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원평,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을 담아 |
또 다른 故鄕고향
故鄕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엇다.
어둔 房방은 宇宙우주로 通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풍화작용하는
白骨백골을 드려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고향에 가자.
1941. 9.
또 다른 고향
오래된 동네를 헤매다 간신히 건물을 찾았다.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동네에 다시 발길을 들인 건 동생의 문자 때문이었다. 형, 어서 와. 빨리. 나는 벌써 와 있어.
나는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골목은 한산했고 목적지인 건물 역시 비어 있다시피 했다. 유령의 집이 된 것처럼 곳곳에 붉은 표식이 보였다.
2층, 동생과 나의 공간이었던 곳 앞에는 상자가 많이 쌓여 있다. 과거 어느 날엔가는 상자 안에 새로운 물건들이 담겨 우리에게 도착했다. 우리의 꿈을 이루어줄 여러 가지 것들, 이를테면 접시와 포크, 수저, 아침마다 배송되던 여러 가지 음식 재료와 함께. 나와 동생은 이 안에서 살다시피 하며 고민하고 연구했다. 우리가 만들 음식, 우리가 대접할 것들에 대해 상상했다. 제대로 된 요리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었지만, 우리의 보잘것없고 미천한 배경이 언젠가 남들에게 자랑할 성공담에 빛을 더할 거로 생각하면서. 누군가는 식당을 2층에 열면 장사가 안 된다고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1층 상가보다 적은 월세로 더 충분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믿고 싶지 않은 말은 무시하고, 믿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믿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문 앞에 쌓인 낡은 상자들의 용도는 달라졌다. 그 안엔 희망이나 미래 같은 건 담겨있지 않다. 고철과 고물. 오래되고 낡고 버려져야 할 것들, 폐기돼야 할 것들이 쌓여 있을 뿐이다.
녹슨 문은 열쇠가 없어도 쉬이 열렸다. 테이블이 가득 채우던 공간은 뻥 뚫려 있고, 채 가져가지 못한 몇몇 집기들의 흔적만 보인다. 우리가 이곳을 나간 뒤 아무도 찾지 않은 것 같다. 동생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여기서 보자고 한 것일 테니까. 그런데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딘데. 나 왔어. 왜 안 보이는 거야. 나는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 보지만 몇 번을 눌러도 전송이 되지 않는다. 전원을 껐다 켜고 기기를 이리저리 깔짝거려 봐도 소용이 없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휴대폰이 고장 난 것 같다. 전화도 문자도 보내지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향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발설되지 않은 채 휴대폰 안에 고여 가기만 한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건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어서였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세상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상태인가. 섬처럼 고립됐다는 생각을 하자 이마 어딘가가 뜨거워진다. 아니, 오싹해진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기분이 온몸을 짓누른다.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갑자기 멍!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흰 진돗개가 나를 향해 서 있다. 의심을 담은 커다란 꼬리가 미약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얼굴은 진돗개인데 귀는 시추를 닮은 강아지. 어느새 다 커버렸구나. 그래, 너구나, 뭉치야. 내 말에 뭉치의 꼬리는 와이퍼처럼 큰 궤적을 그리며 빠르게 좌우를 오간다.
동생은 정이 많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와 형 동생 하며 지낼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을 거다. 스쳐 지나고 말 인연도 깊고 진하게 우려낼 줄 알던 동생은 모든 약한 것들을 사랑하고 보듬었다. 형, 우리는 문이 활짝 열린 식당을 만들자. 동물, 어린아이들, 나이 많은 사람들, 누구나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하자. 착한 동생이 선한 목소리로 말했다. 뭉치를 가게로 데려온 것도 동생이었다. 우리 작은 뭉치. 비 오는 날 거리에서 비를 맞고 있던 작은 뭉치. 동생이 새 식구가 생겼다며 파카 주머니를 열었을 때 까만 코를 벌름거리던 뭉치.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가게에서 쪽잠을 청할 때면 가슴을 파고드는 뭉치의 따뜻한 체온에 걱정도 어느새 녹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고 뭉치를 데려간 건 동생이었으므로 나는 뭉치를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다 커버린 녀석이 기특해서 무릎을 꿇고 앉아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동생과 함께 왔을 텐데 어떻게 녀석만 혼자 이곳을 서성이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진돗개의 피가 흐르는 녀석은 날렵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떠돌이 개의 행색을 벗지 못하고 있다. 얼룩진 털과 여기저기 상처 난 자국. 나를 보는 것 같다.
배고프지, 뭐라도 줄까.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소보로빵을 꺼내 녀석에게 건넨다. 게걸스럽게 빵가루를 핥는 녀석의 입이 붉다. 뭘 먹은 거야. 여기 혼자 머물면서 쥐라도 잡아먹었어? 웃음에 섞어 나직이 말하며 녀석을 쓰다듬는다. 동생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도 녀석은 분주히 내 주변을 맴돌며 계속 킁킁거릴 뿐이다. 텅 빈 공간에 뭉치와 둘만 있으니, 한기가 느껴진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또다시 뭉치가 컹컹 짖기 시작한다. 바닥에 놓아둔 전화가 울린 탓이다. 내 쪽에서 거는 건 막혀있지만 수신은 가능한가 보다. 확인해 보니 무언가에 대한 체납을 독촉하는 문자다. 무엇을 갚으라는 건지 확인도 않고 나는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내 전화 안에는 독촉 문자가 많다. 전기세, 집세, 집주인의 문자, 그리고 은행과 지인에게서 빌린 돈. 그러고 보면 휴대폰이 먹통인 이유도 요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인가. 언젠가부터 내게 오는 연락은 무언가를 독촉하거나 끊어버리겠다는 협박뿐이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해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된 상태인 걸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나쁜 기억은 지워지는 편이 낫다.
대신 나는 좋은 기억을 떠올려본다. 예를 들면 동생과 가게를 처음 차렸던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사람들의 발길이 도시의 작은 골목 끝까지 뻗어나가던 따스한 봄날, 우리는 가게를 열었다. 냉장고가 들어오고, 식탁이 놓이고, 우리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반짝이는 숟가락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오가는 이들에게 해사한 얼굴로 인사하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 국수를 양껏 퍼 담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 너머 손님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훔쳐본 뒤 그들이 남기고 간 빈 그릇을 치우는 우리의 마음엔 기쁨과 보람이 쌓였다. 별이라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황사가 지나간 어느 날을 기점으로 손님이 줄어갔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름이 되고 장맛비가 쏟아지자, 손님의 발길은 더 뜸해졌다. 눅눅해진 재료를 감추기 위해 뿌린 레몬즙에서도 시간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날씨 탓인가. 경기 탓인가. 해가 들지 않는 건물 탓인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햇볕 때문이었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동생이 했던 말이 있다. 다 좋은데 볕이 잘 안 들어. 그건 은유가 아니었다. 볕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태생이나 운명 같은 것.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엔 행운도 드나들지 않는다.
몇 차례 사나운 일을 겪고 의도치 않은 손님들의 평판에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동안 동생과 나의 마음엔 악령이 깃들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손님들이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의 가격이 그들의 얼굴에 새겨졌다. 너는 만 이천 원. 너는 이만 오천 원. 너는 고작 구천오백 원. 그들의 눈·코·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숫자가 들어박힌 날로부터 나는 나 자신을 혐오했다.
꿈은 빛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에서 희망을 앗아가자 우리는 그 글자들을 다르게 읽어야 했다. 꿈은 빚이었다. 우리 앞엔 갚아야 할 숫자들이 불어났다. 가게 앞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치우는 것도 잊고 나와 동생은 어두운 가게 안에 죽치고 앉아 열지 않은 박스 속의 재료들이 곯아가는 냄새를 맡았다.
싸라기눈이 가게 앞에 모래알처럼 맴돌던 어느 날 동생이 중얼거렸다. 우린 끝났어, 형. 동생은 왜인지 같은 말을 앞뒤 순서를 바꿔 다시 말했다. 형, 우린 끝났어. 끝난 거야.
우리는 잠시 뿔뿔이 흩어지기로 했다. 도주하듯 각자 어딘가로 피신해 뭐라도 해서 우리 앞에 산적한 숫자들을 없애보자고, 고개를 흔드는 동생의 어깨를 쥐고 흔들며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는 젊으니까 할 수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뒤 내가 일어선 적이 있던가. 항상 몸을 구부려야 하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며 하루에 몇 번이나 허리를 폈던가. 어딘가에서 모래를 푸고 무거운 상자를 들어 올리고 집보다 더 큰 차를 끝없이 몰며 해 질 무렵 붉은 노을조차 바라보지 못한 채,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내 삶이 통째로 잡아먹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동생도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세상을 이기기엔 너무 착했다. 아니, 독하지 못했다. 아니, 나약했다. 아니, 어리석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질러놓은 문제를 풀 재간이 없다는 것에 동의해야 했다. 그때 먼저 여행을 다녀오자고 한 건 동생이다. 떠나자, 형. 휴식이 될 거야. 나는 망설이다가 그러자고 했다.
그러자. 떠나자. 가보자.
이런.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 했는데 나쁜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좋은 것은 항상 나쁘게 끝난다.
그러니까 그 뒤의 기억이 흐린 것 또한 천만다행한 일이다.
동생은 분명 나보다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녀석은 나보다 언제나 한발이 빠른 놈이었으니까. 결심한 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급하고 참을성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한데 녀석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컹컹컹. 뭉치가 계속 짖어댄다. 내 주변을 맴돌며 먹을 게 없는지 찾는다. 없어, 이제 네게 줄 게 남아있지 않아. 미안해. 나는 녀석의 얼굴을 양손으로 쥐고 녀석의 맑은 눈을 들여다본다. 순간 녀석이 혀로 핥으며 이를 드러낸다. 입가의 붉은 자국에서 녹슨 냄새가 난다. 녀석의 숨결에 주방에서 썰던 양지의 냄새가 실려 있다. 동생이 나 몰래 녀석의 입안에 넣어주던 선홍빛 양지의 냄새가. 녀석이 방향을 틀어 총총 가게 구석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뭔가를 핥기 시작한다. 뭔가를 씹기 시작한다. 뭔가를 뜯기 시작한다.
나는 불온한 낌새를 느끼며 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가 보게 될 것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지만 이미 뗀 발자국을 멈출 수는 없다.
거기 동생이 있다. 누워 있는 동생, 회색빛이 된 동생, 얼굴이 없어져 버린 동생이.
그의 마지막 표정이 어땠는지 아는 건 뭉치뿐일 거다.
동생 옆으로 그가 피운 검은 무언가가 보인다. 나는 입을 가리는 것도 잊고 돌처럼 굳어버린다. 동생 옆으로 두 개의 다리가 더 보인다. 그게 나일까.
그러나 나는 차마 내 얼굴을 확인할 자신이 없다. 내 얼굴도 파 먹혔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제 와 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형.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튼다. 그토록 기다렸던 동생이 나를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자. 우리 가기로 했잖아. 이미 떠났잖아. 형은 왜 항상 이렇게 한 발짝이 느려. 덕분에 쓸데없는 것까지 보게 되잖아. 동생이 웃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떠나는 걸까, 되돌아가는 걸까. 무엇을 향해 가는 걸까, 혹은 무언가를 없애기 위해 가는 걸까. 나는 움직이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뭉치가 목을 쳐들고 컹컹컹 짖는다. 꼬리를 흔들며 뭔가를 이야기한다. 이미 그곳에 와있노라고. 그러니까 또다시 떠날 필요가 없다고. 계속해서 목청껏 짖으며 알려준다.
끝없이,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