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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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나는 7년 넘게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퇴사하게 되었다.
사실 퇴사보단 휴직하고 싶었는데 ‘딱 1년만 쉬면서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무급으로 휴직 좀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했다가 거절당했던 거였다. 뭐, 그래도 각오는 되어 있었다. 이미 여러 계획을 세워두었으니까. 휴직 후 복귀가 A안이었지만 퇴사 후 이직이라는 B안도 있었다. 어쨌든 내게는 소설만 바라볼 1년이 꼭 필요한 시기였다.
소설을 처음 쓰게 된 건 토요일 2시에 열리는 한 문화센터의 ‘소설 쓰기 기초반’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그저 간솔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문화센터 ‘제빵반’에 들어가면 어찌 되었든 내가 만든 빵 하나는 집에 가지고 올 수 있고 ‘꽃꽂이반’을 들어가면 내가 만든 꽃바구니 하나는 집에 가져올 수 있듯이 ‘내가 쓴 소설을 하나쯤 가져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레 자각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첫 번째 소설을 완성하고 나자, 나는 소설 쓰기에 단단히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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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던 백지에 문장과 이야기를 쌓아 올려 만들 때의 그 쾌감을 자꾸자꾸 느끼고 싶어서 같은 수업을 3년간 듣고 또 들었다. 거기서 만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친목과 교류도 단비 같았다. “이번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린 황정은 작가님 신작 봤어? 대박이지?” 같은 말을 할 사람들이 거기 있어서 좋았다. 특강으로 온 한 작가님이 책에 서명하면서 남겨주신 ‘꼭 등단하세요’라는 문구에 기분이 야릇해져 신춘문예와 공모전에도 작품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만큼 회사에서도 연차가 쌓였다. 3년을 기점으로 맡은 일이 늘어가면서 문화센터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숱한 낙선의 기억도 쓰는 일을 중단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을 터였다. 그렇게 소설을 읽기만 하고 쓰지 않던 또 한 번의 3년을 보내고 나는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큰불처럼 화르르 타올랐던 무언가가 이제는 다 꺼졌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 꺼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잿더미 속에 보이지 않는 불씨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면….
문예창작학과에서 정식으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신춘문예와 공모전에서 낙선할 때마다 그해의 데뷔자는 문예창작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어서 문학이 아닌 사회학을 전공한 나는 역시 ‘못 배워’ ‘잘 못 쓴다’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런데 석사과정은 총 2년. 그렇게 길게 일을 쉴 대범한 용기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1년 정도는 휴직으로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휴직이 안 되더라도 1년 정도면 재취업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1년만 일을 쉬면서 소설 습작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한 회사에 6년쯤 다니다 보니 ‘내가 1년 정도는 쉬더라도 재취업이 어렵지 않겠다’는 느낌이 직관적으로 꽂혔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잘나서라기보다는 이직 시장에서 6~7년 차가 가장 선호된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일단 문예창작 석사 1, 2학기는 사이버대학원에 진학해 회사에 다니면서 온라인으로 수강했고, 남은 3, 4학기를 오프라인 대학원으로 편입 지원해서 합격한 다음, (휴직 협상에 실패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데뷔할 때까지 모든 걸 바칠 거야!’라는 비장한 결심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정도의 대범한 용기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으니까. 딱 1년만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면서 습작에 집중한 다음, 바로 재취업할 계획이었다. 당장 ‘무언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1년간 다져 둔 내공으로 다시 내가 내 생활을 굴려 나가면서 틈틈이 쓰고, 그렇게 하다가 언젠가 ‘무언가’ 결실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일 년간 쉬면서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운다니. 사실 모든 직장인의 로망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가 회사를 관두고, 노동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소설 습작 및 공부)만 하면ᅠ막 무지하게ᅠ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당연히ᅠ좋긴 좋은데ᅠ완벽하게 100% 좋지는 않고ᅠ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 2% 부족한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게 당연히 일차적으로 회사에 다니면 돈이 들어오고, 회사를 그만두면 돈을 쓰기만 하므로 돈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돈을 아예 빼고서 생각하더라도ᅠ허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때 알아차렸다. 일, 노동, 돈을 버는 행위를 하고 있을 때 생성되는 좋은ᅠ기운이랄까, 에너지랄까 활력 같은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는, 노동에는 슬픔이 너무 많지만, 기쁨이 그렇다고 ‘0’인 건 아니다. 그래, 없지는 않다.
그러면 그건 뭘까? 그 무형의 존재는. 그 미세하고 미묘한 일의 기쁨이란 건.
우선 내게 하루의 ‘루틴’을 준다. 또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내게 ‘사회’를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비록 내가 ‘원래’ 하고 싶던 일이 아니더라도, 소위 ‘영혼 없이’ 일하더라도 내가 일이라는 걸 하면, 그 결과로 서비스든 재화든 어쨌든 무언가가 생산되고, 그걸 누군가는 필요로 하고 심지어 자신이 노동해서 번 돈으로 그걸 사고 싶어 한다. 그런 아주 사소한 의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피어나고 있다. 나는 그 순환적 연결고리를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소설을 쓰면서 주인공인 ‘안나’와 ‘거북이알’의 관계로 표현했다. ‘안나’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받는 슬픔은 ‘거북이알’의 노동의 결과물을 통해 해소하고 반대로 ‘거북이알’이 노동 현장에서 받은 고통은 ‘안나’가 노동해 만든 생산물로 해결한다.
스스로와 약속한 1년이라는 기간이 지나고,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한테 자리를 소개받고, 이력서를 돌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하던 시기에 이 소설을 썼다. 내가 이제 다시 돌아가게 될 공간, 돌아가게 되면 만나게 될 사람, 하게 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내 안에 고였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은 이제 다시 일하러 가고 싶다, 때가 됐다, 라는 마음으로 썼다.
5월 말에 신인상 공모에 투고했고, 6월에 여러 단계의 면접을 보고, 7월 말에 옆 동네의 새로운 회사에 같은 직군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한 지 3일째 되던 날, 아직은 낯선 새 회사의 복도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다.
데뷔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종심에 올랐을 때는 꿈에서 세 마리의 고래가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똑같이 세 마리의 고래가 헤엄을 치다가 그중 한 마리가 천천히 다가와 이마에 뽀뽀를 해주는 꿈을 꾸고 ‘이번엔 데뷔인가?’ 싶었다는 남편을, 퇴근 후 회사 앞으로 불러내 함께 축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데뷔작이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고,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해 출판사 서버가 다운되고, 1년 뒤 이직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는 일 같은 건, 둘 중 그 누구의 상상의 범위 그 끄트머리에도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