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역부문
균열을 넘어선 합창 :
『고래』가 열어낸 다층적 언어의 공간
| 김지영 영역 『Whale(고래)』(천명관 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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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고래』는 그 기이함만으로도 독자를 놀라게 한다. 작품 초반, 주인공 금복이 마주하는 거대한 『고래』의 장면은 소설의 세계 전체를 예고한다. “물고기는 거대한 꼬리로 철썩 바닥물을 한번 내리치고 곧 물속으로 사라졌다…금복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녀는 방금 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50쪽) 이 소설은 흔히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한국전쟁 이후의 근대화를 풍자적으로 담아내는 서사시적 알레고리에 가깝다. 국제 부커상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불안과 자기변신의 찬가(a hymn to restlessness and self-transformation)”1) 라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명관은 늪지가 번성한 마을로 바뀌고, 가난이 부로, 부가 다시 부패로 변모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현실적인 역사의 흐름 위에서 환상은 탈출구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욕망과 구조적 폭력을 꿰뚫는 비평적 장치로 작동한다. 신화와 역사, 일상과 숭고가 교차하는 이 서사는 유머와 비애, 풍자와 성찰이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파노라마를 그린다.
야망, 우연, 부조리를 탐구하는 가운데 고래는 상상력의 상징이자 이 소설의 다성적 에너지를 구현한다. 평범한 삶과 영웅적 가능성의 균열을 나타내는 고래처럼, 금복은 늪지 위에 벽돌 공장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건설한다. 금복이 고래 모양의 극장을 세워 관객에게 영상 이미지를 투사하고, 기괴한 행동들이 벌어지는 카페가 그 곁에 자리 잡는 순간, 소설은 알레고리적 야심을 한층 끌어올린다. 이 유려한 번역문을 통해, 천명관은 세 개의 교차하는 서사 단락을 따라, 과장과 재치 있는 유머가 실존적 탐구와 공존하는 서사를 조율해낸다. 이 때문에 『고래』는 민속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하며, 동시에 생생히 인간적이다.
금복은 작품 전체에서 “작고 누추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275쪽)라는 주문을 되풀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금복의 딸 춘희는 조용히 다른 질서의 세계를 연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는 서커스에서 구조된 코끼리 점보와 교감하며, 관계와 정서, 생명의 연대를 중심에 둔 신화를 살아간다. 그녀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무질서와 부조리로 가득한 낯선 세계였으며 끔찍한 증오와 광포함이 넘치는 야만의 세계였다. 사람이 과연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고립되어 산다는게 가능할까?”(357쪽) 춘희의 응답은 어머니 금복의 강박적 추진성과 상반된다. 금복의 야망이 거대하고 때로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반면, 춘희의 삶의 원리는 다정한 주의력으로 작동한다.
『고래』는 세대 간의 대화, 즉 충돌하는 목소리들이 단일한 권위적 관점에 수렴되기를 거부한 채 교차하는 장을 펼친다. 금복과 춘희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닌 인물들이지만,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천명관의 소설은 이 다양한 존재들을 단순한 교훈성으로 평면화하지 않는다. 사랑과 고문, 혼돈과 질서, 잔혹함과 순수가 한데 뒤섞인 이야기 속에서, 소설은 결국 함께 존재하고 서로 소속되는 삶에 대하여 발화하고 이를 인간적 노동의 본질로 제시한다.
이 책의 강렬한 통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지나며 친족과 인연의 관계망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피식 웃음이 섞인 화자의 목소리가 이들의 수난을 일련의 명제로 압축하며, 이것이 소설의 구조적 장치로 작용한다. 한국전쟁이 한반도를 휩쓸며 죽음의 방식이 수없이 증식하는 가운데, 생존은 우연과 거의 다르지 않게 된다. 화자는 이를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129쪽)라고 정의한다. 이 밖에도 사랑, 어리석음, 중력, 줄거리, 작살, 소문, 권태, 지식인, 독재 등에 관한 다른 일화적 ‘법칙’들이 등장한다. 이런 단상들은 결코 가볍거나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베케트식 부조리의 본질로 향한다. 이렇게 『고래』는 유희적 태도 속에서도 친밀함과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삶이 제기하는 문제들 속에서 배우려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작품의 다성성은 등장인물들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서술 자체로 확장된다. 전지적 화자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403쪽)고 부탁하듯 호소한다. 천명관의 자기반성적 서사는 리얼리즘의 인과율에 갇히지 않는다. 금복이 처음 목격한 『고래』는 이 균열의 시작을 알리며, 단일하고 폐쇄적인 시간의 질서를 깨뜨리고 다층적 언어와 상징, 다양한 화법들이 뒤섞인 공간을 열어젖힌다. 천명관은 진보와 야망의 개념을 거대하게 재구성한다. 이 소설은 현대 한국의 서사를 기입하는 연대기로서, 『고래』의 환상성은 도피가 아니라 비판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방대한 소설의 번역이 거대한 도전이라 단언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절제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김지영의 번역작업은 진정한 의미의 탁월함을 발휘한다. 영어로 옮겨진 『고래』는 놀라운 대담함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과장이 아니라, 『고래』는 대담함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문학이 인간 경험의 광활함을 포괄함과 동시에, 개인의 세세한 삶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번역 과정에서 그 에너지가 굴절되었다해도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김지영의 번역은 단어 대 단어의 등가를 추구하지 않지만, 영문판 텍스트는 한국어 원작의 생기와 톤의 복합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이 점에서, 번역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다성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문화적·언어적·해석적 목소리들이 하나의 합창으로 자리 잡는 곳 말이다. 그 결과, 영어판 『고래』는 눈부신 성취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이제 현대 한국문학의 세계적 담론 속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할 문학적 이정표로 운명지어진 듯하다.
1) https://thebookerprizes.com/the-booker-library/books/wh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