은 발로 읽는 경전이었을까요?
아부지와 할매는 말을 줄여 걸었습니다.
없어진 지 오래된 산길
떠올리면 불쑥, 배가 고파 옵니다.
마음속 울퉁불퉁한 길 걸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