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의 서른세 번째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부문별 수상작으로는 시부문 신해욱 作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소설 부문 이기호 作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희곡 부문 주은길 作 「양떼목장의 대혈투」, 번역 부문 김지영 영역 『Whale(고래)』(천명관 作)가 선정되었다. 수상자들에게는 각 5천만 원씩 총 2억 원의 상금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작품 ‘소나무’가 상패로 수여된다. 시, 소설, 희곡 부문 수상작은 재단의 번역지원 사업을 통해 해외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시 부문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는 시인의 개성적인 시적 방법론과 다각적 세계탐구가 정점을 이뤄 독자로 하여금 밀도 높은 사유에 도달하게 한다는 점 ▲소설 부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없는 삶』은 동물을 매개로 문장 속에 관통하는 통찰을 유머러스하게 담아 독자에게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 ▲희곡 부문 「양떼목장의 대혈투」는 경계를 쉼 없이 넘나드는 언어의 역동적 리듬으로 한국 희곡의 새로운 지형이 구축되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는 점 ▲번역 부문 영역 『Whale(고래)』은 원작의 독특함과 대범함을 번역자가 창의적으로 재구성해 강렬한 독서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 소식을 접한 수상자들은 아래와 같은 수상소감을 들려주었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저는 마감이 한참 지난 원고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몇 구절을 쓰고는 막힌 상태로 벽에 이마만 쿵쿵 박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갈 데가 없는 걸까. 자괴감에 젖어 펑크를 내야 하나 고민 중이었지요. 그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떨떨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신기하게도 나아갈 방향이 보였습니다. 그날 밤 원고를 매듭지었습니다. 응원과 격려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 신해욱
“지난 다섯 해 동안 저는 한 강아지의 이야기를 쓰느라 여러 장소와 책상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지워지는 원고가 쌓일수록, 어쩌면 이 소설을 끝내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존재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써나갈 수 있었던 건 1분에 120번 뛰는 이 강아지의 심박수, 저와 다른 그 심박수를 생각하면서 산책에 나섰던 시간들 덕분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잘 알진 못하지만 책임을 다할 순 있다는 마음. 그 마음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좀 어리숙하고 때때로 최악이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존재를 위해서 어떤 것을 맹세하거나 기억하려 애쓴다는 것,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기호
“저는 2023년 3월에 일어났던 ‘얼룩말 세로 탈출 사건’을 모티프로 이 희곡을 썼습니다. 세로는 탈출 후 약 3시간 30분 만에 마취총에 맞고 쓰러져 잡혔습니다. ‘그냥 쉬는 청년’이라 불리는 세대로서, 그 얼룩말의 탈출은 무척이나 동경스러웠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도가 제 삶에선 이미 너무 멀어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저를 비춰, 역사로 기록하듯 무대에 올려 내었습니다. 세로는 상상이나 할까요? 그런 자신을 보고 연극을 만들어 올리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다니요.
여전히 ‘희곡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 만족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분한 상까지 받게 되어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만큼 기쁩니다.” - 주은길
“번역 작업 중 어려울 때도 있고 막힐 때도 많은데 『고래』 번역은 이상할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생활이 뒤집혀있는 상황에서도 감명 깊고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에 즐겁게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궁합이 맞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번역할 때마다 항상 다짐합니다. ‘한국어 원작을 읽을 때의 느낌을 살려 영어로 읽을 때 똑같은 느낌을 받게 하자.’ 줄곧 이 번역관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십 년 전 번역 생활을 시작했을 때 대산문화재단이 경력이 짧고 경험 없는 젊은 번역가인 저를 믿어주었고, 그때 받은 번역·출판 지원 덕분에 한국문학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시장에서 출판이 가능했습니다. 그 사업이 저를 오늘의 중견 번역가로 키워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문학의 세계적 진출에 한몫한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지영
![]() (왼쪽부터) 신해욱, 이기호, 주은길 수상자. 김지영 번역가는 미국 거주 중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
제33회 대산문학상 심사 대상작은 2024년 8월부터 2025년 7월(희곡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까지 발표된 문학 작품이었다. 공동수상이나 가작이 없는 대산문학상은 부문별로 단 한 편만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전 부문 심사위원들은 두 차례 이상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만나 토론을 펼쳤으며 이번 심사를 통해 다양한 특징과 개성이 섞여 한국문학의 결이 다층적이고 풍성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양심제로 운영하는 시, 소설 부문의 예심은 오은 이수명 장철환(이상 시), 김미정 김혜진 문지혁 이경재(이상 소설) 등 7명이 6월부터 약 두 달 동안 진행하였다.
본심은 남진우 이경수 조강석 조용미 진은영(이상 시), 김숨 김영찬 소영현 이승우 정지아(이상 소설), 이경미 이양구 조만수 최치언 한태숙(이상 희곡), 민은경 윤혜준 정이화 댄 디즈니 크리스 리(이상 번역) 등 시인,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번역가 20명이 8월 말부터 두 달 동안 심사를 진행하여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시상식은 12월 5일(금) 오후 6시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모짤트홀에서 열린다.