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① 우물과 나

  • 기획특집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① 우물과 나

문지혁, 윤동주 시「자화상」를 담아

 

 

自画像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 가 드려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 9.

 


우물과 나

 

0.

 

일찍이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했다.

“시란 번역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말을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1.

 

“아시아 문학은 세계 문학이 아닌가요?”

2010년 4월의 어느 저녁, ‘실버 센터’라는 이름이 붙은 맨해튼 다운타운의 오래된 빌딩 4층의 작은 교실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바로 뒤에 이렇게 몇 마디 덧붙였을 것이다.

“백인과 흑인 말고 다른 인종에 대한 글도 읽어보면 좋겠어요. 지금 읽는 텍스트들은 백인과 흑인, 기껏해야 백인과 비백인(非白人)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이를테면 아시아인도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같은 서구 근대화의 희생자이고, 그렇다면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니라 그냥 아시아인이고, 이제 배에서 막 내린 유학생이에요. 그래서 이 문제는 저에게 좀 더 중요합니다. 뭐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요…”

순간 교실 전체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전에도 몇 번 내가 말했을 때 그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는 내 영어가 이상하게 들렸거나 혹은 또다시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헛소리를 한 게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는데, 평소라면 그런 나를 몹시 안타까우면서도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할 엘리너 웰스 교수의 얼굴이 누구보다 경직되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잠깐 시간을 줄래요? 내가 설명할 수 있어요.”

예기치 않게 십오 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마음이었지만 교실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하나 뽑아 천천히 마시다가 시간에 맞춰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학생 대부분은 교실에 남아 있었고 특히 웰스 교수는 거의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듯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조금 전 일어난 일을 복기했다. 대체 왜들 이러지?

 


2.

 

솔직히 말해서 많은 생각 끝에 한 질문은 아니었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생각보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소외된, 무시당하는,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존재가 느끼는 어떤 울컥하는 감정.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 지르는 절박한 파토스이자 어설픈 심장의 저항. 내가 듣고 있던 대학원 수업의 제목은 <인트로덕션 투 월드 리터러처(Introduction to World Literature)>였고, 내용은 말 그대로 세계 문학을 다루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학기가 진행되면서 커리큘럼에 있는 텍스트를 읽어갈수록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유럽 문학, 미국 문학, 남미 문학, 아프리카 문학까지 골고루 다루면서 한국 문학, 아니 아시아 문학은 하나도 없었다. 한·중·일만이 아니었다. 터키·인도·카자흐스탄 같은 서쪽과 남쪽과 중앙의 아시아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세계 문학이라며? 왜 아시아 문학은 하나도 없는 건데? 아시아는 너희한테 뭔데? 자기네들끼리 야구를 하면서도 그걸 ‘월드시리즈’라고 부르는 이상한 자의식을 가진 나라에서 이건 도리어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수업의 유이한(멕시코 시티에서 온 유학생 하나를 포함한) 외국인이자 논 네이티브 스피커였고, 동시에 유일한 아시아인이며 한국인이었다.

 

 

3.

 

교수는 결국 수업을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다. 나는 일종의 죄책감(혹시 내가 오늘 수업을 망쳐버린 건가?)과 억울함(아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을 동시에 느끼며 A라인 지하철을 타고 42번가로 돌아가서 다시 166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뉴저지 안쪽의 작은 월세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누웠는데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뜬눈으로 뒤척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버렸다. 평소라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시간에 깨어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의미 없는 클릭을 하던 나는, 학교 메일함에 들어가 보고 흠칫 놀랐다. 새벽 1시 넘은 시간에 웰스 교수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지혁,

 

강의계획서를 작성할 때의 내 의도는 최근 읽은 책에 나타난 이중인종적 사고를 반식민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지지하거나 근대화,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대한 다른 경험과 비판을 희생하여 네그리튀드를 특권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어요…

 

그 편지는 내가 웰스 교수에서 받아본 이메일 중 가장 긴 이메일이었고(다른 교수들을 모두 합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에서 읽는 텍스트보다 더 길고 복잡하고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이랬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닌데, 네가 그렇게 읽었다니까 마음이 몹시 아파. (어려운 이론적 설명은 건너뛰고) 하지만 너의 피드백은 너무나 소중하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렴. 나는 교실 안에서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할게.

편지 말미에 그녀는 현대 미국 문학으로 예정된 다음다음 주 커리큘럼을 취소하고, 대신 그 시간을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했다. 우리에게 아시아 문학과 한국 문학에 관해 마음껏, 충분히 알려주세요. 그의 말이 반성 어린 부탁인지 정교한 조롱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난감했다. 대신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그제야 비로소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그냥 조용히 있을 걸… 어떻게 하지. 대체 어쩌면 좋지.

교수의 이메일이 떠 있는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다가, 나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해가 만드는 그림자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잠이 쏟아졌다. 자포자기하고 노트북을 덮으려는 순간,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그건 순전히 눈앞에 보이는 교수의 이름 때문이었다.

Professor Wells.

 

 

4.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20대에 나를 매혹했던 수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그중 부인할 수 없는 하나는 윤동주였다. 특히 나는 그의 시 「자화상」에 매료되었는데, 젊은 시절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내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나 자신에 관해 우쭐하거나 부끄러운 모순되고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 말고는 다른 그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는 작고 좁은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후 ‘우물’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윤동주를 불러내는 자동 버튼 같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교수의 이메일, 아니 이름, 아니 성을 보다가 그 버튼이 다시 눌린 거였다. 웰스=우물. 그러나 이미 그 시절 나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가던 윤동주보다 세 살 더 많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윤동주를 너무 멀게 느낄 만큼 늙어버렸지만, 당시 나는 윤동주가 떠오른 것에 감사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시인. 근대화,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피해자이자 희생양. 괴로웠지만 행복했고 행복했지만 괴로웠던, 휘파람을 불고 우물을 들여다보던 사나이. 그는 내가 이 수업에 소개해야 할 단 한 명의 아시아인, 단 하나의 한국 문학으로 적절해 보였다. 나는 아마존에 들어가 그의 시 영역본을 찾기 시작했다.

 

 

5.

 

죽음과 세금과 대학원 수업은 피할 수 없다. 2주 후 수업에 나는 윤동주의 시 몇 개를 가져갔다. 일종의 발제자가 된 셈인데, 나는 윤동주에 관해 간략하게 사전적 정보를 전달한 뒤 그의 시를 한국어와 영어의 순서로 낭독하겠다고 했다. 시의 번역자가 뉴욕에서 관심과 인기가 높은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를 번역한 김경년이라는 점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는 프로스트의 말을 인용했는데, 시란 번역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모쪼록 모두 미로에서 헤매는 기쁨을 만끽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름의 고급 유머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 바람에 비장한 선언이 되어버렸다.

나는 먼저 준비한 시 두 편 「별 헤는 밤」과 「십자가」를 내리읽고 각각의 해석과 문학사적 의의를 길게 설명한 후, 이번에 낭독할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하며 마지막 시를 읽기 시작했다. 커밍 어라운드 더 마운틴, 아이 고우 업 얼론 투 더 솔리터리 웰 앳 디 엣지 오브 더 라이스 필드 앤드 피어 인, 콰이어틀리…

긴장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폰트가 작아서 그랬는지 나는 몇 번이나 더듬고 멈추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교실의 침묵은 이제 거의 장례식 수준이었다. 나는 그 장례의 주인공이 내가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집에서 연습 삼아 읽어볼 때는 이렇게까지 길게 느껴지는 시가 아니었는데. 나는 떨림으로 요동치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고 또 누르며 마지막 행을 읽었다. 어텀 이즈 데어, 앤드 어 맨, 라이크 어…

“이제 충분한 것 같아요.”

목이 잠긴 나머지 내가 마지막 한 단어를 발음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엘리너 웰스 교수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눈은 원래대로 안타까우면서도 인자했다.

 

 

6.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웰스 교수는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나를 추켜세웠는데, 정작 교실에서 나온 박수 소리는 누가 몇 번 쳤는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서 부끄러웠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손을 씻었다. 얼굴은 터질 듯이 뜨겁고 손은 창백할 정도로 차가워서 이 열탕과 냉탕의 기묘한 공존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눈에서 흐르는 것이 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물때가 잔뜩 묻은 지저분한 거울을 바라보며 거기 서 있는 못난이에게 욕을 내뱉으려는 순간, 뒤에서 화장실 문이 열렸다. 나는 얼른 다시 수전을 돌려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있잖아.”

옆 세면대로 와서 물을 튼 건 멕시코에서 온 친구 에밀리오였다. 평소에는 너무 말이 없어서 나처럼 영어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몇 주 전 수업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다룰 때 비로소 입을 열더니 폭포수처럼 유창한 영어를 쏟아내서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던 녀석.

“아까 그 시 좋았어.”

“뭐?”

“네가 읽은 시. 우물 나오는 그 시 좋았다고.”

나는 우물처럼 깊게 팬 에밀리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달도 구름도 하늘도 바람도 없었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게 있었다. 그의 말은 너무나 진심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그의 마음은 너무나 진심이다.

칠칠치 못하게도 나는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세수하다 말고 울면 정말 못난 사람이 되니까 최대한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치?”

 

 

7.

 

일찍이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했다. 시란 번역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2010년 4월의 어느 저녁, 나는 실버 센터 4층 동쪽 화장실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은 시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에밀리오가 나간 뒤 나는 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았다. 그리고 아까 다 못 읽은 「자화상」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암송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씩 힘주어 발음했다. 인사이드 더 웰, 더 문 이즈 브라이트, 더 클라우즈 플로우 바이, 더 스카이 스프레즈 아웃, 어 라이트 블루 윈드 블로우즈, 어텀 이즈 데어, 앤드 어 맨, 라이크 어 메모리.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나는 반복을 멈추지 않았다. 라이크 어 메모리. 라이크 어 메모리.

문지혁
소설가, 번역가, 1980년생
장편소설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소설집 『고잉 홈』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사자와의 이틀 밤』, 역서 『라이팅 픽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