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太白). 크고 흰 곳. 넓고 밝은 곳. 강원도 태백을 처음 찾은 것은 이른 봄의 일이었습니다. 그해에도 저는 일간 신문사들의 신춘문예 공모전에서 모두 미끄러졌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 채 다가온 새봄을 미워하기만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 근처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으로 떠나자고, 내가 알고 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을 거라고. 이것이 출발이 임박한 태백행 버스에 무작정 올라탄 계기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보니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삼월에 내린 폭설이 도시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낯선 날씨와 낯선 거리와 낯선 얼굴들. 마치 이국에 온 듯 신기했습니다. 나 자신을 못마땅해하거나 슬퍼할 새도 없이. 터미널 근처 숙소에 가방을 내려두고 거친 몸을 씻고 누웠습니다. 그날 밤 고맙게도 얼마간의 눈이 더 내려주었습니다.
여행보다는 도피에 가까운 걸음이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머무르는 동안 내내 숙소의 좁은 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행히 터미널 인근의 숙소 앞에는 이른 아침에도 늦은 밤에도 낯선 이들의 허기를 뜨겁게 채워주는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어스름을 틈타 같은 국밥집을 찾아 같은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당시 누군가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은 아마 여기저기 물리고 뜯겨 갸르릉 소리를 내는 짐승 같았을 것입니다. 허겁지겁 수저질만 했을 것입니다.
이후로도 태백을 찾았습니다. 처음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을 하나 잡고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은 채 시는 못 쓰고 애만 쓰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태백의 관문이 되는 높은 고개의 이름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오가며 늘 지나던 곳이지만 채 지각하지 못했던. 고개의 이름은 두문동재였습니다. 사기를 살펴보니 고려 멸망 이후 폐위된 공양왕을 따르던 이들이 슬픔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을 삼가며 살던 마을이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두문불출(杜門不出).
동질감이었을까요. 혹은 안도감이었을까요. 이후 저의 태백 여정은 달라졌습니다. 태백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태백 안에서 반경을 넓힌 것입니다. 아침부터 환한 길로 나가 걸었습니다. 가장 먼저 시내 중심에 있는 황지라는 이름의 연못을 보았습니다. 못의 차고 맑은 물은 낮은 곳을 찾아 천삼백 리를 흘러 바다가 된다고 했습니다. 물길의 이름은 낙동강. 그런가 하면 북서쪽에 있는 숲에서는 맑은 샘을 하나 만났습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은 석회암반을 뚫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천천히 향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한강이라 부르는 것이고요. 두 물길의 먼 여정을 떠올려보며 무엇인가 계속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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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과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요즘 먹는 평범한 음식 ‘추어탕' |
시든 시가 되지 못하는 글이든 글도 되지 못한 애든 태백의 시간 속에서 저는 계속 썼습니다. 물론 밥도 계속 먹었습니다. 국밥 일변도에서 벗어나 태백다운 음식을 찾아 나선 것도 이 무렵입니다. 산나물 비빔밥을 가까이했고 강원도에서 만날 수 있는 장칼국수도 즐겼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시를 완성한 날이면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을 헐어 ‘식육식당’ 혹은 ‘실비식당’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고깃집에서 홀로 연탄불에 고기도 구워 먹었습니다. 연탄을 열원으로 쓰는 것은 과거 석탄 산업이 한창이던 시절부터 자리 잡은 태백의 흔한 풍경입니다.태백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한 것은 물닭갈비입니다. 물닭갈비는 철판에 볶거나 화로에 구워 먹는 춘천식 닭갈비와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매콤한 양념으로 재어둔 닭에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그 위에 냉이·쑥·달래·쑥갓·배추 등 제철 채소를 수북하게 올려 끓입니다. 과거 태백의 광부들이 고된 일을 마친 후 자주 즐기던 음식이라 했습니다. 닭고기를 다 건져 먹었다 해도 다시 육수를 붓고 우동이나 라면을 넣어 끓이면 푸짐한 술안주가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졸아든 양념에 밥을 넣고 볶을 수도 있으니까요.
태백을 처음 찾은 일도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종종 태백에 갑니다.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태백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사이 마음이 잘 포개어지는 친구들이 생긴 덕분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마주 앉은 자리에는 그때그때 누군가가 제안한 소박한 음식이 올라옵니다. 찐만두가 될 때도 있고 청국장이나 추어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정말 귀한 것은 어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도 없는 것도 아닌 어디에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