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그 물빛 무늬』는 30년 전 여러 해 동안 나누어 쓴 일곱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다. 그 가운데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가 1996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한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어릴 때 기억으로 날 낳은 어머니가 아닌데도 집안사람 모두 ‘수호 엄마’라고 부르던 여자가 있었다. 나는 그 엄마가 정말 날 낳은 엄만 줄 알았다. 강릉 시내에 나가 큰 상회를 하는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시애(시앗)를 보았다. 그 엄마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도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두 사람이 살림하는 집을 찾아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집안사람 모두에게 그 여자를 ‘수호 엄마’라고 부르게 한 것도 수호를 아들 삼고 아이를 낳지 말라는 뜻이었다.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수호가 학교에서 돌아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수호는 어머니한테 우리 엄마 어디 갔느냐고 묻고 어머니는 “니 엄마 서울에 니 옷 사러 갔다”고 말한다. 수호는 직감적으로 엄마가 아주 떠났다는 걸 알고 갑작스러운 이별에 큰 상처를 받는다. 어른이 된 다음에도 이따금 떠오르는 기억으로 그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그 엄마가 살았다는 수색에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
![]() 수색역 앞 골목시장은 아직도 1970년대의 분위기 그대로다. 이 골목 안에 어물·과일·곡물가게와 술집, 이발소, 돈 없는 사람들의 장기투숙 여관 등이 있다. |
30년 전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서울 도봉구 월계동에 살다가 소설을 거의 다 쓸 무렵 은평구 신사동으로 이사했다. 소설의 모티브이자 심정적인 무대인 수색 바로 옆 동네였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끝낼 때까지 길을 잘못 들어 한 번 스쳐 지나간 적은 있어도 일부러 수색에 나가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 가길 피했다. 소설을 다 쓸 때까지 내 마음속에 그곳은 서울의 어느 허름한 외곽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그리움 그대로 물빛 무늬를 가진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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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색에 처음 나가본 것은 동인문학상을 받은 다음 어떤 방송국의 문학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함께였다. 그때만 해도 수색역은 푸른 기와지붕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 앞에 손으로 쓴 간판 ‘솜틀집’이 있는 것도 무척 반가웠다.
어떻게 물빛 무늬라는 뜻의 ‘수색’이라는 지명을 썼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그곳의 순우리말 지명이 ‘물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고향 강원도에도 양양과 속초 사이에 ‘물치’라는 지명이 있어 그 뜻을 금방 이해했다. 예부터 물이 맑은 곳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수색을 더 지나 일산에 살고 있다. 경의선 전철을 타고 자주 수색역을 지난다. 예전에는 서울역, 신촌역, 가좌역, 다음이 수색역이었다. 그곳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상수네 집이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가좌역과 수색역 사이에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 생겼다. 수색역 남단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북단은 역과 역 사이가 불과 35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에 새 역이 들어선 것은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이름 그대로 MBC 본사와 KBS 미디어센터, JTBC, SBS 미디어넷, 채널A, tvN, YTN, 국악방송 등 여러 방송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출입 경비도 자못 삼엄하다.
그런 시설들이 들어와 있는 역 건너편과 이쪽의 예전 수색역 부근 모습은 아주 다르다. 수색역도 예전 정감 넘치던 시골풍의 청기와 역사 대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그런 모습이 내게는 예전 물빛 무늬의 수색에서 점점 삭막해져 가는 압수 수색의 무늬로 변해가는 듯해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