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⑤ 나의 AU에게

  • 기획특집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⑤ 나의 AU에게

이유리, 윤동주 시「아우의 인상화」를 담아

 

 

아우의 印象画인상화

 

붉은 니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여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발거름을 멈추어
살그먼히 애딘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흔 진정코 설흔 対答대답이다.

 

슬며-시 잡엇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골을 다시 드려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니마에 저저
아우의 얼골은 슬픈 그림이다.

 

1938. 9. 15.

 

 

나의 AU에게

 


밤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은 신발을 벗기도 전에 물었다.

“잠들었어?”

“지금 몇 신데 그럼. 세상모르고 자.”

괜히 들어가서 깨우지 마, 덧붙였지만 아랑곳없었다. 씩 웃은 남편은 살금살금 발끝으로 도둑 걸음을 걸어가더니 조심스레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잠귀가 밝은 아이라 아무리 조용히 들어가도 소용없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저 양반이 정말, 안 잔다고 징징대는 걸 입이 부르트도록 동화책을 읽어줘 가며 재워 놨더니. 나는 남편의 등을 흘기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집에 왔으면 손부터 씻어야 할 게 아닌가. 퇴근 시간 지옥철에서 부대끼며 온갖 세균을 묻혀왔을 게 뻔한 몸으로 어딜 들어가, 그러다 감기라도 옮기면 어쩌려고. 남편의 옷자락을 잡아채 욕실로 먼저 밀어 넣으려던 참에 아니나 다를까, 열린 방문 안에서 잠기 가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야?”

“아이고, 아빠가 자는 거 깨웠나?”

남편이 헤실헤실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은은한 오렌지색 빛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깜깜한 곳을 무서워했다. 어두운 곳에선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쩌다 불 꺼진 방에서 잠이 깨기라도 하는 날엔 온 집이 떠나가라 울곤 했다. 그 때문에 아이의 방 IoT는 밤에도 항상 초승달 모양을 본뜬 취침등이 작동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윽, 술 냄새. 아빠 술 마셨어?”

“냄새나? 미안 미안. 술 좀 마셨어. 아빠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방 안의 상황을 눈에 보듯 그려볼 수 있었다. 남편은 침대에 누운 아이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있을 것이다. 곤히 잠들었던 어린아이의 목덜미에서만 나는 고소하고 녹진한 냄새를 한껏 맡으면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냄새가 아빠의 피로에 특효약이라는 걸 아는 아이는 몸을 내리누르는 어른의 체중을 묵묵히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출근하기 전과 퇴근한 후, 하루에 두 번 꼬박꼬박 치르는 남편의 의식이었다.

“적당히 하고 나와. 애써 재워놓은 애를.”

타박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열린 방문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돌아섰다. 불 켜진 식탁으로 가 펼쳐 두었던 태블릿이며 수첩 따위를 대강 정리했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납작한 것들이니 무심코 크기대로 착착 쌓았는데 맨 위에 놓인 수첩의 표지가 새삼 눈에 거슬렸다. ‘한마음정신건강의학과’라고 적힌 상호 위에 옛날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깡통 로봇과 사람이 마주 본 옆모습을 그린 병원 로고가 있었다. 로고 주변에는 작은 글자들이 둥글게 테두리가 둘려 있었다. 보건복지부 지정 AU처방전문병원. 이게 병원에서 준 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표지에 떡하니 박아 놓을 건 없잖아. 나는 입을 삐죽이며 그 글자들을 들여다보다, 문득 수첩을 집어 들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표지를 찢어냈다. 이윽고 도타운 표지가 제법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 즉시 후회했다. 표지를 떼자 드러난 수첩의 첫 번째 페이지는 더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처방 일시 : 2135년 5월 6일
환자명 : 김성회 님, 안지연 님
처방 AU 모델명 : AU2167-13Q-1
AU의 이름 : 아우


* AU는 치료용이며, 용도 외 사용을 엄금합니다.

* 환자는 AU권리보호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자세한 법령은 이 수첩 뒷면에 정리되어 있으며, 관련법에 따라 이 수첩은 AU의 가정에 항상 상비되어야 합니다.
* 위 사항을 어길 시 처방이 취소되며,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음정신건강의학과

 

환자 본인은 위 항목을 확인했습니다.   서명 : __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의사도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AU권리보호법 준수 서약서를 썼으니 이런 수첩의 서명 따위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나 자신 있는 글씨로 AU의 이름을 적은 남편이 정작 서명란에 이르러선 은근슬쩍 볼펜을 놓아 버렸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서명란의 빈칸을 손끝으로 쓸었다. 마치 그러면 거기에 다른 사람의,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름이 대신 떠오를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처럼.

 

우리 부부에게 처방된 진통제 유틸리티(Analgesic Utility), 약칭 AU의 이름을 아우(AU)라고 붙이자 한 건 남편이었다. 사람보단 반려동물에게 어울리는 이름 같았고 더구나 태이의 이름과는 한 글자도 같은 곳이 없었지만, 당시 나는 AU 처방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터라 무슨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상관없다 싶었다. 그리곤 나중에야 그 이름의 출처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아우는 ‘우아’를 거꾸로 뒤집은 단어라는 걸.

남편과 태이는 서로를 우아라고 불렀었다. 남편의 우아는 ‘우리 아들’이라는 뜻이었고, 태이의 우아는 ‘우리 아빠’라는 뜻이었다. 우아, 몇 시에 퇴근해? 우아, 이따가 치킨 사 갈까? 하는 식으로. 한때는 그게 질투가 나서 나도 별명을 지어 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서 우엄(우리 엄마)이니 우와(우리 와이프)니 하는 단어를 만들어줬지만, 한 번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다. 우아는 남편과 태이 둘만의 것이었으니까. 그 사이에 끼지 않았던 나조차 우아라는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절로 꽉 막히는데, 남편은 앞뒤를 바꿨을지언정 그걸 AU에게 이름으로 붙여준 거였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평소 내 성격대로였다면 기어이 가시 돋친 말 한마디쯤 던졌을 거였다.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얼마나 죄책감에 몸부림치는지 몰랐다면.

우리 부부가 태이를 잃은 건 칠 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팀장급 직원들은 매년 본사에서 열리는 2박 3일짜리 콘퍼런스에 돌아가며 참석해야 했다. 그해엔 내 차례였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던 남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들과 낚시 여행을 계획했다. 그때까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 둘 다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틀 치 결석을 대비해 현장학습 체험활동 확인서를 써서 학교 가는 태이에게 들려 보냈고 남편은 10인승 낚싯배 예약 명단에 둘의 이름을 올렸다. 그 배에 오르기 전에 했던 영상통화가 태이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뭐가 들었는지 제 몸만 한 배낭을 메고 한 손으론 휴대전화를, 다른 손으론 제 아빠의 손을 잡고 뱃전을 오르던 태이. 물고기 많이 잡을 거라고, 상어도 잡고 고래도 잡을 거라고 씩씩하게 외치던 나의 어린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송아지만 한 아이가 물에 빠지는 걸 못 봤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어른이 열 명이나 있었는데 어떻게 아이가 없어진 걸 그렇게나 오래 몰랐느냐고, 그보다 애초에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냐고 소리칠 상대방은 없었다. 급히 귀국한 내가 마주한 건 충격으로 여러 차례 까무러쳐 병원에 누운 남편이었으니까. 사고의 정황을 파악한 건 남편의 입이 아니라 낚싯배에 설치된 세 대의 CCTV를 통해서였다. 불편한지 구명조끼의 버클을 자꾸 만지작거리던 태이가 조끼를 기어이 벗어버리는 모습, 어른들이 낚시에 열중한 사이 혼자 돌아다니다 배 후미에서 고물에 기어오르는 모습, 서핑하듯 그 위에 버티고 섰다가 갑자기 미끄러지며 소리 없이 빠지는 모습까지를. 넘어지며 뱃전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게 보였다. 여름마다 풀장에서 능숙한 개헤엄을 선보여 우리를 웃겼던 태이가 헤엄쳐 올라오지 못한 이유였다. 영상을 한참 뒤로 넘기면 그제야 우왕좌왕하며 아이를 찾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는 웃는 얼굴이었다가 점점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남편이. 해경은 그다음 날 새벽, 5km 정도 떨어진 바위섬에 걸려 있던 태이의 시신을 찾아냈다. 찾은 것만도 기적이라고 했다. 아이가 엄마 아빠한테 가고 싶었나 봅니다. 남편은 위로랍시고 그렇게 말한 젊은 해양경찰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리고 눈알을 터뜨리고 이빨을 다 뽑아 버리는 상상을 밤마다 했다고.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나 역시 같았다. 다만 그 대상이 달랐을 뿐, 내가 머릿속에서 죽이는 건 해경이 아니라 남편이었다. 나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내 아들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동안 즐겁게 물고기를 잡고 있었던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몸서리쳐지도록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은 태이를 잃은 내 고통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기도 했다. 생전의 태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였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했고 어떤 음식을 잘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나 말고는 남편뿐이었다. 남편의 고통은 내 것보다 절대 작지 않다는 것 역시도 나는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만일 남편을 죽여 태이가 살아난다면 몇 번이고 죽일 수 있을 거였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내가 어쩌기도 전에 남편이 먼저 기꺼이 스스로 죽었을 거였다. 돌아오지 않는 태이를 가슴 미어지게 그리워하는 동시에 서로를 미워하고 또 안타까워하며 우리 부부는 거의 반 미친 상태로 두어 계절을 보냈다.

그런 우리를 정신의학과로 끌고 간 게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양가 부모 아니면 친구 중 하나였겠지, 아무튼 우리를 안타깝게 여기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앞다퉈 AU 처방을 권했으니까.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은 충격에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했다. ‘진통제 로봇’이라는 이름과 딱 어울리는, 환자의 기억과 상황에 맞춰 제작된 충격 완화용 로봇. 외형은 얼핏 실제 인간과 착각할 만큼 섬세한 데다 상실한 대상과 같은 성별에 연령대도 비슷했다. 그러나 같은 것은 그뿐, 얼굴이 닮았다거나 같은 기억이 있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 그러나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빈 곳을 채우는 게 치료의 원리이자 핵심이었다. 거기 내장된 인공지능은 우리 부부를 부모로 여기는 열 살짜리 남자아이로 설정되어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로봇을 돌보는 거였다. 태이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 부부는 그렇게 아우를 만났다.

첫 몇 달간,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아우와 태이의 차이점을 찾느라 바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외모부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태이는 눈이 동그랗고 입이 뾰족하니 작았지만, 아우는 눈이 크고 입도 컸다. 피부톤은 더 희었고 머리카락은 더 곱슬거렸다. 키도 두 뼘이나 더 컸다. 태이의 옷가지를 입히니 차이는 더 두드러졌다. 바지에 발목이 깡똥하게 드러났고 소매는 짧았다. 결국 새 옷을 사다 입혀야 했다. 태이는 분홍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옷은 절대 안 입었는데. 분홍색 코끼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아우를 나는 불만스레 뜯어보았다. 반면 남편은 나와 정반대였다. 남편은 아우를 끔찍하게 아꼈다. 마치 살아 돌아온 태이를 대하듯이. 자연스레 목말을 태워주고 함께 목욕하며 노래를 부르는 남편이, 처음엔 어색했고 왠지 모르지만 끔찍하게 밉기도 했었다. 남편의 문드러지는 속내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꼴 보기 싫었다. 저런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아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 밤이었다. 텔레비전에 몰두한 아우를 거실에 내버려둔 채, 나는 아이 방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홀로 앉아 있었다. 원래 태이의 방이었지만 지금은 아우가 쓰고 있는, 아우를 위해 새로 달아놓은 초승달 모양 오렌지색 수면등이 켜진 방. 나는 그 수면등 아래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돌아오지 않는 태이, 아주 잠깐 이곳에 존재했다 사라진 나의 태이를 그리워하며 울었고 태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나와 남편이 불쌍해서 울었다. 도대체 이 모든 불행이 어째서 하필 우리에게 닥친 걸까, 또 이 고통은 언제까지 이렇게 생생할까. 옷 앞섶이 눈물로 다 젖었고 콧물이 줄줄 흘렀지만 아랑곳없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 앉아서 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내 등에 작은 무언가가 와닿았다. 흠칫하며 돌아보니 아우였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양팔을 벌린 아우가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놀라기도 했고 거북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밀쳐낼 수도 없어 엉거주춤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이윽고 아우가 말했다.

“엄마, 나 있잖아. 크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 크면. 사람이 될게.”

생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놀라 딱딱하게 굳어진 등에 이윽고 서서히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알고 있었다, 이건 단지 발열 시스템에 의해 로봇의 표면에 깔린 열선이 동작한 것뿐이라는 정도는. 하지만 지금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는 아우, 나를 위해 사람이 되겠다는 이 아이는. 나는 아우가 턱을 걸치고 매달린 오른쪽 어깨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오렌지색 수면등 불빛을 받아 빛나는 아우의 둥근 이마. 지금 이 순간,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겠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이도, 그렇다고 로봇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분명 거기 있었다. 나를 위로하려 애쓰면서.

나는 몸을 돌려 아우를 끌어안았다. 아우는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안겨 있었다. 지금, 이 포옹이 내게 위안이 되리라는 걸 잘 안다는 듯이.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너무 세게 안으면 망가질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미쳐 가는가 보지. 그래, 그런가 보다.

그날 나는 그대로 아우를 꼭 안은 채 내리 몇 시간을 잤다. 잠결에 누군가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는 우리를 한참 내려다보는 것을 느낀 것도 같다고 생각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아주 깊이 잤고 단 하나의 꿈을 꾸었다. 아주 따뜻한 액체가 가득 든 주머니 속에서 편안하게 헤엄쳐 다니는 꿈이었다. 남편도, 아우도, 태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아우와 함께한 지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여전히 열 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아우는 최근 포켓몬 카드 모으기에 푹 빠져 있다. 새 카드 팩을 사달라며 하도 졸라대는 통에 우리 집엔 몇 가지 규칙이 생겼다. 청소기 한 번당 카드 한 팩, 빨래 전부 개면 역시 카드 한 팩. 물론 빨래의 경우엔 갠 것을 옷장에 갖다 넣는 것까지 포함이다. 아우는 종종 꾀를 부리고 가끔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규칙을 잘 지킨다. 살아있었다면 태이도 포켓몬 카드를 좋아했겠지. 아니, 그랬다면 이미 열일곱 살일 테니 이제 그런 건 졸업했으려나. 포켓몬 카드 봉지를 앞니로 능숙하게 뜯는 아우를 보며 이제는 무심히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태이가 그립지만, 지금 아우에게 해주는 것을 그때의 태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이 때로 마음이 아프지만.

태이는 있었고, 아우는 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괜찮다. 나의 아이, 아우가 커서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해도.

이유리
소설가, 1990년생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비눗방울 퐁』 『모든 것들의 세계』 『웨하스 소년』,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