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책을 낳아 기르는 일에 관해

- 평론집 『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 창작후기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책을 낳아 기르는 일에 관해

- 평론집 『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책을 쓰고 펴내는 일을 아이 갖는 일에 빗대는 건, 작가에겐, 너무 진부하다. 흔한 이 비유를, 낡아빠져 어떤 날카로움도 어떤 번뜩임도 자랑하지 못하는 이 비유를,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책을 쓰고 펴내는 일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들에게 이 비유만큼 절실한 것은 또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만큼이나, 나는 글을 쓰고 모아 책을 만드는 일이 삶에서 꽤 중요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한 적 있다. 그렇게 진부한 비유를 빌려서라도, 작위적인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저 옛날 흑백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고백조차 낮은 목소리로 할 수 없다면, 문학이라는 간난하고 거추장스러운 이 허울을, 우리는, 어째서,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 세계 최저의 저출생 사회에서 우리가 맞닥뜨릴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만이 희망이고 미래’라는 식의 이른바 재생산 미래주의(reproductive futurism)에 반대하는 논문마저 쓴 적 있다. 그런 논리가 여성의 삶을,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삶을 곤경에 빠뜨린다는 비판을 한국 SF 소설을 통해 읽어 내는 작업이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관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 관해서는 또 다른 길고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한명의 아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평균 출산율 0.7대를 흐리는 몹쓸 짓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해내기 위한 적절한 지혜와 논리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그런 아프리카 속담이 있단다. 부모의 손길은 물론, 마을 전체의 관심과 사랑, 돌봄과 보살핌으로 비로소 아이는 자라날 수 있다. 정말 그럴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로 책 쓰기를 말해 보기로 했으니, 책을 쓰고 펴내는 일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도 이 속담을 끌어와야겠다. 내 첫 문학평론집 『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이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 역시 하나의 마을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자리를 빌려 창작기금을 지원해 준 대산문화재단, 그리고 심사와 조언, 편집과 디자인 실무로 도움을 주신 여러 선생님께 거듭 감사 인사를 드린다. 첫 문학평론집이 이런 많은 은혜 속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다. 그 책이 저자를 닮아 다소 모자란 점이 있다고 해도.

모든 책에도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이 있다. 내 책 『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에게도 거창한 비밀은 아닐지라도, 소박한 사연 하나쯤은 있다. 많은 작가가 책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을 소모한다. 출간이 미뤄지는 일도 다반사다. 내 책 역시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문학평론집을 예상했다. 문학과지성사의 선생님들은 내 글 가운데 포스트휴먼과 관련된 주제에 관심을 두고, 더 강조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 평론 중에서 가장 시의성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 조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버전의 평론집 목차를 고민하게 되었다. 해당 주 제의 글이 더 필요했다. 나는 글을 더 쓰고, 모았다. 그동안,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포스트휴먼이나 SF를 앞세운 평론집이라면 출간일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다시 한번, 나는 생각했다. 문학 담론에서 더 희소한 주제인 AI를 앞세우고, 포스트휴먼·SF·인류세 등의 관련된 주제들만을 모은 주제 평론집을 내보자고. 더 도전적인 책,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되어 버렸다. 주제 평론집답게 다양한 글의 형식과 분량을 포함하면서도, 평론가들만 읽는 평론집이 아니라 대중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평론집을 의도했다. 주제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책의 콘셉트 자체도 기존의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출간은 더 늦어졌고, 외국 체류 중이라 몇 주 뒤에나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태어난 내 아기를 며칠 뒤에나 직접 안아볼 수 있게 된 일과 비슷했다.

출간 후, 홍보 방식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았다. 책 주제에 맞게,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러 AI 도구를 써서 광고 영상, 책 소개 팟캐스트, 책 소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1)에 올리기도 했고, 책 소개 웹사이트, 책에 나오는 플롯 로봇 시스템의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SNS로 공유하기도 했다. 출판에 따르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시도들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본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겨레·경향신문·문화일보 등에서 책을 소개해 주기도 했지만, 교수신문2)과 대학지성3)과 같은 미디어에 책에 대한 저자 소개 글을 제안받아 직접 쓰기도 했다. 이 글까지 포함해, 이 책에 관한 세 편의 후기를 쓴 셈이다. 특히 대학지성에 쓴 글에는 AI 도구를 활용해 이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독자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2차 콘텐츠를 소개했다. AI로 변화될, 책의 미래를 엿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기사의 링크들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이다.

어느 문학상의 본심에 이 책이 올라갔다는 전언을 듣기도 했다. 내심 기대도 했지만, 아쉽게 수상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다. 아이를 길러준 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문학상이나 예술상에서 최종심까지 오른 후 수상에 성공하지 못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세상에 나오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던, 사연 많았던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조금은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것은 책을 쓰고 세상에 내어놓는 그 모든 일과도 닮았다. 아이가, 그러므로 내 책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아이가 세상에 기쁨이 되기를, 희미한 빛이라도 되어 주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1) https://www.youtube.com/@Dr.Know-How

2) 노대원, 「AI와 인간 너머의 포스트휴먼 시대...문학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탐험하다」, <교수신문>, 2025.06.19.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977)

3) 노대원, 「AI가 소설을 쓸 때, 우리는? … 문학이 포스트휴먼 시대의 지성에 던지는 질문」, <대학지성>, 2025.06.29.

(https://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12)

 

노대원
평론가,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983년생
평론집 『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연구서 『몸의 인지 서사학 : 질병과 치유의 한국 소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