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④ 밤의 거리

  • 기획특집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④ 밤의 거리

이서수, 윤동주 시 「흐르는 거리」를 담아

 

 

흐르는 거리


으스럼이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電車전차, 自動車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가? 定泊정박할 港口항구없이, 가련한 사람들을 실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 상자 붓잡고, 서슬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푸시 빛나는 街路燈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象徵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朴박이여! 그리고 金김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츰 우리 다시 情정답게 손목을 잡어 보세」 몇 字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떠러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金徽章금휘장에 金금탄추를 삐였고 巨人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츰과 함께 즐거운 來臨내림,

 

이 밤을 하욤없이 안개가 흐른다.

 


5. 12.

 

 

밤의 거리

 

 

그들은 막차를 놓쳤다. 어떻게 할래? 도윤이 은호에게 물었다. 택시 타야지. 은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사방이 고요했고,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량은 드문드문 보였다. 은호의 등 뒤에서 밝게 빛나는 광고판이 백지처럼 비어 있었다. 이것도 광고인가? 도윤은 광고판의 중앙부와 모서리를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사진과 글자는 물론이고 QR코드도 없었다. 아무것도 광고하지 않는 광고판도 있을까. 도윤은 입은 다문 채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그저 하얗게 빛날 뿐인 텅 빈 광고판에서 메시지를 찾는 건 보는 이의 몫이었다. 도윤은 박경수를 떠올렸다. 박경수의 삶도 비어 있으나 환하게 빛나는 광고판처럼 느껴졌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그들에게 남겨진 것 같았다.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이 년 만에 만났다. 도윤은 집을 나서기 전에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검은색 양복에 섬유탈취제를 뿌렸다. 진한 라벤더 향이 실내에 퍼졌다. 장례식장에 그런 향을 묻히고 가는 게 어쩐지 부적절하게 느껴져 창문을 열고 재킷을 탁탁 털었다. 그제야 도윤은 박경수의 죽음을 실감했다.

4월인데 왜 이렇게 춥지? 재킷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으며 도윤이 말했다. 벤치에 열선이 켜져 있어서 따듯한데, 뭘. 은호의 말에 도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박경수의 죽음을 실감한 밤에 엉덩이는 따듯해도 상체는 여전히 춥다고 대답하는 게 장례식장에 진한 라벤더 향을 묻히고 가는 것처럼 부적절한 일로 느껴졌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적절한 걸까. 이런 밤엔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도윤은 도로에 눈길을 두고 있는 은호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밤이 점점 깊어지는 중이었다. 이따금 술 취한 사람과 생각에 잠긴 사람이 그들의 등 뒤로 천천히 지나갔다.

경수가 왜 그랬을까? 도윤의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질문을 은호가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러나 도윤만 그걸 감지했는지 은호는 미동도 없었다. 도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까운 가로등 불빛이 꺼진 걸 발견했다. 그 탓에 등 뒤의 흰색 광고판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어서 의미를 찾아보라며 그를 다그쳤다.

도경은 무슨 이유로 박경수가 그런 선택을 한 건지에 대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울어야 하는 자리였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영정 사진을 봐도 언제 찍은 건지 궁금했을 뿐 그들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울음이 터지지는 않았다. 육개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귤을 씹으면서 지나치게 시다는 생각만 했다. 육개장은 짜고 귤은 시고 떡은 보나 마나 달 것 같았다. 도윤은 그런 원초적 감각에만 집중했다. 막상 감정이 일기 시작한 건 장례식장을 나서면서부터였다. 입구에서 마주친 사람의 부은 눈두덩을 보고는 자신의 멀쩡한 얼굴이 민망해져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입술에 물고서 흡연 장소로 걸어가던 중 때마침 흡연하러 나온 은호와 마주쳤고, 그처럼 비통함이 옅은 은호의 얼굴을 흘깃거리다 같이 버스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은호는 흔쾌히 따랐다. 정류장을 향해 걷는 동안 그들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박경수한테 미안한 게 있어. 은호가 갑작스레 말했다. 도윤은 뭐가 미안한지 묻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박경수에게 미안한 게 없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없을 리가 있나. 은호가 한숨을 내쉬고서 먼저 입을 뗐다. 졸업하고 경수가 고민 상담하러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어.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최대한 많은 연봉을 주는 직장으로 가라고 했지. 그게 정답이니까. 그런데 경수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 우리가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거야. 경수가 그랬어? 도윤이 은호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박경수가 친구들을 욕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졌다. 은호가 서둘러 말했다. 다들 현실에 맞춰 사는데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않댔어. 그래서 이 시대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했지.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경수가 우리를 데리고 시위하러 간 일이 떠오르더라.

대학 시절에 박경수가 지인이 길바닥으로 내쫓기게 생겼다면서 동기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재개발로 쫓겨나는 상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윤은 사회의 불의를 한 번쯤 경험해 봐도 좋을 것이고, 자기소개서에 쓰면 가점을 받을지 모른다는 속물적인 생각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물론 나중엔 그런 것은 쓰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 말이다. 박경수는 졸업 후 선교 재단에서 일했고, 상사의 횡령을 제보한 내부 고발자가 되었다. 스물일곱, 사회 초년생일 때 벌어진 일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 도윤은 경수처럼 정의로운 인간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 같은 인간만 득실대면 세상이 망한다고 자조하면서도 내심 안도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계속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봐야 하는 걸 못 본 척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걸 태연하게 하면서.

경수한테 왜 그렇게 사는 거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답했는지 알아? 부끄러워서. 그렇게 대답하더라.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도윤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근 십 년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길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의 주변인들은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너는 경수한테 미안한 일 없어?

도윤은 대답 없이 끝이 뭉툭하게 닳은 연석을 바라보았다. 그도 박경수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대학생 때 엠티를 가서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물을 무서워하는 박경수를 바다에 억지로 빠뜨렸었다. 경수가 우는 거 처음 봤어. 은호가 너무했다는 눈길로 도윤을 쳐다보았다. 작작 좀 하지. 도윤은 은호의 팔을 툭 치며 그 말을 받아쳤다. 그때 너도 안 말리고 같이 빠뜨렸잖아. 기억 안 나는 척하지 마. 내가 그랬어? 은호는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며 실없이 웃었다. 왜 웃는 거야? 도윤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참았다. 사실 웃어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박경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안다면 절대로 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그때 도윤이 진지한 마음으로 수영을 가르쳐줬다면 박경수는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윤은 그런 생각 끝에 너울성 파도가 순식간에 아이를 집어삼키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날 처음 본 아이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든 박경수는 결국 아이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 부끄러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까. 어쩌면 그것이 박경수가 도윤에게 남긴 메시지인지도 몰랐다. 이도윤, 너는 평생 그 의문 속에서 살아야 할 거야.

그들 앞에 흰색 차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차창이 열리더니 낯선 아주머니가 그들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경수 친구들 맞죠? 도윤과 은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벤치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나 경수 이모예요. 장례식장에서 봤을 텐데. 도윤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스치듯 본 사람들을 일일이 다 기억할 리가 없었다. 설령 누군지 알았더라도 그런 식의 만남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도윤은 머리를 긁적였고, 은호는 그의 얼굴을 힐금거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가 결정을 내려달라는 표정이었다. 도윤은 그걸 알았지만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네가 박경수와 더 친했잖아. 언젠가 은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는 울었어야지. 도대체 왜 안 운 거야. 모두가 그에게 다가와 매섭게 쏘아붙이면서 추궁할 것 같았다.

박경수의 이모가 외치듯 크게 말했다. 나 좀 도와줄래요? 기름이 떨어졌는데 주유소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휴대폰 배터리도 없어서. 잠시 망설이던 도윤은 연석 아래로 내려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커다란 김치통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모가 말했다. 트렁크에 짐이 많아서 여기 뒀어요. 일단 뒤에 타요.

도윤은 은호와 함께 뒷좌석에 탔다. 은호가 지도 앱을 열어 근방의 주유소를 찾아보는 사이 이모는 천천히 차를 몰아 인근 상가 구역으로 들어섰다. 약간 어두웠던 대로변과 다르게 그곳은 간판부터 밝고 화려했다. 네온사인과 환한 조명등으로 장식된 거리엔 만국기가 펄럭였다. 그러나 행인이 드물어 활기 대신 적막함이 감돌았다. 술을 마시고 흥이 오른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가 아니라서 도윤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밤엔 그런 광경은 보고 싶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모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은호가 가장 가까운 주유소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모는 곧바로 출발하는 대신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경수랑 친했어요? 도윤은 멈칫거리다 대학 시절엔 친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럼 경수가 요즘 누구랑 친했는지는 몰라요? 도윤과 은호는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둘 다 모른다는 의미였다. 박경수의 친구이긴 했으나 죽기 전 그의 근황은 자세히 몰랐다. 친했으면 뭐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모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윤은 아마도 박경수에겐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을 거라고 말하려다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 같았다.

내가 경수한테 미안한 게 있어요. 다시 정면을 보면서 이모가 말했다. 도윤은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누구나 박경수에게 쉽게 미안해질 수 있는 밤이었다. 이모가 차를 출발시키자 은호가 지도 앱을 보면서 주유소 위치를 알려주었다. 저 앞에서 좌회전하세요. 이모는 은호가 알려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말했다. 내가 딸이 하나 있는데, 걔한테 가져다주려고 김치를 두 통이나 들고나왔어요. 그런데 경수가 죽었다잖아.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달려가느라 딸 집에 못 갔고, 김치도 당연히 못 갔어요. 그들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이모가 이어 말했다. 내가 경수를 좀 챙겼더라면, 김치도 가져다주고 그랬더라면 안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도윤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모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경수가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이모, 나 아파요. 은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경수가 몸이 아팠어요? 그게 아니라…. 몸이 아니라 다른 데가 아팠던 건데 걔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경수야 너는 아픈 데가 없어, 그렇게 말했더니 경수가 소처럼 커다란 눈을 천천히 껌뻑거리면서 알았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뭘 알았다는 거였을까?

이모는 은호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잠시 후 그들은 주유소에 도착했다.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어야 하는 곳이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 은호가 주유기를 주유구에 꽂았다. 도윤은 이모에게서 카드를 받아 대신 결제를 마쳤다. 이모가 손이 자꾸 떨린다면서 도와달라고 말해서였다.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어야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차에 김치 냄새가 진동해서 딸 집에 가져다 놔야 하는데, 걔는 아직 장례식장에 있어. 나는 갑갑해서 바람 좀 쐬려고 나왔고. 못된 이모죠? 도윤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모가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작년 봄에 경수랑 천변을 걷다가 물고기 떼를 봤거든요. 지저분한 물에서도 사는 시커멓고 커다란 녀석들 있잖아요. 우리가 물가에 가까이 다가서니까 걔들이 우릴 보고 몰려왔는데, 경수가 가게로 달려가서 뻥튀기를 사 오더니 그걸 부셔서 주는 거예요.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리니까 경수가 뭐랬는지 알아요? 쟤들이 우릴 봤잖아요. 물속에 살면서도 물 밖에 누가 있는지 유심히 본 거니까 줘야죠, 애를 썼으니까. 그래서 내가 눈이 달렸으니 본 거지, 애를 써서 본 거겠냐고 했더니 경수가 그냥 웃기만 해. 그게 내가 본 경수의 마지막 모습이야.

도윤은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모가 조카의 장례식장을 뛰쳐나온 이유를 짐작하면서. 이모의 눈도 도윤의 눈처럼 말라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눈가에 안개처럼 뿌연 슬픔이 끼어 있었다. 어떤 울음은 그런 방식으로 나오는지도 몰랐다. 도윤은 자신이 기억하는 경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이모에게 말해주었다. 앞으로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면서.

은호가 한참 전에 주유기를 제자리에 꽂아 두고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차들이 주유소에 들어와 비켜달라고 할까 봐 도로 쪽을 간간이 살피기도 하는 것을 도윤은 뒤늦게 알아챘다. 들어가세요, 이모님. 도윤과 은호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직 못 들어가. 다시 장례식장으로 가야 돼. 우리 언니 눈이 짓물러서 내가 대신 울어줘야 하거든. 이모는 그 말을 희미하게 웃으면서 했다. 도윤은 뻔한 위로의 말을 삼켰다.

이모의 차가 주유소를 천천히 빠져나갔다. 주변을 둘러보던 은호가 여긴 밝다고 말했다. 밤에도 잘 보여야 하는 곳이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도윤은 자신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게. 신기하네. 그들은 주유소를 나와 도로변에 우두커니 섰다. 안개가 낀 것처럼 거리가 희뿌옜다. 검고 커다란 물고기가 도윤의 발목을 스쳐 지나갔다. 도윤은 눈가를 문질렀다.

이서수
소설가, 1983년생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마은의 가게』 『당신의 4분 33초』,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몸과 고백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