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수상작리뷰|시 부문

  • 문학현장
  • 2025년 겨울호 (통권 98호)
수상작리뷰|시 부문

시 부문

 

각자의 규방, 또는 각자의 할머니 공동체 

신해욱 시집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신해욱의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봄날의책, 2024)는 “쓸어버리고 다시 하기”(「쓸어버리고 다시 하기」)를 시도하며 이전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벗어나 시 아닌 것으로 나아간 시집이다. 지난 시집에서 비인간에 주목하며 물질의 행위성과 능동성을 적극 실험하는 방향으로 향했던 신해욱의 시는 이번 시집에서 지금까지 써 온 시를 쓸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시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축적한 것을 쓸어버리고 다시 하는 상상력은 반복과 변주로 새로운 리듬을 생성하며 “할머니는 할머니를 벗어나” “뿌리치고 있”(「자율 미행」)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하나’의 존재에 주목하면서 각각의 ‘하나’가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그려가는 신해욱의 방식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번 시집에서 언술의 주체로 주로 등장하는 ‘하나’, ‘할머니’, ‘우리’는 ‘나’보다 자주 눈에 띈다. 시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런 주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역시 신해욱 시의 개성에 기여하고 있다.

신해욱의 수상 시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자리는 새로운 언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집에 현실의 풍경이 슬그머니 끼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가령 「초」 같은 시에서 “초나누기”는 중의적으로 읽힌다. 광장에서 서로 나누며 함께 불 밝혔던 “초”와 시간의 단위인 “초”. 광장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전자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초를 나누며 불을 밝히는 공동체에게도 각자의 삶과 각자의 요구가 있었다. 시간의 작은 단위인 초를 나누는 행위는 각자의 시간을 나누며 함께 보내는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규방에 모여/골무를 끼고/바늘잎을 들고/해묵은 겨울밤의 초나누기를 하”는 풍경의 기이함을 떠올려 보라. 광장이 규방으로, 규방이 광장으로 전환되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읽을 수 있다. 더구나 “구중궁궐의/규방”(「초」)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기도 한다. 신해욱의 시에 현실의 풍경 이 들어오는 방식은 이전의 시에서 볼 수 없었던 형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각자의 공동체는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다가 순간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지속적이지 않고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광장의 속성과도 닮았다.

할머니가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수상 시집에서 특징적인 면모이다. 맨발로 걷는 할머니, 할머니가 할머니를 벗어나는 할머니 등이 등장하는데 할머니는 먼 시간을 불러오기도 하고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적 주체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러오기도 한다. 할머니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힘은 그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불러오는 데 있다. 그것은 각자의 할머니이면서 동시에 시적 주체 자신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환기하는 공동체는 신해욱의 시에 시공을 초월한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불러온다.

이 시집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죽음의 그림자이다. 신해욱의 시에는 규율이나 금기가 종종 활용되곤 했는데 이번 시집에서도 「카운트」 같은 시에서 그런 모습이 발견된다. 금기는 종종 죽음과 연관된다. 이번 시집에서는 죽음의 풍경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슈샤인」 같은 시에서 그려지는 “빈소를 지나. 소각장을 지나. 위령의 밤과 비수기의 체험관을 지나.” 같은 표현이나 “둘이서 하나를 쓰는 곳”이라든가 “하나를 깨우고 싶었다” 같은 표현에서 느껴지는 죽음과 상실의 풍경이 인상적인데 무엇보다도 죽음과 상실의 풍경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신해욱 시의 독보적인 개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소실된 소실점의 장면”이자 “흰 벽에//한꺼번에 쏟아지는 흰 장면”(「환등 환상」) 같은 이미지를 생성한다. 부재와 상실로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인 셈이다.

시집에 동일한 제목으로 네 편 수록되어 있는 표제시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확장하며 지워가는 방식으로 신해욱 시의 개성을 드러낸다. 네 편의 표제시는 겨울, 봄, 겨울, 봄의 계절을 배경으로 “자연의 가장자리에 들어” “우리의 먹이를 먹”는 모습을 통해 “삶은 자연의 것”임을 보여준다. 자연의 가장자리에 든 우리는 자연사의 ‘하나’에 불과하고 그렇게 볼 때 죽음과 부재도 자연사의 일부가 된다. “다랑쉬굴”이 연상시키는 끔찍한 학살의 기억조차 “맨발로 다시 태어나” “영생의 기분”을 느끼는 게 가능해질 것 같다. 신해욱의 시에서 “타박네”와 “할머니”와 “하나”가 자연의 가장자리에 들어 “쓸어버리고 다시 하”면서 짓고 허무는 각자의 공동체는 기묘한 방식으로 세계와 연루되며 이상한 위로를 건넨다.

이경수
평론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평론집 『바벨의 후예들 페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연구서 『백석 시를 읽는 시간』 『아직 오지 않은 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