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칼럼
나를 찾아가는 ‘행성 인문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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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나를 찾아가는 ‘행성 인문학’을 위하여

미국의 비영리 과학자 단체인 ‘원자력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1947년부터 매년 ‘지구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발표한다. 2025년의 시계는 ‘자정 89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1991년만 해도 자정 17분 전이었던 이 시계는 이제 초 단위로 급속히 앞당겨지고 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해 식량 부족, 양극화, 기상이변, 생태계 파괴, 생물 다양성의 급감 등 수많은 지구적 난제가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기후 과학자 제임스 핸슨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이 1.5도를 초과한 시점이 2024년 5월이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구온난화가 기후 재앙을 초래하는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음을 뜻한다.

지구의 체온과 맥박이 제6의 대멸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이 시사하듯,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다.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문명의 진보라고 믿으며 질주하던 근대적 패러다임이 이제 ‘자연의 대반격’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위기 속에서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행성적 사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우리 자신을 글로벌 주체(global agent)가 아닌 행성적 주체(planetary subject)로, 글로벌 개체(global entities)가 아닌 행성 생명체(planetary creatures)로 상상하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행성적 사유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 인간 또한 지구의 중심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인간에게 지구는 지배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책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성적 사유는 기존의 지구적 사유가 갇혀 있는 서구 중심주의, 신식민주의, 글로벌 자본, 국경, 민족국가, 인간 중심주의의 경계를 훌쩍 넘어서는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행성 인문학(Planetary Humanities)’이 요구된다. ‘행성 인문학’은 우주적 지평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명, 기술과 생명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사유의 실천이다.

일찍이 생명 사상가이자 시인인 김지하는 “내 나이/몇인가 헤아려보니// 지구에 생명 생긴 뒤 삼십오억 살/우주가 폭발한 뒤 백오십억 살/그전 그 후 꿰뚫어 무궁살”(「새봄 8」)이라고 노래했다. ‘행성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이 시에서 강조하는 ‘우주적 자아’로서 ‘나’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홍용희
평론가,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67년생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신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고요한 중심을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