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위 패스포트
타이완, 귀신들과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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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여름호 (통권 96호)
타이완, 귀신들과의 동거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타이완의 한 카페

 

어떤 도시는 냄새로 기억되기도 한다. 타오위안[桃園] 공항에 내려 비행기 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약간 비린내를 머금은 축축한 습기 냄새가 타이완 도착을 알려준다. 타이베이[臺北] 시내로 들어서면 약 50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자리를 잡은 편의점을 지날 때마다 나는 차예단(茶葉蛋) 냄새와 인구수만큼 많은 스쿠터들이 대로를 달리며 내뿜는 배기 냄새, 수많은 음식점과 길거리 노점들이 토해내는 다양한 음식 냄새,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묘당의 향로와 신감(神龕)에서 흘러나오는 향냄새와 한 달에도 여러 번 저승에 가지 못한 혼귀들과 복을 내려줄 신들을 위해 태우는 지전 냄새가 이 도시에 대한 나의 40년 기억을 본격적으로 재생하기 시작한다.

1983년 1월, 처음 이 도시를 찾은 뒤로 백 번 넘게 오가면서 크고 작은 거리와 골목을 무수히 유력(遊歷)했다. 그동안 축적된 기억은 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과 도시의 변모, 경제발전, 역사와 정치의 전환, 새로 생겨난 것들에 대한 인식과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의 집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그만큼 긴 세월에 걸친 빈번하고 습관적인 유랑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기억의 집적이 대부분 변하지 않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타이완의 한 카페는 이런 냄새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츠성궁 앞 샤오츠(길거리음식) 골목

 

고독과 자유를 주제로 타이완 1년 살기를 시작했다. 고 김현승 시인의 「절대고독」과 집 나와 혼자 사는 방랑자의 스트레스 없는 생활의 상태를 시험하고 검증해 볼 작정이었다. 어쩌면 기간이 더 길어지거나 아예 정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다. 그렇게 ‘귀신들의 땅’에 와서 처량한 귀신들로 가득한 장쟈샹[張嘉祥]의 책 『밤의 신이 내려온다』(민음사, 6월 초 출간 예정)를 번역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타이베이 지하철 옐로우 라인 종점이 있는 루저우[藘州]의 창문 없는 방에서 다양한 귀신들과 씨름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어린아이도 아닌데 다섯 걸음이면 갈 수 있는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오래 참으려 애쓰기도 했다. 불을 켜는 순간 ‘그 무언가’가 내 방 화장실에도 있을 것 같고 갑자기 화장실 거울에 내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재작년에 천쓰홍[陳思宏]의 『귀신들의 땅』을 번역할 때도 다양한 귀신들을 만났지만, 이번처럼 그렇게 무섭진 않았었다. 그 작품의 혼귀들이 지닌 이승에서 억울하고 아픈 기억들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눈물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귀신들의 땅』의 저자 천쓰홍(왼쪽) 작가와 필자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의 배경은 주로 용징[永靖]과 위안린[員林], 장화[彰化], 셔터우[社頭] 등 타이완 중서부 지역인 데 비해 장쟈상의 소설에 나오는 귀신들은 주로 남서부인 타이난[臺南]시 쟈이[嘉義] 민슝[民雄]의 논밭과 야산, 개천, 비탈진 땅, 대나무 숲에 서식하고 있다. 천쓰홍의 귀신들은 현세에서의 처절한 고통과 원한을 강조하고 체현하는 사회의 소수자들과 억압받는 여성, 하부계층 사람들의 혼귀들인 데 비해, 장쟈샹의 귀신들은 똑같이 원한과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우연적이고 무력하고 멍청하고 쓸쓸하고 불쌍한 느낌을 주는 귀여운 고혼(孤魂)들이다. 천쓰홍의 귀신들은 역사와 현실의 삶에 대한 메타포인 데 비해 장쟈샹의 귀신들은 현실 자체다. 장쟈샹의 귀혼들은 하나같이 사소하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혼재하면서 구체적으로 개입한다. 사람과 귀신이 동거하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나는 오래전에도 번역을 통해 타이완 귀신들을 떼거지로 만난 적이 있었다. 리앙[李昻]의 『눈에 보이는 귀신』을 번역하면서 타이완 동서남북과 중앙을 망라한 오방의 귀신들을 한꺼번에 접했었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작가인 리앙의 귀신들은 대부분 여성 혼귀들로 잔인하고 슬픈 국가 사회의 폭력, 그리고 수백 년 식민의 역사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의 영혼이었다. 이러한 고혼들의 몸에는 역사의 기억과 참상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 이를 극복하려는 용서와 화해의 흔적이 점철되어 있었다. 일종의 거대 서사를 담지하고 있는 고혼들인 셈이다. 그래서 슬프면서도 막연하고 아름답고 귀엽기까지 했다. 특히 섬을 떠나 고향인 중국 남부 도시를 찾아가기 위해 여객기를 따라 비행하면서 승객들을 훔쳐보는 여자 귀신은 귀신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성의 화신으로 느껴졌다.

동네마다 한두 곳씩 설치되어 있는 공동 봉공 제단

중화권에서는 귀신(鬼神)이 분명하게 귀(鬼)와 신(神)으로 구분된다. 신은 존엄과 권능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권력과 만능의 상징인 동시에 실존이지만, 귀는 억울함과 원한, 슬픔의 화신인 가련한 존재들로 생전의 삶과 죽음의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모든 귀의 존재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것도 대단히 구체적이며 현세적이다. 그 때문에 갖가지 신들은 의지와 숭배, 봉공(捧供)의 대상이 되지만 온갖 유형의 귀들은 하나같이 기피와 두려움, 측은지심의 대상이다. 봉공을 받기는 하지만 소란 피우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 달라는 의미의 동정 혹은 적선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타이완에는 귀의 종류가 대단히 다양하다. 역사와 사회제도, 특히 가부장제가 유발한 체제적 비극은 물론,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과 역병, 개인적 원한과 범죄 등으로 인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전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돈다. 이들에게는 유형과 출현 양상에 따라 고혼(孤魂), 역귀(疫鬼), 악귀(惡鬼), 야귀(野鬼) 등 무수한 이름이 존재한다.

타이완 사람들은 음력 7월 15일, 이른바 중원절(中元節)이 되면 귀문(鬼門)이 열리고, 온갖 귀신들이 전부 자신들이 살았던 세상을 일시적으로 방문한다고 믿는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맞아 대대적으로 위로하고 이승에 있을 때의 한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상처받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노력한다. 혼귀들과의 이러한 소통은 중원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이완에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묘당과 사원, 신감(神龕)이 세워져 있고, 주택가 골목에도 귀와 신들에게 봉공할 수 있는 공동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상당한 규모를 갖춘 사원에는 일 년 내내 향불이 꺼지지 않는다. 예컨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타이베이 최대 사원인 롱산스[龍山寺]는 노숙자들이 많고 바로 옆에 야시장이 이어져 있어 귀신들을 모시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기의 제배(祭拜)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오래되어(1738년에 처음 창건됨) 국가 2급 고적으로 지정된 이 사원은 불가와 도가, 유가의 신들을 전부 한데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사원과 달리 묘당은 주로 한 가지 특정 신을 모신다. 예컨대 오곡왕묘(五穀王廟)나 토지공묘(土地公廟)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 특정 신을 단독으로 모시고 있다. 해변 지역에는 바다의 여신인 마조(媽祖)를 모시는 마조묘가 특별히 많다. 심지어 실존 인물이었던 관우(關羽)를 무신(武神)으로 모시는 관우묘와 공자(孔子)를 문신(文神)으로 모시는 공자묘도 있다. 특히 공자묘는 반공과 유가 사상을 국시로 했던 국민당 장제스 정부에 의해 대도시마다 하나씩 건축되어 다양한 제배행사에 동원되면서 지역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타이베이 최대 사원 롱산스

 

귀와 신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공봉과 제배는 일상적이다. 집 안이나 가게 안에 신감을 설치해 놓고 매일 향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고 수없이 많은 황도길일이 돌아오면 타이완 특유의 아케이드 구조의 인도인 치러우[騎樓]나 동네 어귀, 집 대문 앞에 화로를 내놓고 지전을 태운다. 동네마다 전문적으로 이러한 봉공에 쓰이는 제배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이미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된 봉공 행위는 모든 신과 귀들을 잘 대접함으로써 이들의 힘을 빌려 현실의 삶을 보다 더 평안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생각의 소치이다. 이처럼 의식과 행동으로 빈번하게 귀와 신들을 부르고 소통하는 것이 타이완 사람들의 특별한 생활 방식이다. 이것이 귀신들과의 동거가 아니면 무엇일까.

춘추시대의 지식인 공자는 『논어』 「선진(先進)」편에서 한 제자의 귀신에 관한 질문에 “산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느냐? 삶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여 사후 세계와 귀신의 존재를 애써 부정했고 「옹야(雍也)」편에서는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 해야 한다”라고 하여 같은 귀신의 존재에 대한 소극적 논조를 유지했다. 한편, 후한(後漢)의 반동적 지식인이었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에서 사람들이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공포심의 소치이며, 실제로 귀신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유물론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논리와 사유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다양한 귀신 신앙과 무속이 발전했다. 심지어 종교와 신을 체제적으로 부정한 사회주의 대륙에서도 귀와 신에 대한 민간신앙과 무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경험이 논리와 사유에 앞선다는 도도한 진리의 반증이 아닐까.

신과 귀, 사후세계와 죽음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관념과 습속은 때때로 비이성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오랜 계몽운동을 거쳐 개선되기 전까지 타이완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장례에 가산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망자의 가는 길을 빛내기 위해 장례에 가장행렬이 등장하고 때로는 이 가장행렬에 스트립쇼 무희들까지 동원되었다. 타이완 남부 민슝의 훠샤오좡[火燒莊]이라는 마을에 수류마(水流媽) 묘당이 있다. 수류마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논밭의 물을 살펴보러 나갔다가 이름 없는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시신의 유골을 정성스레 항아리에 담아 개천가에 작은 묘당을 지어 봉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류마는 물에 떠내려온 중년의 여인일 가능성이 크다. 타이완 사람들은 이처럼 이름도 모르는 시신을 이미 귀로 여기고 봉공을 시작한다. 미상의 죽음도 중시하고 존중하는 것이 타이완 민간의 귀 의식이다.

이렇게 타이완 생활을 귀 문화와의 접촉으로 시작했다. 귀신들과 섞여서 살고 있지만, 한 도시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타이완 문학이 매개가 된 터라 동지(同志) 문학과 함께 타이완 문학 연구의 중요한 한 영역에 다가선 느낌이다. 꽤 오랫동안 한국 출판계에서 타이완 문학은 맥을 추지 못했다. 여기에는 같은 화인(華人) 문화 지역이지만 본토에 대한 주변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이유가 문학의 소통에 장애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행히 최근에 귀신들을 앞세운 타이완 문학이 우리 독서계에 상당한 파장을 형성하고 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혹시 이것도 귀신들의 힘이 아닐까?

김태성
번역가, 중국문학 연구자, 1959년생
역서 『귀신들의 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풍아송』 『미성숙한 국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